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바람에 지난 주 내내 시장에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토요일인 어제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서 어찌나 놀랬던지. 덕분에 우리 세 사람은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아무리 바빠도 반가운 손님들은 있는 법이다.
한 동양인 여성이 영어로 음식을 주문했는데 괜히 끌리는 느낌(?)에 그녀에게 어디서 왔냐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그녀의 놀라운 대답.
"아 사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와, 한국인이셨나요?"
"아니요. 한국어는 못해요.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들었지만 저는 네덜란드로 입양이 되었거든요."
아...
"그래도 저는 항상 제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요! 한국인의 피가 있는데요. 우리는 자매네요!"
나 좀 오바했는데 그녀가 같이 까르르 웃으며 맞다고 해줘서 고마웠다ㅋ
그녀가 결제할 총 음식 가격은 30유로였는데 그녀는 카드를 내밀면서 4유로를 팁으로 더 내고싶다고 말했다.
"오 감사합니다. 혹시 닭강정 드셔보셨나요? 제가 서비스로 조금 담아드릴게요."
"그럼요, 먹어봤지요!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음식을 좋아해요. 이렇게 여행중에 한국식당을 발견하면 꼭 들어가봐요. 같은 메뉴라도 조금씩 맛이 다르지요. 항상 똑같은 것 보다 그렇게 조금씩 맛이 다르니까 더 재미있지요."
그녀도 나만큼이나 대화가 즐거운듯 했다.
잠시 후 음식을 준비한 후 진동벨을 울렸는데 가져 갈 쟁반이 두 개라서 내가 도와주겠다고 두번째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함께 걸어갔다. 테이블에는 갓난아기와 함께 잘생긴 그녀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모차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기가 너무 예뻤다. 인상이 너무나 좋은 그 커플은 떠날때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반가운 친구를 우연히 만났던 것처럼 괜히 기분이 좋았다. 짧은 만남이라 여운이 살짝 느껴졌다.
저녁에 나는 버거씨에게 그녀와의 기분 좋았던 만남을 들려주었다. 버거씨는 귀담아 이야기를 들으며 말했다.
"시장에서 일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건 참 좋은것 같아. 네가 느낀 그런 친밀한 감정을 손님들도 똑같이 느낄거야."
"그녀의 번호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봐.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아, 그 정도였다고? 하하"
일요일인 오늘 아침. 기온은 고작 8도밖에 안되었지만 하늘만큼은 엄청 파랗고 맑았다.
이런 날에는 광장 테라스에서 아침을 먹어 줘야지!
겨울복장으로 무장을 한 우리는 맑은 하늘 덕분에 기분이 좋아져서 마주잡은 손을 흔들면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바로 내 눈앞에 어제 본 그 커플이 나타났다!
"어!!??"
내가 할 말을 잊은채 반가움에 손을 먼저 흔들었더니 그 커플이 나를 알아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또 이럴때는 잘 하지도 못하는 프랑스어가 튀어 나오는지ㅋㅋㅋ 내 말을 못알아듣고 있는 그 커플들의 표정을 보고 얼른 영어로 언어를 전환했다. 그래도 프랑스어보다는 영어가 조금 낫다.
"아직 낭시에 계셨어요? 아 맞다, 저 기억하세요?"
"그럼요, 어제 만났잖아요!"
버거씨가 깜짝 놀래서 어제 말했던 그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친한 친구를 만난것 처럼 길에서 길게 수다가 이어졌다.
“한국인 손님이 그리 많지는 않은가봐요. 저희를 이렇게 기억하시는것을 보면요.”
그녀의 남편이 웃으며 물었다.
“생각보다 한국인 손님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볼때마다 더 반갑지요!”
그들은 원래 프랑스 시골을 여행갔다가 너무 지루해서 이제는 소도시위주로만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낭시는 너무 만족스럽다고.
버거씨는 그녀의 남편에게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기 좋은 주변 코스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그녀와 따로 대화를 이어갔다.
"아기가 진짜 예뻐요!"
"제 딸 이름은 유나예요. 우리는 처음부터 한국이름을 주기로 합의를 했었거든요."
유나가 신기한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래 유나야. 나도 한국인이야. 너처럼!"
"그런데 유나의 눈색깔이 점점 아빠를 닮아가더라구요."
아... 진짜 예쁘다.
"저도 이렇게 예쁜 딸이 너무 갖고 싶어서 2년간 인공수정을 했는데 결국 안됐어요. 임신도 커리어도 다 사라진기분에 심한 슬럼프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단순하고 스트레스 없는 삶에 만족하고 있어요."
"그게 제일 중요하지요! 다행이에요. 저희도 너무 늦은 나이에 만나서 아기가 갖고 싶어 인공수정도 일년쯤 했는데 잘 안되더니 어쩌다보니 자연임신이 되었지뭐예요."
남자들끼리도 우리와 만만치 않게 활발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누가 제일 투머치토커인가ㅋ
어제 헤어질때처럼 우리는 또다시 손을 흔들며, 오랜 친구를 배웅하듯 그렇게 헤어졌다.
"진짜 신기하네. 네가 시장에서 만났다고 했던 사람들을 길에서 다시 만났던게 이번이 몇번째지?"
버거씨말 처럼 나도 참 신기했다.
"그러게말이야. 어제 만남이 짧아서 좀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음날 아침에 다시 우연히 만나다니."
내 말에 버거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버거씨도 그들이 한눈에도 정말 좋은 사람들인것같다고 말했다.
그녀의 가족들 앞날에 항상 행복이 가득하기를.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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