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또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아왔다.
오늘의 첫번째 미션은 남은 음식들을 알뜰하게 클리어 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남은게 너무 많네. 괜히 욕심내서 많이 쟁여버렸다. 3박 4일이 이렇게나 빨리 지나갈 줄은 몰랐지...
두유는 두개나 샀는데 하나 새거는 깜빡하고 두고와 버렸네. 식용유 간장 굴소스등 찬장에 넣어둔 건 다 까먹고 기증하고 와 버렸다.
남은 치즈케이크도 맛나게 클리어 한 후 나는 냉동실 아이스크림을 꺼내들었다.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을 먹을거냐는 버거씨의 놀라움 섞인 질문에 나는 씨익 웃으며 빵에다 아이스크림을 듬뿍 끼워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싱가폴에서는 길에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팔아. 이거랑 다를 바가 없어. 쿠키도우 아이스크림이니까 이게 무조건 더 맛있지."
버거씨는 남은 훈제연어를 가지고 간식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고트치즈도 넣고 토마토도 잘라 넣고- 완전 맛있겠다!!
다채로운 이번 여행에서 한가지 크게 아쉬움으로 남은 것은 바로 와인 시음을 못했다는 점이었다.
하필이면 바캉스철에다 주말이라 와이너리들이 문을 모조리 닫은 것이다 ㅠ.ㅠ
킥보드를 대여해 준 사장님께서 소개해주신 와이너리에 가보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미리 연락을 하지는 못했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무작정 찾아가보았다.
구글맵을 따라가던 우리 차는 점점 작은 시골 마을로 깊숙이 들어갔다.
가는 길이 너무 예뻐서 막상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돌아온대도 후회가 없을것 같았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돌을 쌓아올린 벽과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일단 호출벨(?)이 있길래 누른 뒤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 집에 사는 듯한 멍뭉이가 우리를 먼저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러더니 태연하게 내 옆에 척- 앉는게 아닌가? ㅋㅋㅋ
내가 만져줬더니 마치 익숙한 주인의 손길을 받듯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멍뭉이한테 나 혼자 계속 떠들었다.
니네 주인은 언제 오냐... 나 와인 시음도 하고 몇병만 사고 싶은데... 부르고뉴까지 왔다가 헛걸음하고 갈 순 없잖아...
곧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께서 달려나오셨다.
여사장님을 따라 꺄브로 들어갔다. 와...
모든게 신기하게 보였던 내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동안 사교성 좋은 버거씨는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킥보드 사장님 소개로 왔다고 했더니 그 분의 아내와 친하다고 하시네. 분위기 좋고~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리스트에서 맛보고 싶은 와인을 고르라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레드보다는 화이트를 선호하는 나를 위해 우리는 화이트 와인을 먼저 맛보았다.
사실 비싸다고 더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고 (와인 알못)내 입에는 샤르도네가 가격이나 맛에서 제일 좋았다. 버거씨도 샤르도네가 괜찮다고 했는데 사장님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일단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로 서너병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버거씨는 운전을 해야 한다고 아주 조금만 달라고 거듭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사장님은 똑같은 양을 따라주셨다. 내가 흑장미 해줄게. 버거씨가 남는 와인을 버켓에 버리는 걸 본 이후부터는 남기는 족족 내가 꿀떡꿀떡 원샷을 했다. 이걸 왜 버리니... 아까운 걸... (이 모습을 보면 우리 엄마 아빠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셨을 것이다. 나는 이런 집에서 자랐다. 술 한방울도 낭비하지 않는 집안 ㅋ)
버거씨가 말렸음에도 흑장미를 끝까지 하다가 나중에는 취해버렸다. 기부니가 너무 조쿠나... ㅋ
이제 레드와인 차례!
레드와인도 종류별로 꽤 많이 마셨다. 버거씨가 요청하는 대로 사장님은 다 꺼내서 맛보게 해 주셨다. 여러 종류를 마셔서 좀 죄송할 지경이었는데 사장님은 괜찮다며 웃으셨다.
비교해 본 결과 내 입에는 다 비슷했고- 레드와인은 그냥 선물용으로 지브리 와인만 한 병 사야겠다고 버거씨한테 속삭였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버거씨는 지브리 (레드)와인 10병이랑 샤르도네 (화이트)와인을 10병씩 포장해 달라고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중 원하는 만큼 나더러 가져가라고 했다. 이번 바캉스 선물이라고- (그래서 나는 화이트 3병, 레드 1병 득템)
사장님께서 잠시 후 박스에 포장된 와인들을 차로 갖다 주셨다.
부르고뉴까지 와서 와인 시음도 못해보고 와인도 한병 못사고 돌아가는건가 싶어 많이 아쉬웠는데 마지막날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어서 어찌나 기쁜지. 특히 이 멍뭉이와의 만남도 나에게는 작지만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나와 친구가 된 멍뭉이는 버거씨가 와인을 잘 싣는지 코앞에서 관찰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돌아서서 친밀한 시선을 보내주었다. 일종의 작별인사인가보다. 이 멍뭉이는 이 와이너리에 방문하는 모든 손님들을 이처럼 살갑게 맞이해주겠구나.
멍뭉아 안녕- 우리 다음에 또.. 보진 못하겠지? 저 북실한 털의 감촉이 다시 떠오른다. 이쁜 것-
낭시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버거씨가 준비한 연어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꺼내들었더니 버거씨가 근처에 작은 숲이 있을거라며 쉬어가자고 했다.
숲에서 먹으니까 더 맛있었던 우리 휴가의 마지막 소박한 만찬(?)이었다.
올 여름 즐거운 여행을 선물해 준 버거씨 땡큐 쏘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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