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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전동 킥보드로 부르고뉴 포도밭 사이를 질주하는 기분!

by 요용 🌈 2024. 9. 27.

샤또 안주인(샤틀렌)으로써의 첫날 아침이 밝았다. 

나보다 일찍 일어난 버거씨는 부지런하게도 동네 블렁쥬리를 다녀왔다. 신선한 빵오쇼콜라와 건포도가 박힌 달콤 고소한 브리오슈를 사왔는데 정말 맛있었다. 나는 커피 대신에 두유를 마셨고 과일, 견과류 그리고 화이트치즈(프로마쥬블렁)에 망고 퓨레를 뿌려서 맛있게 먹었다.  

아침을 먹은 후 버거씨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좀 변덕스럽다. 오후에 야외활동을 예약한 게 있는데 제발 비는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자에 기대 누워서 책을 읽었다. 

잠시 후 나를 찾아 내려온 버거씨가 내 옆에와서 같이 누웠다. 
우리는 수다도 떨고 책도 읽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얼마 후 우리는 점심을 만들어먹었다. (버거씨도 나처럼 먹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편이다)
페투치니 파스타로 내가 동남아식 면 볶음을 만들어보았다. 새우랑 숙주 그리고 갖은 야채를 넣고 굴소스랑 간장으로 간을 했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네ㅋ (피쉬소스가 있었더라면 더 맛났을텐데 살짝 아쉽기는 했다.) 
버거씨가 삶은 바나나도 곁들여 먹었다. 버거씨는 정말 맛있지 않냐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내입에는 그냥 고구마 맛이랑 비슷했다. 아침에 우유랑 먹으면 더 맛있을것 같은데? 
 

 
점심 식사를 끝낸 우리는 차로 미리 예약한 액티비티 사무실을 찾아갔다. 

킥보드가 생각보다 커서 놀랬다.

우리가 예약한 액티비티는 바로, 포도밭 사이를 질주할 수 있는 전동 킥보드였다. 
 
하루에 세번 세션이 정해져있길래 단체로 가이드랑 같이 타는건 줄 알았는데 그냥 킥보드만 대여해주는거라고 해서 1차로 당황했다. 그리고 킥보드가 생각보다 커서 우리는 또 한번 당황했다. 오프로드용이라 바퀴가 남다르게 큰건가보다;; 
 
사장님은 타는 법을 간단히 설명해 주신 후 우리가 잘 탈 수 있는지 집 주변을 한바퀴 돌게 하셨다. 솔직히 우리 둘 다 좀 어리버리하게 탔는데 사장님은 이 정도면 문제없다며 곧바로 찻길로 우리를 내몰았다ㅋㅋㅋ  이게 맞는건가요...?ㅋ 기어 5단 중에 2단까지만 보셨잖아요...

1시간코스가 있고 2시간 코스가 있는데 버거씨는 미리 2시간으로 비용을 지불한 상태였다.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다!! 1인당 45유로! 두명이서 90유로를 지불한 것이다. 심지어 보증금도 1인당 500유로였다고 한다. 
버거씨는 사장님께 슬쩍 킥보드 가격을 물어봤는데 한대 값이 4900유로라고 한다!! 그말을 듣고 나서야 비싼 대여료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버거씨는 이날 온종일 머릿속으로 계산을 굴려보았다고 한다. 4900유로짜리 킥보드를 스무대를 사고, 한 달에 몇 번, 비수기 빼면 일년에 총 얼마를 대여해야 남는 장사일까... 유지보수는 사장님이 직접하시니 비용이 절감될 것이고 한 몇 년 운영하다가 중고로 팔면...? 많이 남는단다ㅋㅋㅋㅋ 아무튼 버거씨는 이날 저녁에 본인이 계산한 것을 나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아무튼 우리는 긴장을 한 상태로 어색하게 큰 바퀴를 가진 킥보드를 몰아 근처 작은 마을로 들어서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곧 비가 후두둑 쏟아졌다. ㅠ.ㅠ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군... 
 
다행히 빗방울이 굵지는 않았다. 
그런데 킥보드에 적응을 하고 나니 이 날씨가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처럼 뜨거운 햇볓이 작렬하는 날씨였더라면 오히려 더워서 괴로웠을것 같은데(팔도 엄청 탔을것 같다!) 보슬비를 맞으며 포도밭 사이를 질주하니 어찌나 기분이 상쾌하던지!! 

앞에서 찍고 있길래 일부러 천천히 달렸다. 그런데 영상을 빨리 감았더니 비틀비틀ㅋ.gif

처음에는 2단까지만 올려도 너무 빠르고 무서웠는데 어느새 우리는 5단까지 올려서 씽씽 달리기 시작했다. 오예!!

특히 내리막을 내려갈때는 가속도가 붙어서 더 빨라지는데 이때는 마치 내가 날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주변에 사람도 없고 차도 없어서 맘껏 소리를 지르면서 질주했다. 

비때문에 진흙이 튀어서 킥보드가 금새 엉망이 되었다. 
문제는 바퀴에서 튄 진흙이 킥보드에만 튀는게 아니었다는 사실.

버거씨가 내 뒷모습을 보고 깔깔 웃어대기시작했다. 
 
뭣땜에 웃는지 짐작이 갔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얼보고 웃었건간에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심해." 
 

검은바지랑 흰바지가 같을순 없지. 
 
조금전까지 미친듯이 웃던 버거씨에게 자신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더 심하게 웃기 시작했다. 
 
"설사했어?" 
 
이 한마디에 버거씨는 웃느라 숨이 넘어갈 뻔 했다. 
아 좋아하는구나. 그럼 자주 말해줘야지. 설사는 좀 괜찮아? 아직도 그래? 이따 약사러가자. 내가 농담을 할때마다 버거씨는 매번 빵빵 터졌다. 

포도밭 뿐만 아니라 예쁘고 한적한 작은 마을들을 몇개나 지나쳤다. 

작은 골목길, 오래된 시골 집들, 돌담들을 지나치며 그 아름다움에 여러번 감탄하고 그 사이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고프로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모든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어느순간 나는 앞서가는 버거씨를 불러세웠다. 버거씨는 무슨일이 생긴건가싶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배고파. 먹을거 있어?" 
 
내 말에 버거씨가 껄껄 웃으며 가방에서 브리오슈 한조각을 꺼내주었다. 

아침 점심을 그렇게 든든하게 먹었으면서 나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한입에 욱여넣고 씹기 시작했다. 버거씨가 얼른 한조각을 내 손에 더 쥐여주었다. 나는 그냥 빨리 입에 넣고 다시 탈려고 그랬던건데ㅋㅋ

 
안장이 없는데도 나는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자전거처럼 뒤로 앉을뻔 하기도 했다. 버거씨도 똑같았단다.  
그런데 서서 타니까 확실히 속도감이 다르다. 멈췄다가 출발할 때 5단으로 바로 출발하면 마치 디즈니 만화영화의 한장면 처럼 몸통이 내 팔에 휙 딸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안녕 망아지야? 넌 다리가 짧구나.

동물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예쁜 집들도 정말 많았다. 

숲길도 자주 지나치고 개울을 건너기도 했다. 

두 시간이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샤또로 돌아오는 길에 버거씨가 말했다. 
 
"마담 샤틀렌, 피곤하지?"
 
"아니 안피곤해. 무슈 디아헤."
 
샤틀렌은 샤또의 여주인을 뜻하는 단어이고, 남주인은 무슈 샤틀랑이라고 버거씨가 전날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버거씨를 샤틀랑이 아닌 무슈 디아헤라고 불렀다. 디아헤는 설사라는 뜻이다ㅋㅋㅋㅋ
버거씨가 운전하다 말고 또 미친듯이 웃었다. 좋아하는구나. 
 
이제부터 무슈 디아헤라고 불러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