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 한 동양인 남성이 가게에 왔다.
습관적으로 봉쥬- 하고 인사를 건넸다가 왠지 한국인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곧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덧붙였다. 그랬더니 그 남성도 똑같이 "봉쥬- 안녕하세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고개까지 살짝 숙이면서 말이다.
"어, 한국분이세요?"
내 질문에 그 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프랑스어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 하지만 한국어는 못해요."
내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이분은 나직하게 속삭이듯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어릴적에 이곳으로 입양되었거든요."
아...
이럴때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잘 몰라서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이분은 매우 밝은 표정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굉장히 많아 보였다.
"곧 한국에 가요. 한 달간 머물다 올 거예요."
"와! 이번에 처음 가시는 거예요?"
"아니요. 관광은 이미 한 번 다녀왔어요. 이번에는 제 생물학적 가족을 처음으로 만나러 가는거예요. 36년만에요!!“
엇
나는 질문 대신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좀 긴장도 되고요.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이제 막 처음 만난 나에게까지 자랑하고 싶을만큼 설레고 흥분으로 가득찬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을 느꼈고 진심으로 그에게 축하를 해 주었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듣기만 해도 제가 너무 기분이 좋아요! 정말 축하드려요. 그 가족들은 얼마나 기쁘실까요!!!"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 남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고 나는 그가 주문한 닭강정을 튀기면서 열심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나더러 급할게 없으니 천천히 준비하라고 말했다.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았던 것이다.)
그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프랑스로 입양이 되었다고한다. 당시 세 살쯤 더 어린 동생과 한 가정에 같이 입양이 되었는데 당시 그는 7살이었다고 한다. 알고보니 나랑 동갑이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그의 유년시절은 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혹독했겠다... 7살의 어린 소년이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머나먼 이국땅을 처음 밟았을때 얼마나 무서웠을꼬...
"저랑 같이 입양된 제 동생이 그때 심장병을 앓고 있었거든요. 한국은 그때 좀 가난했잖아요. 수술비가 없으니 입양이라도 보내자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는 나에게 본인의 휴대폰에 있는 오래된 사진들을 여러장 보여주었다. 어린시절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모든 사진속에서는 해맑은 개구장이 형제가 꼭 붙어 있었다.
"이 사진은 프랑스에 온지 1주일 되었을때 동생이랑 찍은거구요, 이건 한 달쯤 지난 후에 제가 동생 머리를 빗겨주는 사진이예요. 동생은 다행히 프랑스에서 수술을 잘 받고 건강하게 자랐어요."
아! 해피앤딩이구나! 오늘 감동의 연속이.
"동생분이랑 얼마나 가까운 사이일지 짐작이 가요."
"네. 그런데 동생은 몇 년전에 교통사고로 떠났어요."
쿵.
오늘 나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해피앤딩이 맞는건가. 너무 슬프다.
"한국에서 가족들을 만나면 동생의 사망 소식을 어떻게 알려야 할 지 모르겠어요.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서요."
이 착한 남자는 자신보다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는 가족들을 더 걱정하고 있다. 내가 한국의 가족이라면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동생보다 이 남자가 겪은 상실감에 마음이 더 쓰라릴 것 같다.
그는 동생과 성인이 돼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둘이 외모가 꼭 닮았다. 쌍둥이 처럼.
"교통사고였는데 뒷좌석에 있던 동생의 아이는 다친곳 하나 없이 무사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할 뻔 했는데 그 말은 부적절한 것 같아 속으로 삼겼다.
"오늘 닭강정이랑 닭갈비 두 개 포장하시는거지요? 누구랑 드시는거예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어본건데
"저 혼자 두 개 다 먹을거예요. 헤헤"
라고 대답하고 환하게 웃는 남자.
"저는 한국 음식을 좋아해요. 제 형수가 한국인이거든요. 그래서 한국요리를 많이 해줘요. 저도 한국 음식을 몇 개 할 줄 알고요. 형수가 한국어 통역도 도와줘요."
다행히 프랑스에서 좋은 가족들을 만났나보다. 하지만 프랑스 부모님도 결국 이혼을 하시는 바람에 그에 따른 아픔이 또 있었던 듯 했다.
"그런데 한국의 가족들과는 어떻게 서로 알게 되신거예요?"
내 질문에 이 남자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신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한국측 가족들은 형제를 찾느라 필요한 (정확히 못알아들음)기관에 정보를 등록해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남자를 찾아낸 사람은 한국 조카(한국의 큰 형님 아들)였다고 한다. 바로 인스타그램으로 말이다!! 남자는 그 조카가 맨 처음 대화를 시도한 DM창을 캡쳐해서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그 내용을 보여주는데 왜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지... 오늘 계속 감동 감동...
조카는 남자에게 처음 봉쥬- 하며 인사를 건네왔고 그 후에는 영어로 남성의 한국 이름을 확인한 후 자신의 아버지 이름인 XXX을 혹시 알고 있냐고 물어왔다. 그런 후 아버지의 정면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다.
"처음 큰 형님 사진을 봤을때 어땠어요? 눈물 안났어요?"
"사실 인스타에서 워낙 사기가 많으니까 당시에는 다 믿지 못해서 큰 감흥은 없었어요."
아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측 식구들은 완전 눈물 바다였을것 같다. 상상하다가 나 혼자 또 뭉클. 조카가 정말 큰 일을 했구나. 내가 다 대견하네. 남자는 아직 만나보지 못한 조카의 사진까지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설레임과 기쁨이 느껴졌다.
그는 어릴적에 한국에서 아버지와 찍은 사진도 보여주며 어릴적 사진들이나 자신의 한국어 이름이 써진 입양서류들을 지금껏 잘 간직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다녀오시면 꼭 들러서 어땠는지 이야기 들려주세요!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요."
"그럼요! 다녀오면 꼭 다시 들를게요."
내가 너무 감정을 이입해서 대화를 나눴던지 남자가 떠나고 난 후에도 여운이 남았다. 오늘 처음 만난 나에게 이렇게 많은, 사적인 이야기들을 몽땅 풀어내는 모습을 보니 한국인을 만난것이 참 좋았나 싶기도 하고... 진심으로 그의 한국 방문이 웃음 가득하고 행복한 시간이기를 바란다.
지난 세월 겪어온 아픔들보다 더 큰 행복이 그 남자의 미래에 펼쳐질 거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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