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빈야드에 산책왔다가 너무 늦어서 와인만 마시고 갔던 바로 그 테라스에 다시 찾아갔다.
토요일날 퇴근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티옹빌에 내렸을때 버거씨가 나를 태우자마자 서둘러 차를 몰며 말했다.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점심식사만 예약을 받는다는거야. 저녁에는 그냥 선착순이래. 오늘 제발 테이블이 있어야 할텐데..."
테라스바 입구에 도착했더니 여기저기 주차된 차들이 어찌나 많은지!
"하... 좋은 징조가 아니네... 자리가 없을지도 모르겠어."
역시 토요일 저녁이라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어쩌지....
"나 여기 일단 내려줘. 앞차들보다 먼저 달려가서 테이블을 맡아놓을게."
"오! 역시 내 여자친구는 똑똑해."
테이블을 맡는것 만큼 주차자리를 찾는것도 보통일이 아닌듯해서 나는 일단 혼자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남자직원이 나를 보고 다가왔는데 선뜻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내 얼굴을 멀뚱멀뚱 보고 서있었다. 영어, 프랑스어, 룩셈부르크어 중에 어떤 언어로 말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섰던것 같다. 영어로 인사를 건넸더니 바로 영어로 대답을 해 오는 친절한 청년.
"헬로우! 2인 테이블 있나요?"
다행히 그는 구석에 있는 2인용 작은 테이블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잠시후 테이블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 버거씨가 기쁜 얼굴로 나를 칭찬해 주었다.
"줄이 기니까 내가 바로 가서 주문 먼저 할게."
"나는 플람키쉬! 와인은 알아서 골라줘!"
테이블을 확보한 건 좋은데... 너무 뒷쪽이라 전망이 별루다.
힝...
세번째 줄이라 앞 테이블과 파라솔에 전망이 모두 뭍혀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조금전만 해도 테이블을 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렇게나 기뻤는데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구나.
기왕 먹는거 나도 저 앞에 앉고 싶다...
버거씨가 음식을 주문하러 간 사이 나는 계속해서 앞쪽에 빈 테이블이 없나하고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맨 앞줄에 손님이 일어나는것이 아닌가! 오예~ 역시 눈치의 민족 한국인ㅋ
나는 재빨리 그 테이블로 달려가면서 가까이 있는 직원에게 그 테이블에 앉아도 된다는 허락까지 거의 동시에 받은 후 무사히 착석했다. 이때에도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기에 성취감은 더 컸다. 어찌나 조마조마 했던지 ㅋ
전망이 가장 잘 보이는 1열에 테이블을 차지한 후 나는 곧장 버거씨에게 테이블 번호를 찍어서 보냈다. 주문하려면 테이블 번호를 말해야 하는데 버거씨는 깜빡하고 그냥 갔던 것이다. 맨 앞줄로 테이블을 옮겼다는 좋은 소식도 함께 보내줬더니 버거씨가 매우 좋아했다.
잠시 후 버거씨가 돌아왔고 1열의 뻥 뚫린 전망에 감탄하며 기뻐했다.
"역시 우리는 환상의 팀이야! 잘했어 브라보!"
곧 도착한 플람키쉬와 화이트와인.
그래 바로 이 향기지. 와인의 향과 고소한 플람키쉬의 향이 내 식욕을 자극했다.
끄트머리가 탄 부분은 선심쓰듯 버거씨에게 양보했다. 나는 배불러. 이거 더 먹어...
이 멋진 전망을 앞에두고 버거씨는 최근에 들은 팟 캐스트의 내용을 숨도 안쉬고 떠들고 있었다. 나는 앞만 보고 있는데 버거씨는 내 얼굴만 쳐다보면서 눈치없이 계속 계속 말하길래 결국 내가 한숨을 크게 쉬고 한마디 했다.
"5분만.... 우리 조용히 경치를 좀 감상하자."
내 말에 머쓱해진 버거씨가 미안하다며 의자를 정면으로 돌려서 고쳐앉았다.
"마음 상했다면 미안해. 이야기는 하나도 안 놓치고 흥미롭게 듣고 있었어. 나머지 이야기는 이따가 해줘. 지금은 저 풍경을 조용히 감상하자."
가만히 손을 잡았더니 버거씨가 내 손을 맞잡고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앞으로도 내가 눈치없이 말이 많아지면 이렇게 바로바로 말해줘. 나는 오늘 널 만나면 꼭 이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거라 다른 생각은 못했네. 네 말이 맞아. 지금은 이 순간을 즐겨야지."
투머치 토커가 내 말을 이해해줘서 다행이다.
둘이서 전망을 향해 나란히 앉아있다가 사진을 위해 맞은편으로 잠시 자리를 옮겨보았다.
다시봐도 정말 시원한 풍경이다.
아랫쪽 빈야드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그룹지어 산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기분좋은 주말 저녁이다.
여름이 끝나면 이 가게도 문을 닫는다. 그러면 우리는 내년 여름을 기다려야 하는구나.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서 우리는 포도밭 사이를 잠시 산책했다. 소화도 시키고 노을도 구경하고.
오늘도 아름다운 저녁을 선물해 주어서 고마워요 버거씨.
'2024 새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시 문학박람회. 작가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멋진 행사였다. (10) | 2024.09.20 |
---|---|
오늘도 즐거웠던 주말 데이트 (23) | 2024.09.19 |
첫만남인데 괜히 친근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15) | 2024.09.18 |
해외에서 혼자 살지만 따뜻한 추석을 느껴본다. (41) | 2024.09.17 |
친구네 고양이가 갑자기 친한 척 하는 순간 (20) | 2024.09.15 |
독일 사브뤼켄 당일 나들이 (16) | 2024.09.14 |
하루에 3개국을 차로 넘나들면서… (19) | 2024.09.13 |
버거씨네 동료들과 바베큐파티를 했다. (27) | 2024.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