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시에는 한 주 내내 비가 내리고 있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병가를 내고 집에 쉬고 있는 버거씨는 지루해서 몸살이 나는가보다. 아침부터 음성메세지랑 문자가 쉴 새없이 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 좀 봐! 눈이 오고 있어!]

낭시는 맨날 비만 오는데 티옹빌에는 눈이 내리는구나. 예쁘다...
버거씨는 내가 근무중인 걸 알텐데도 바로 화상전화를 걸어왔다. 눈 오는 걸 실시간으로 보여줘야 된다면서 말이다. 밖에 나가서 눈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 버거씨는 전화를 서둘러 끊겠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오 셰리... 네 얼굴을 보고있다는 사실이 나는 기적처럼 느껴져."
표정만 보면 수년만에 만난 연인인 줄 알겠다.
"집에 혼자 있느라 많이 심심하지?"
"그게 아니라 지난주에 못봐서 그런지 네 얼굴을 보고 있는데 막 기분이 이상해져. 그냥 기적 같아. 네가 내 여자친구라는게..."
이러다 우는거 아닌지...
나도 F지만 직장인지라 버거씨의 감수성에 같이 젖어들지 못하겠다.
"토요일날 내가 갈게. 그러니까 그때까지 우리 둘 다 감기 다 낫기로 해. 잘 쉬고 잘 먹고 있어. "
감수성 터지는 버거씨의 표정을 외면한 채 상냥하게 끝인사를 박고 전화를 끊었다.
그랬더니 그 후로 문자 메세지가 계속 날아왔다.
[너 일하는데 내가 방해한 게 아니길 바래.]
[네 얼굴을 봐서 너무나 좋았어.]
[아참,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 : 너는 내가 본 중에 가장 예쁜 미소를 가졌어.]
[넌 정말 아름다워, 셰리]
[너의 아름다움은 다이아몬드만큼 빛이나.]
[사랑해.] <-이건 한국어로 썼음
[내가 너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워.]
유난스러운 문자가 도착할 때마다 웃음이 났다. 일주일 못봤다고 이렇게나 애가 타다니.
퇴근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더니 버거씨의 수다가 폭발했다. 마치 온종일 내 전화만 기다린 사람처럼 말이다.
내가 마트에 들러 물건들을 계산할 때도 버거씨는 얼마든지 대기할테니 전화를 끊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디저트가게에 가서 디저트를 살 때도 버거씨는 잠잠히 기다렸다.
집에 도착해서도 화상으로 한참을 더 떠들었다.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다 들려주는 말많은 어린 아들을 둔 엄마의 기분이 비슷하지 않을까.
결국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전화 통화를 종료했다.
"너의 다이아몬드는 배가 고파... 밥을 먹어야겠어."
버거씨는 그제서야 웃으며 알았다고 나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끊을때도 버거씨는 이렇게 인사했다.
"이따 다시 통화하자~"
이 사람은 내가 다이아몬드라고 한다.
나를 만난게 기적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최대 관심사라고 한다.
내 가치를 높게 쳐주는 이 사람과 함께 있을때면 나는 진짜 다이아몬드가 되는 기분이다.
버거씨가 나에게 자랑스럽다고 칭찬할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난 다이아몬드니까~
나를 위해 갖은 수고를 마다않는 버거씨에게 내가 고맙다고 말하면 버거씨는 이렇게 말한다.
넌 최고를 가질 자격이 있으니까.
행복이 별건가.
이게 행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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