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퇴근 후 나는 또다시 기차를 타고 티옹빌로 갔다.
그곳에는 버거씨와 버거씨의 누나 내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감기기운이 있어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나는 상관이 없지만 괜히 버거씨랑 누나네한테 감기를 옮기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기때문이다. 그때 버거씨는 이렇게 말했다.
"너 없이는 안돼..."
그래 나도 올해까지 연말에 혼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못이기는 척 그렇게 버거씨와 버거씨 누나 내외와 연말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대신 [비쥬 금지]라고 모든 이들에게 선포를 했고 뭐 먹거나 마실때만 빼고는 마스크를 계속 착용했다.
우리 네사람은 보드게임을 하면서 샴페인을 마셨다.
루미 첫 판은 내가 이겼고 두번째 판은 누나의 남편인 리차드가 이겼다.
샴페인을 마시면서 보드게임을 하는 틈틈이 버거씨는 안주를 내왔다.
승부에 너무 집착해서 진지해지는 버거씨를 다함께 놀리느라 엄청 많이 웃었다.
"셰리, 원래는 1분안에 해야 하는거 알지? 이러다간 곧 새해를 맞이하겠어."
"우리 이제 1분씩 타이머 잴까? 아 쟤가 할때만 재면 되겠다. 다른 사람들은 빨리빨리 하니까."
"이건 게임일 뿐이잖아. 좀 릴렉스할 순 없겠니?"
그런데 게임일 뿐이라고 강조하던 누나가 나중에는 본인이 계속 지니까 완전 심각해졌음ㅋㅋㅋ 하지만 누나는 아무도 놀릴 수가 없어서 다들 합죽이가 됨ㅋㅋ
누나가 갑자기 우리에게 선물 상자를 하나씩 내밀었다.
"아... 저는 아무것도 준비한게 없는데요 ㅠ.ㅠ"
"아니야, 이거 정말 작은 선물이야. 내가 좋아서 하는건데 뭐."
민망함은 잠시 미루고 선물 상자를 풀어보았다. 또 이런건 기쁘게 풀어보는게 예의라지.
내 선물은 바디워시랑 바디로션.
버거씨 선물은 짜잔! 초보자를 위한 한국어 낱말카드다!!ㅋ
"와 버거씨 선물도 꼭 저를 위한 선물처럼 제 기분이 좋네요! 너무 감사해요."
"그치그치? 좋아할 줄 알았어. 두사람에게 뭔가 선물을 하고 싶어서 프낙에 갔었는데 이게 딱 눈에 띄는거야. 이거다 싶더라구."
버거씨는 바로 뜯어서 낱말카드를 읽기 시작했다.
"조심해. 지금 꺼내서 공부한 단어들은 내가 내일 다 검사할거야. 하루에 두 장씩만 외우자."
"지하철... 취미... 택시... 토하다...?"
"동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명사 먼저 하는게 좋을거야."
지하철, 취미, 생일 세단어를 가르쳐줬는데 버거씨 뿐만 아니라 누나네 내외도 옆에서 다같이 따라 읽으면서 외웠다.
더 웃긴건 다음날 내가 "한국어로 XXX이 뭐지?" 라고 기습 질문을 했을때 버거씨만 빼고 누나네 내외가 바로바로 큰소리로 동시에 대답을 했다는 점이다. 버거씨만 혼자 대답을 못하고 어버버 하다가 누나와 매형에게 화풀이를 했다.ㅋㅋㅋ "아 좀 조용히 하라고! 나한테 묻는거잖아!" 라며 버거씨가 짜증을 버럭 냈을때 우리는 더 크게 웃으면서 버거씨를 놀렸다ㅋㅋ
누나네 자주 봤으면 좋겠다. 버거씨가 귀여워지네. 쁘띠비니.
루미게임을 몇 판 하고나서 와사비라는 보드 게임을 했다. 나는 각 한 판씩 이겼다. 우헤헤~ 한 번도 못이긴 버거씨 표정이 샐쭉했지만 내가 이겨서 자랑스럽다며 나랑 하이파이브를 했다.ㅋㅋ 부러운가보다.
버거씨는 우리가 샴페인을 마시는 동안 굴을 손질해 왔다.
리차드는 굴을 못먹는다고 해서 우리 셋만 먹었다. 언제 먹어도 달고 맛있다.
이건 누나네가 사온 아페로 안주.
언어, 푸아그라, 치즈, 잠봉 등등 다채롭고 맛있었다.
잠시 후 버거씨가 커다란 가리비를 구워왔다. 이게 오늘의 메인인가 보다. 이미 아뻬로로 배가 어느정도 부른 상태였으므로 양이 작아 보이는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접시는 바로 이 날을 기다렸겠구나ㅋ 어쩌면 크기랑 모양이 이리도 안성맞춤이니!
버거씨가 직접 요리한건 아니고 시판을 사다가 오븐에다 구운거였다. 그런데 기대이상으로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랬다. 고소한 크림소스안에 관자가 생각보다 엄청 많이 들어있었다.
크림소스에 빵을 찍어먹어도 맛있었다.
식사 후에는 치즈를 먹었다. 다들 나에게 이게 맛있다며 권해준 치즈가 하필이면 염소치즈였네. 염소치즈 빼고는 다 잘 먹는데... 염소치즈 특유의 냄새(노릿내?)가 싫다고 말했는데 아무도 그게 무슨 냄새인지 이해를 못하는 듯 했다.
후식으로는 버거씨가 앙증맞은 트리모양의 티라미수를 내왔다.
배가 엄청 부르고 기분도 만족스럽고...
우리는 새해를 기다리며 거실 소파에서 영화를 한 편 봤다. 스트립걸이 주인공인 영화라 선정적인 장면이 꽤 많이 나오는 코메디였다.
자정이 되었을때 샴페인을 한 잔씩 더 마시고 디저트를 또 먹었다. (나는 디저트는 패스-)
어쩌다 일년만에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 연말을 함께 보내고 있다. 참 지루할 틈이 없는 다이나믹한 인생이 아닌지.
나를 가족으로 따뜻하게 맞아준 이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새해에 더 행복해 질 것은 자명한 사실.
새해 복은 벌써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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