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감기가 덜해지나 싶더니만 출근해서보니 다시 심해지는 듯 했다.
SK는 결국 나더러 병가를 내라고 조언해 주었다.
문제는 프랑스에서 병가를 내려면 진단서가 필요하고, 진단서를 받으려면 의사를 만나야 하는데 당일날 헝데부를 잡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나는 지정 의사도 없고...
둘이서 앱으로 가장 빠른 날짜의 제네랄리스트를 알아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SK는 남편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고 그녀의 남편이 알려준 대로 나는 일찍 조퇴를 한 후 버스를 타고 일종의 응급실처럼 운영되는 기관을 찾아갔다. 이곳은 사전 예약없이 환자를 받아준다고 한다.
딱 들어갔더니 사람이 엄청 많다. 예상했던 바다. ㅠ. ㅜ
일단 접수를 하는 곳인듯 보이는 곳에가서 줄을 섰다.
이곳에서 나는 한시간 넘게 서 있었다.
접수 창구에 사람이 두명 뿐이라 더 오래걸렸다.
"저 혹시 따로 접수를 하거나 번호표를 뽑는거는 아니지요?"
혹시 불안해서 앞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녀역시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마냥 이러고 서 있는건가봐요. 진짜 시스템이 너무 엉망이네요."
우리 말을 듣고 있던 앞쪽 사람들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다행이다. 나만 번호표가 없는게 아니니까.
한 참 후에 접수창구에 내 순서가 됐을때 증상을 이야기해주었다. 전남편과 연결돼 있던 뮤튜엘(사보험)은 만료되었고 직장에서 나오는 뮤튜엘 카드를 보여주었다. 또다시 호명될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대신 이번에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릴 수가 있었다. 또다른 한시간이 그냥 흘러갔다. 기침하는 사람도 많고 (나는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곳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나 한명뿐이었음) 다리나 팔을 다친 사람등등 다양한 환자들이 있었다.
내 이름이 호명된 후 어느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또다시 나는 한시간 가량 방치 되었다. ㅡㅡ; 나를 잊어버린게 아닌가 싶어 결국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을때 젊은 남자 의사가 왔다.
나는 아프고 지쳤는데 이 의사는 아주 태연한 태도로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내가 작은 식당에서 일한다고 오늘 조퇴해서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아픈데는 안묻고 "어느 레스토랑이에요? 한국인이세요? 비빔밥도 있어요? 어디에 있어요? 낭시에 한국인이 하는 한식당이 있는지 몰랐네요! 나 김치도 좋아하는데" 이런 가벼운 대화만 계속 이어가고 있었던것이다. 나는 몸이 힘들어서 짜증이 살짝 올라왔고 아픈 증상 얘기만 했다.
의사는 그냥 가벼운 약만 처방해주었다. 진통제랑 그냥 코랑 목에 뿌리는 스프레이가 고작-
이걸 위해 내가 네시간을 허비했나 싶어 좀 허무했지만 그래도 당일포함해서 진단서를 사흘치 내 주었으니 헛고생은 아니었다.
싱가폴이나 태국에서 근무할때도 병가는 진단서가 필요했지만 이렇게 의사를 보는게 어렵지는 않았다. 제일 빠른 헝데부도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하던데 프랑스에서 다들 병가는 어떻게 내는건지....
진단서를 받으러 접수창구로 돌아가다가 노부부를 마주쳤다. 혹시 이곳에서 화장실을 본 적이 있냐고 내가 물었더니 할머니께서 말로 설명하기는 복잡하셨던지 직접 화장실까지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가 주셨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대기실에서는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기브스한 다리 밑에다 목발을 받추려다가 그만 목발을 놓쳐서 앞에 서 있던 할아버지에게로 목발이 넘어져버렸다. 그 할아버지는 아플법도 한데 껄껄 웃으며 "나를 아사씬(암살)할거면 이걸론 안될거요 허허" 라고 말해서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하셨다. 청년은 얼굴이 빨개지며 사과했고 할아버지는 친절하게도 목발을 집어서 청년의 기브스한 다리 밑에 고이 세워 주셨다.
시스템은 엉망이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화를 내는 사람도 없었고 서로에게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들 아파서 온 사람들이고 인내심에 한계가 있을텐데 심지어 일하는 사람들도 다들 친절했다.
병원비는 15유로 정도 나왔고 약값도 비슷하게 나왔다. 뮤튜엘에서 환불이 되는 듯 하다. 이젠 내가 스스로 챙겨야 하니 차근차근 배워나가야지.
SK는 나더러 주말까지 푹 쉬라고 말해주었다. 다행히 이번주까지는 지니가 있어서 괜찮다는 것이었다. 대신 다음주부터는 한동안 SK랑 나랑 단 둘이 일해야 되니까 그땐 내가 꼭 필요하단다. 병가쓴다고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면서 다음주에 보자는 SK.
이럴땐 엄마같이 든든한 그녀이다.
주말에 버거씨더러 오지 말라고 해야겠다.... 떡국 끓여주려고 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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