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이었다.
이사 나온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두 달치나 냈던 보증금이 여태 들어오질 않고 있었다. 전 집주인은 이렇듯 끝까지 안하무인이었다. 바로 준다고 했으면서....
"집주인한테 이메일 보내볼까..."
내 말에 버거씨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그 사람은 이번에도 답장을 안할거야. 내가 중개인한테 이메일 보낼게."
"하지만 중개인도 집주인한테 지쳐서 더이상 같이 일 안한다고 했잖아."
"상관없어 너의 계약서를 서명한 건 그 중개인이었잖아. 그 사람이 책임지고 너를 돕게 할거야. 그 중개인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말이야."
버거씨는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관련 규정을 검색해봤는데 보증금을 시일내로 안돌려주면 매달 10프로가 패널티로 부과된대. 넌 두달치가 보증금이었으니까 패널티가 만만치않지. 내가 서류 양식을 찾았으니까 내일까지 보증금을 안돌려주면 등기로 공식 레터를 보내자."
와... 집주인이 버거씨를 잘못 만났네...
"중개인한테도 전화를 걸어서 법규에 대한 설명을 해 줬어. 기한내로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법적으로 진행 할 거고, 내일 바로 공식레터를 보낼거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중개인이 오늘안에 집주인하고 상의하겠다네?"
그날 오후 버거씨는 집주인으로부터 문자 메세지를 받았다며 나에게 그 메세지를 포워드 해 주었다. 그 누구에게도 답장을 안하던 양반인데 쫄긴 쫄았나보다.
[안녕하세요. 슈미트입니다. 중개인을 통해 귀하의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방금 상황을 통보받았으므로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있으며 오늘은 은행이 문을 닫았으니 내일 직접 이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버거씨를 향한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기 시작했다. 리스펙트. 이 안하무인을 움직이게 하다니...!
의기양양해진 버거씨는 집주인에게 뭐라고 답장을 했는지도 보여줬다.
[안녕하세요 슈미트 씨.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체와 함께 법에 따라 매월 이체한 월세 영수증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XXX@gmail.com으로 이메일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번 주말까지 받지 못하면 법적 절차를 밟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음... 너무 거칠지 않나?"
내 염려에 버거씨가 말했다.
"넌 걱정할거 없어. 이렇게 게으르고 다른 사람 우습게 아는 사람들은 강하게 나가야 해. 넌 지금까지 충분히 친절했고 그는 너의 요구를 항상 무시해왔지. 이제는 거칠게 나갈 차례야. 이번엔 날 믿어."
"혹시 열 받아서 말도 안되는 핑계로 보증금을 깍으면?"
"저 사람은 그럴 권한이 없어. 이미 이사 나가는 날 문제 없다고 중개인이 확인하고 사인했잖아. 만약 그런 식으로 또 장난질을 치면 그때는 또 법적으로 나가면 돼. 근데 이 사람 성향으로 봐선 더이상 문제 만들지 않을거야.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걸 이제는 깨달았을 테니까."
"오 내 영웅 최고야!"
"네가 최고니까!"
하하하 말도 참 이쁘게 한다.
강강약약 우리 버거씨 너무 멋지다.
집주인은 그 다음날도 까먹고 있다가 거짓말로 변명을 했다. 결국 다다음날 보증금을 온전하게 돌려받을 수가 있었다.
휴... 버거씨 없었으면 나 혼자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내 영웅이다 정말.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날 버거씨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좋은 친구에게 나는 잊지 않고 메세지를 보냈어. 여기 봐봐 내가 뭐라고 보냈는지."
버거씨가 보여준 문자 메세지는 다름아닌 이전 집주인한테 발송한 것이었다. 메리크리스마스 메세지라도 보낸건가 했더니...
[슈미트씨, 보증금은 잘 받았습니다. 월세 영수증은 잊으셨던데요?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상기 시켜드립니다.]
악 ㅋㅋㅋ
진짜 슈미트씨는 임자를 잘못 만났구나. 나는 보증금을 받았으니 사건 종료라고 생각했는데 버거씨는 이대로 놔 줄 생각이 없나보다.
"세상 사람들 우습게 보는 이 남자에게 내가 이번 기회에 모든 사람들이 만만치는 않다는 교훈을 남겨주려고 해."
버거씨 말로는 아무래도 내가 있었던 그 아파트는 월세를 주는게 불가능한 곳인데 불법으로 세를 놓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고 한다. 단열 수준으로 봐선 최소 법적 수준에 못 미치는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내가 월세 영수증을 달라고 거듭 요구 했을때 주인은 나를 우습게 봤던지 법적으로 영수증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며 법을 찾아보라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나는 버거씨의 도움으로 관련 법류를 찾아 답장을 보냈는데 그 이후로 잠수를 타기 시작한게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아무튼 버거씨 말대로 나는 일단 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 지 구경만 할 생각이다.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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