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를 내고 집에서 푹 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코로나 증상은 더 심해졌다.
인후통이 극심했고 기침에 오한까지 들었다.
나보다 증상이 먼저 있었던 지니는 Fervex라는 약을 추천해 줬다.
[언니, 이 약 드세요. 먹으면 졸리니까 밤에 자기전에 드셔야해요, 효과 진짜 좋아요.]
잠을 푹 잘수 있다는 말에 나는 바로 홀깃했다. 하지만 SK는 부작용을 조심하라고 했다.
[그 약이 효과가 좋긴 하지만 과용하면 위에 안좋아. 마시면 잠이 잘 오길래 한때 이거 너무 자주 먹다가 나 위 상했잖아.]
아... 그렇게 독한가.
버거씨한테 말했더니 버거씨는 나더러 이 약은 절대 절대 먹지 말란다. 자기는 사다 놓고도 다신 안 먹는단다. 심장에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나...
"나는 그런 독한 약 보다는 천연재료들의 힘을 믿어. 생강, 레몬, 꿀같은거 있잖아. 아로마오일도 효과 좋은게 많아. 배랑 타임도 좋고 비타민 씨, 프로폴리스, 징크......"
그렇다.
버거씨는 양약을 싫어한다.
내가 어디 안좋다고 하면 차부터 끓인다.
욕실 선반에는 각종 아로마가 가득하고 부엌 선반에는 각종 차들이 다양하다. 생강이나 레몬등은 언제나 구비되어 있고 말이다. 당신 무슨 마법사냐면서 내가 자주 놀린다.
나는 이튿날 결국 버거씨 몰래 Fervex를 샀다.
약사한테 물어보니 딱히 부작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냥 하루에 네 번까지는 마셔도 된단다. 맛도 여러가지가 있길래 그냥 무설탕으로 달라고 했다. 알약도 있다는데 물에 타먹는걸로 골랐다.
그날 저녁 나는 한 포를 미지근한 물에 타 마시고 정말로 푹 잤다.
뜨거운 전기매트에서 땀을 빼고 푹 잤더니 뭔가 살짝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버거씨한테는 말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내가 아주 조금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을때 안타깝게도 버거씨의 증상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생강꿀차도 만들어놨고 각종 진통제나 아로마오일을 다 구비해 놨다며 의기양양하던게 엊그제였는데 지금은 코가 막히고 목감기가 심해서 목소리가 딴 사람처럼 들렸다. 아이고 내 탓이오...ㅠ.ㅠ
"나 때문에 미안해... 연말에 내가 당신을 보러 가는게 아니었는데... 내가 코로나를 옮겨버렸네...ㅠ.ㅠ"
"아니야. 나는 후회하지 않아. 다시 시간을 되돌린대도 나는 너 없이 절대로 새해를 맞이하지 않을거야."
"로멘틱하긴 한데.. 목소리가 너무 아픈것 같애... 나 지금 낯선 남자랑 통화하는거 같다."
"아... 내가 너무 오만했어. 이 기회에 나는 겸손을 배웠어. 나는 정말 건강하고 누구보다 면역력이 좋다고 자부 했거든. 꿀, 생강, 레몬, 프로폴리스 등등... 다 구비해 놨는데... 아무것도 듣지를 않아.... ㅠ.ㅠ"
이 부분에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나 버렸다.
내가 아플때는 허브의 효과를 믿는다며 맨날 차만 끓여주더니 이제서야 깨달았나보다.
나는 이때다싶어 Fervex를 사 먹었다고 고백했다. 그랬더니 버거씨가 잘했단다ㅋㅋㅋ 죽을것같이 아파보니까 이제 다 이해가 간단다. 뭐라도 효과가 좋으면 먹어야 된다고 말이다ㅋㅋ
재택근무를 이틀 한 후에 결국 의사를 만나 진단서를 받아온 버거씨. (일년에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일 수가 정해져 있어서 계속 이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일 안하고 집에 가만히 있는게 너무 싫다는 버거씨는 어떻게든 사무실로 출근을 하려고 했단다. 그런데 동료들이 말려서 진단서를 받아 올 수 밖에 없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는 버거씨. 집순이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집에 가만히 있는게 뭐가 힘든거지...?
버거씨 주치의는 사흘간의 병가를 내 주었는데 버거씨가 코로나인것같다고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의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단다. 어차피 이제는 코로나든 독감이든 별 차이가 없다면서 말이다.
나는 매일 전기매트에 누워서 자고 먹고를 반복했다. 비타민섭취를 위해 귤을 잔뜩 쌓아놨고 닭죽도 한솥 끓여놨다. 직접 담은 꿀 생강 레몬차를 입에 달고 지냈다. 이 맛있는 닭죽 버거씨 좀 나눠주고 싶네... 먹고나면 몸에 열이 나는데...
인후통이 심해서 고통스럽긴 했지만 종일 잠을 자다보니 하루가 한시간처럼 빨리 지나갔다.
나는 이제 덜한데..
버거씨 빨리 나아서 주말에 데이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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