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날 오후 우리는 또다시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놀러갔다.
즐길 수 있을때 즐겨야지! 오늘은 내가 츄러스 사줄게~
오후 5시만 되면 벌써 한 밤이 돼 버리는 요즘이다.
어디 따뜻하고 아늑한 곳이 없을까 하고 한바퀴 둘러보았지만 이미 좋은 자리들은 다 차버렸네. 저런저런...
야외에 서서 뱅쇼나 먹거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늑한 곳을 찾고 싶어 계속해서 둘러 보았다.
산장처럼 차려진 가게를 한 곳 발견했다. 딱 봐도 꽉 찬 듯해서 별 기대는 없었지만 안쪽에 벽난로가 보이길래 신기해서 구경하려고 들어가보았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인가? 가장 안쪽에 빈자리가 있다!!! ㅋㅋ 그것도 완전히 VIP석이다.
벽난로 바로 앞에 있는 푹신하고 널찍한 소파석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푹 꺼지듯 털썩 앉으며 '하아~' 하는 소리를 저절로 냈다. 너무 편안하잖아~
우리 왼편에 있는 벽에는 가짜 창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흰눈이 내리는 한 밤의 겨울 풍경이 리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덕분에 낭만을 배로 만들어 주었다.
커플과 가족팀이 많았는데 큰 테이블위에도 작은 모닥불이 불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합석을 하고 모닥불에 손을 쬐기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뱅쇼를 사러 나갔던 버거씨가, 이곳에는 뱅쇼를 팔지 않는다며 낭패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뱅쇼가 없으면 뭐가 있냐고 물었더니 버거씨 왈;
"Bière de Noël, 크리스마스 맥주가 있어."
"아 그럼 크리스마스 맥주를 마셔야지!!"
뱅쇼는 금요일날 마셨으니까 오늘은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맥주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모닥불 앞에서 잔을 부딪힌 후 시원한 맥주를 꿀덕꿀덕 삼켰다.
캬... 이게 바로 낭만이요~~!!
나는 잠깐 밖으로 나와서 츄러스를 사왔다. 곳곳에서 프레첼이나 츄러스를 팔고 있었으므로 멀리 헤멜 필요도 없었다.
8조각에 8유로. 비싸넹... 누텔라도 받아왔다.
버거씨는 안 먹는다더니 게눈 감추듯 세개나 순삭했다.
근데 설탕이 너어무 심하게 덩어리채 뭍어있어서 더이상은 못먹겠단다. 버거씨는 내가 먹을 츄러스를 미리 꺼내서 설탕을 탈탈 털어줬다. 그래도 너무 달아서 한 개 반 밖에 못먹겠다.
남은거는 어쩌지? 버리기는 아까운데...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노숙인이 "봉쥬 마담~ 배가 너무 고픈데 작은 동전 있으신가요?" 라고 말을 걸어왔다.
작은 동전 몇 개를 건넨 뒤, "혹시 츄러스 좋아하세요?" 라고 물었더니 바로 손을 내미는 그 사람에게 "차갑게 식긴 했지만..." 이라고 말하며 남은 츄러스 봉지를 건네주었다. 상관없다며 기쁘게 받는 그 표정을 보며 나 또한 안도했다.
버거씨는 처음으로 월요일 아침에 기차를 타고 룩셈부르크로 바로 출근을 했다.
그날 저녁에 버거씨가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하는데도 차가 막히면 한 시간 정도 걸리거든. 낭시에서 룩셈부르크까지 기차로 한 시간 반 걸렸는데 기차안에서 편안하게 쉬거나 책을 볼 수 있으니 편했어. 조만간 네 아파트에 와이파이 연결해서 낭시에서 월요일 재택근무까지 하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것 같아. 낭시에 갖다놓고 쓸수 있는 커다란 스크린을 하나 알아봐야겠어. 그리고... "
SK는 우리 커플이 20대같은 연애를 하고 있다며 웃곤 한다.
이 나이에도 낭만과 열정이 있는 버거씨가 참 좋다. 고맙고.
덕분에 내 연애세포도 오랜만에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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