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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프랑스에 사는 이방인 친구들과 올해도 즐거운 파티

by 요용 🌈 2024.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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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휴가에서 돌아온 그 다음 주말에 알마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이번에는 한 달간 낭시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일본친구 가나코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서 인원수가 작년보다 늘어났다. 마침 가나코와 엘라의 23번째 생일도 비슷한 시기라서 알마는 이참에 세명의 생일파티를 다같이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버거씨는생일파티에 처음 초대를 받았을때 이렇게 말했다. 
 
"네 친구들은 정말 다들 어리구나. 나 거기가면 나이가 제일 많겠지? 진짜 염색이라도 해야 되나?" 
 
ㅋㅋㅋ 별 걱정을 다한다. 사실 말은 저렇게해도 나이차이에 별 부담을 느끼는 표정은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은발머리를 어둡게 염색한다는 것은 절대 버거씨 사전에 없을 일이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친구들은 나이대도 다양하고 국적도 다양하지. 그러니 더 재미있잖아."
 
사실 알마를 포함해서 나보다 나이많은 친구도 두 명이나 있고 그녀들의 남편들은 버거씨보다도 나이가 많기 때문에 걱정할 거리가 전혀 없기도 했다.  
 
버거씨는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나는 부르고뉴에서 사온 지브리(Givry)레드와인을 한 병을 가지고 알마네 집에 도착했다. 
 
알마네 대문 벨을 울렸을때 알마가 달려나오면서 그녀의 남편 스테판에게 소리치는게 들렸다. 
 
"거봐 내가 얘네커플이 제일 빨리 도착한다고 했지?" 
 
그럼 그렇지. 우리도 5분 늦은건데 역시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와 알마는 두번째로 엘라가 도착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 역시 적중했다.ㅋ)

스테판과 버거씨를 서로 소개시키는데 왜 내 마음이 이리도 뭉클할까. 
매년 다들 커플로 모일때마다 나만 혼자 오곤 했다. 그땐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런날이 오니 기분이 참… 따숩구나. 
 
잠시 후 친구들이 모두 도착했다. 에리카랑 남친 마이크는 커다란 프로세코 세 병이랑 폭죽을 들고왔고 남편과 도착한 우크라이나 친구는 우크라이나식 디저트를 만들어왔다.  

엘라는 올해도 텃밭에서 수확한 야채들 위주로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준비했다. 직접 키워낸 비트뿌리가 정말 달콤했다. 

이건 치즈를 넣은 짭짤한 파이였는데 버거씨가 서너개씩 먹길래 내가 말렸다. 그거 먹다간 메인이랑 디저트를 못먹는다고! 요리 잘하는 알마의 메인은 항상 기대해도 좋으니까.
 
아뻬로를 끝낸 후 나랑 엘라는 알마네가 자랑스러워하는 정원을 둘러보았다. 

호박들이 너무 예뻐서 내가 구경했더니 스테판이 다가와서 말했다. 
 
"이건 맛은 별로 없어. 그냥 장식용으로 쓰는거지. 속을 깎아서 바가지를 만들거나-" 
 
아... 이건 프랑스식 조롱박인게로구나.
 

 
스테판은 닭들에게도 온갖 정성을 쏟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양봉까지 시작했다. 벌들이랑 닭들이 텃밭을 자유로이 배회하고 있었다. 

 
 
"야 이거 뭐야 ㅋㅋㅋ 왜 여기만 풀을 안 깎고 남겨둔거야?ㅋㅋㅋ" 
 
뭔가 웃겨서 내가 물었더니 알마가 나보다 더 빵터지면서 말했다. 

 
"이거 ㅋㅋㅋ 스테판도 반대했는데 내가 우겨서 요만큼만 풀을 깍지말고 남겨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어ㅋㅋㅋ" 
 
"뭐땜에?" 
 
"Biodiversitè. (생물의 다양성)" 
 
짧게 대답하는 알마는 본인이 생각해도 웃긴지 계속 웃었다. 이건ㅋㅋ 너무 흉한데 ㅋㅋ (다시 생각해보니 미생물학 박사인 알마가 생각이 다 있었겠지)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가나코가 준비해 온 스시랑 미트볼이 먼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이걸 본 버거씨가 어이없게도 큰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베이비, 이거 당신이 만들어 온거야?" 
 
김밥 비슷한것만 보면 다 내가 한 줄 아네ㅋㅋㅋ 어이없어서 내가 웃었더니 가나코가 대신 수줍게 대답했다. 
 
"제가.... 사온거예요. 전 이런거 만들줄은 몰라요." 
 

스테판이 바베큐를 굽는 동안 알마의 메인 요리가 드디어 등장했다. 
화려하고 웅장하다. 

감자샐러드, 흰살 생선, 계란흰자, 양배추, 계란 노른자 등을 층층이 쌓아 올린 음식인데 러시아와 그 주변 국가들에서 먹는 전통 음식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까 태국살던 시절 러시아 레스토랑에서 비슷한 것을 먹어본 기억이 난다. 물론 알마의 요리가 훨씬 더 맛있고 정성이 들어간 것 같다. 

파스타 샐러드랑 바베큐까지 같이 먹었더니 더이상 배에 들어갈 자리가 없네. 거기다 프로세코에 와인까지 벌써 몇 잔째인지... 
이럴땐 무조건 수다를 떨어서 배를 꺼트려야 한다. 아직 디저트가 남았으니까! 
 

메인 요리를 다 먹고 난 후 우리는 실내로 들어왔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기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파티 열기는 여전했다. 

치즈를 먹을때는 레드와인으로 갈아탔다. 
알마네 부부가 여름에 지내는 샤또가 있는 아베롱에서 사온 와인이라고 한다. 

 
꽤 취기가 올라있던 스테판이 나에게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넌 올해 정말로 큰 시련을 겪었어. 그런데 너무나 멋지게 극복해냈지. 나랑 알마는 네가 자랑스러워. 알마가 네 얘길 얼마나 많이 하는지 넌 모를거야." 

"아... 나 정말 그때 많이 힘들었는데 너희 부부에게 너무 고마웠어. 세상에 혼자 버려진것만 같아 무서웠는데 너랑 알마랑 수시로 나한테 전화해서 괜찮은지 확인하고 또 조언을 들려줬지. 덕분에 그때 혼자가 아니라는것을 느낄수 있었어." 

"우리 전부다 이곳에선 이방인이야.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서로 도와야해. 너 에리카 마이크 모두 너무 좋은 친구들이야." 
 
그러고보니 독일 출신인 스테판도 이방인이었네. 
 
"불과 작년에 전남편이랑 아파트 샀다고 집들이에 너희를 초대했었는데 일년만에 내가 딴 남자랑 너희집에 오다니. 기분이 묘하다.ㅋ" 

"…그게 인생이지 뭐. 내일 당장에 우리앞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응 아까 차안에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나도 파트너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분 좋기도 하고..."
 
술을 한방울도 안마신채 나랑 스테판의 사이에 멀뚱하게 앉아서 대화를 듣고있던 버거씨가 이때 슬쩍 한마디 거들었다. 

"매년 파트너를 바꾸는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하" 

그 말에 나랑 스테판도 같이 큰소리로 웃었다.
 
스테판이 버거씨에게 슬쩍 물었다. 

"진지한가봐? 벌써 가족들도 소개시켜줬어?" 

"아 그럼그럼. 누구나 그렇듯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어. 내 아들들이나 누나, 엄마 다들 그녀를 좋아해." 
 
쑥스럽게도 두 사람다 나를 치켜세우니 더이상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반대로 돌아 앉아서 알마랑 에리카랑 수다를 떨었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디저트가 등장했다. 역시 자정까지 먹고 마시는 프랑스 파티다.

버거씨가 사온 라즈베리 치즈케이크! 이거 진짜 진짜 맛있었다. 다들 어디서 산거냐고 물어서 나는 샵의 위치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우크라이나 친구는 크레페를 구워왔다. 잼이나 연유에 발라먹었다.

엘라는 이만한 초코케이크를 세개나 들고왔다ㅋㅋ 손도 크지ㅋ너무 크게 잘랐길래 내가 더 작은 사이즈로 한번 더 잘랐다. 디저트가 세가지나 있으니 조금씩 맛보려면 작은 사이즈가 낫지. 

 
다른 디저트도 맛있었지만 우리 버거씨가 사 온 치즈케이크는 단연 인기가 최고였다. 오와... 엄지척! 배에 들어갈 자리가 없을것 같더니 또 먹어지네. 
 
엘라는 케이크가 두통이 온전히 남았다며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알마랑 스테판이 먹을거야." 
 
내 말에 스테판이 배를 불쑥 내밀면서 이 배를 더 키우면 안된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근데 나는 스테판의 배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거봐, 여기 아직 (음식 들어 갈)자리가 많네." 
 
내 말에 다들 빵 터졌고 스테판이 제일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난 얘 술취한 버전이 더 좋아. 나랑 농담 코드가 딱 맞네." 
 
그 말에 엘라랑 버거씨가 동시에 말했다.
 
"쟤 술 안취해도 똑같은데.." 
 
"술 안마셔도 저런데..." 
 
응 난 술 안마셔도 이렇다. 물론 상대를 봐가면서 장난치지ㅋㅋ 스테판은 이런 농담을 좋아하는걸 알기때문에 더 장난을 편하게 칠 수가 있지. 
 

다들 실컷 먹고 마신 후였는데 스테판은 어린이가 된 표정으로 소화를 도와줄거라면서 독주들을 주르륵 꺼내와서 우리앞에 늘어놓았다. 
 

 
다들 어쩔수없이(?) 한 잔씩 받아마셨다. 나는 또 각별히 스테판이 두 잔을 주네 ㅡㅡ; 
 
사실 최근 스테판이 직장 문제로 몇 달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걱정하던 차였는데 이 날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물론 스테판도 나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러니 스테판이 주는거면 기쁘게 마셔야지. 
 
스테판은 우리를 배웅할때 나한테 따로와서 한번 더 진지하게 말했다. 

"버거는 정말 좋은 사람인것 같아. 넌 복잡한 생각 할 거 없고 그가 너를 돌봐주고 기쁘게 해주도록 내버려 둬. 너는 이제 즐겁게 살아야 해. 그것만 생각하면 되는거야." 
 
그 말이 어찌나 뭉클하게 들리던지. 
 
"너도 잘 지내야 해. 다 문제 없는거지?" 
 
내 말에 그는 알마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연히 문제 없지. 이미 나는 내 행복을 찾았잖아." 
 
 
역시 오늘의 파티도 너무 즐거웠다. 아니 작년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친구를 사귀는게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 나는 정말 큰 행운아다. 직장 동료들도 그렇고 버거씨와 내 친구들.

힘든 순간을 지내면서 그들의 소중함을 깨달을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