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녁.
버거씨의 친구들과의(그래봐야 버거씨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ㅋ)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우리는 룩셈부르크로 갔다.
일토꼬(Iiltocco)라는 이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는데 외관부터 굉장히 크고 화려했다. 들어가기도 전에 설렘 업!
화려한 샹들리에가 드리워진 리셉션에서 잘생긴 직원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버거씨가 주최자의 이름을 말했더니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이 레스토랑은 주방도 바도 다 시원하게 오픈 돼 있었다.
밖에서 봤을때도 컸지만 실내에 들어와서 보니 정말 컸다.
버거씨의 친구들과 만났다. 그 중에는 일전에 버거씨 집에서 바베큐 파티를 했을때 만났던 미국인 친구도 있었다. 열 명 넘게 모였는데 버거씨도 그 중 딱 세명밖에 모른다면서 답지않게 처음에는 살짝 어색해했다. 친구들은 엄청 살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서로 비쥬를 하고 이름을 교환했다.
버거씨가 입고 온 스웨터가 좀 과한게 아닌가 살짝 걱정했는데 비슷한 스웨터를 입고 온 친구가 있어서 참 반가웠다. 다행이다ㅋ 원래 이런 분위기였구나.
성격좋은 이 미국인은 바로 내 옆에 앉아 있어서 같이 농담을 많이했다. 성격이 엄청 좋음! (대화 중 무의식적으로 자기 가슴팍에 튀어나온 눈사람 코를 쓰다듬는 모습이 웃겼다) 나중에 버거씨한테 이 친구가 영화 고스트바스터즈의 배우랑 닮지 않았냐고 했더니 무릎을 탁 치며 정말 그렇다며 동의했다.
다들 겸손하고 다정했다. 알고보니 (옆에 다른 친구가 어쩌다 대화 중에 말해주길) 이 남자는 일본 혼혈이고 의사라고 한다. 지금은 독일에서 살고 있고 역시 우리처럼 대부분 오늘 처음 만난 친구들이라고 한다. (다들 친화력 무엇)
역시나 룩셈부르크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절반은 프랑스인들이었고 미국인 두명, 카자흐스탄, 이탈리안+독일 혼혈, 과들루프 출신 파리지앵등 출신도 다양했다. 영어로 말하면 영어로 대답하고 프랑스어로 말하면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두 언어 모두 제대로 마스터하지 못한 나로서는 아주 편리했다. 무의식적으로 한 문장에 두 언어가 섞이곤 하는데 모두들 찰떡같이 알아들으니 말이다.
내가 주문한 무알콜 칵테일. 생딸기와 코코넛쥬스 향이 너무 향긋해서 아주 좋았다.
수다를 떨다보니 각자 주문한 메인 음식이 나왔다.
나는 봉골레 파스타를 시켰다. 모나코에서 먹었던 봉골레가 워낙 맛있어서 잊지 못했는데 이 집은 가격은 똑같은데 맛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맛있게 먹었다.
버거씨 옆에는 카자흐스탄 친구가 앉아있었는데 그는 소고기 라자냐를 먹다말고 버거씨한테 맛보라며 살갑게 한 조각 잘라주었다. (자꾸 쳐다봐서 그런가ㅋ) 다우렛이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한참 후 알고보니 변호사였고 지금은 은행에서 컴플라이언스일을 맡고 있다고 다른 친구가 말해주었다.
"쟤땜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다고! 진짜 작은 거래도 바로 전화와서 꼬치꼬치 캐물어. 어쩌고 저쩌고.. 하 참"
"아 은행의 경찰역할이구나!"
내 말에 다들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업무라고 한다. 다우렛은 옆에서 불평을 하건 말건 본인 적성에 이 일이 아주 잘 맞는다고 말했다.
다우렛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아는 것도 많았다. 본인의
취미가 양궁인데 한국이 양궁으로 유명한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올림픽마다 메달을 다 쓸어간다면서 말이다. 김치를 비롯한 한국음식도 좋아하고 한국 뉴스도 관심있게 본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독특해. 영화를 보면 다들 욕을 하고 살아. 아무리 욕을 해도 뭐라 안하면서 폭력만은 절대 용납 못하는 것 같아. 아참! 심지어 시위때도 폭력이 없어. 이번 계엄령때 무장한 군인이 시민한테 꾸벅 사과하는 영상 봤어?"
마침 그날이 탄핵이 결정된 날이었는데 다우렛덕분에 친구들은 한국인들의 평화 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경청했다. 덕분에 나는 뿌듯하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지켜낼거야! 평화적으로 말이지."
이 말을 들은 미국인들은 미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깊이 탄식했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도 다르지 않아”라고 응수 했고.
근처에 앉은 예씨라는 친구가 화제를 바꾸듯 어제 은행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는데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일전에 XXXX 커스터머 서비스 팀장으로 일하던 시절, 하기 싫은데 억지로 팀원들과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시 팀원들에게 파트를 조금씩 나눠줬는데(대부분 나처럼 억지로 했지만 일부는 립싱크댄스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줌) 편집하다가 비는 부분은 나랑 동료랑 둘이서 대충 회사 이곳 저곳 장소 바꿔서 이상한 춤과 립싱크로 떼웠다고 말했더니 주변에서 크게 웃었다.
다우렛이 나에게 지금도 프랑스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아, 나는 지금 프랑스 낭시에 있는 시장에서 일하고 있어. 작은 한식당에서 닭강정을 튀기지."
이번에는 테이블 반대편쪽에 있던 사람들까지 일제히 내 말에 귀를 귀울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의사, 변호사, 은행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오히려 시장에서 일하는 내가 더 흥미롭겠군. 갑자기 버거씨가 수다스러워졌다.
"그녀가 만드는 닭강정은 세상 최고야. 누구나 한 번 먹어보면 반하지. 그녀는 뿐만 아니라 프랑스인 손님들과 소통하는것도 너무 즐거워 해. 해외에서 일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수년간 공유하고 있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좋아한대. 어떤일을 하건 훌륭하게 해내고 즐길 줄 아는 그녀를 나는 존경하지. 어디서든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야."
오늘도 여친 자랑이 과하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길래 민망해서 그만 좀 하라고 버거씨를 말렸다. 그런데 버거씨가 세상 따뜻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네.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후식으로 나는 밀페유를 먹었다. 음... 두말하면 입아픈 맛이다. 진짜 맛남!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티라미수를 먹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티라미수지~!’ 하면서 말이다.
드디어 선물 교환식! 오늘 파티의 메인인 시크릿 산타 순서가 왔다.
이번 모임의 주최자인 친구는 유리병에다 각자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넣었고 가장 먼저 다우렛에게 제비뽑기를 시켰다. 다우렛은 내 선물에 당첨되었다.
다행히 다우렛은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
"나 사싱 7시간 후에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거든. 여동생한테 선물로 주면 굉장히 좋아할 것 같아. 향기도 정말 좋다."
으악... 몇시간 후면 비행기를 타야 된다는 사람이 아직 짐도 안 싸고 여기와서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혀를 차며 웃었다.
나는 빨간 꾸러미에 당첨이 되었다. 예씨가 주는 선물이었다.
선물로 향초를 가져왔는데 또다른 향초를 선물로 받았네. 그리고 초콜렛도 한 상자 받았다. 초콜렛이 더 마음에 든다. 다음주 출근할 때 가져가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어야징.
우리는 정말 엄청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웃긴 농담도 많이 나누었다. 특히 버거씨는 너무 행복해 하며 여러번 나에게 속삭였다. 내가 제일 예쁘고 자랑스럽다고 말이다 우헤헤헤 말하면서도 웃기네 하하하 나는 별처럼 반짝이고 세상 최고의 선물이고 또 뭐더라.
아무튼 기분이 찢어진 버거씨는 1월초에 한번 더 모이자며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때봐서 닭강정 맛을 보여줄 지 말지는 나랑 상의하겠다면서 말이다.
친구들과 인사하고 헤어지려는데 다시 뒤에서 불러세우는 친구들. 레스토랑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자고 했다. 유럽애들도 이런거 하는구나. 그만큼 오늘의 만남이 그들에게도 소중했던가보다. 이멤버리멤버 느낌으로다가 여러장 가로로 찍고 세로로 찍고 어깨동무도 하고 그랬다. 딱 한번 만났는데 다들 급친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분이 너무 좋았던 버거씨는 자신의 인생에 반짝임을 가져다 주어서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솔직히 버거씨 덕분에 더 다채로워진 건 내 인생이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말이다.
세상은 참 즐거운 곳이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행복한 노엘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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