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씨가 찾아낸 오늘의 등산 코스는 바로 이 교회 주차장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초등학교와 마을을 지나 숲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가 금방 숨이 차서 나 혼자만 켁켁거렸다.
둘 부자는 강철 심장인가. 숨소리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네...
평소 조깅으로 단련해온 체력들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버거씨는 저만치 앞서서 혼자 쭉쭉 걸어가고 있는 아들을 불러세우더니 오늘은 조금 천천히 걷자고 말했다.
그래~ 풍경이 이리도 좋은데 좀 감상하면서 가자구.

이제서야 숲으로 진입했다. 이제 좀 평지가 나오려나 기대했건만 계속 오르막이네. ㅠ.ㅠ

걸으면서도 버거씨는 쉴새없이 말을 한다. 나는 숨쉬는것도 벅찬데 참 대단하다.
버거씨가 매고 있는 백팩에는 생수뿐만 아니라 내가 챙겨넣은 귤도 4개 들어있다.
걷다가 지쳐가던 내가 숨을 할딱이며 버거씨한테 말했다.
"그 백팩... 내가 들어줄까?"
"안되지. 당연히 내가 메야지. 근데 이걸 왜?"
"나는 그 백팩을 맬테니까... 당신은 나를 업어..."
예상 못한 내 말에 두 사람 다 웃음이 터졌다.
그건 안되는거니...

포기하고 싶을 즈음에 드디어 평지가 나왔다.
좁게난 숲길을 따라서 우리는 나란히 한참동안 걸었다. 산속에 길게 난 아기자기한 길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버거씨도 기분이 좋은지 자신의 집으로 내 친구들을 초대할 계획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생각만해도 나도 신난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갑자기 진흙탕길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앞서서 아들과 함께 건너갔던 버거씨는 나를 위해 다시 돌아왔다.
"나혼자 갈 수 있는데?"
하지만 버거씨는 등을 보이면서 나더러 엎히란다.
"네가 혼자 건너갈 수 있다는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우히힛
나는 두 말않고 버거씨 등위에 업혔다. 이런 기회는 왔을때 잡는거지.
진흙길을 다 건넌 후에도 나는 좀 더 쭉쭉 가라면서 내리지않고 최대한 버텼다.
그 후에도 진흙탕길이 두 차례나 더 나왔고 매번 버거씨는 되돌아와서 자신의 등을 내 주었다.

"미끄러우니까 조심해..."
내가 염려했지만 버거씨는 나를 업은채 안정적으로 미끄러운 진흙길을 잘만 걸어내려갔다.
이런 든든하고 다정한 사람을 내가 이전에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이러니 나는 세상이 공평하다는 것을 여전히 믿는다.

산행을 끝내고 마을로 내려왔을때 우리는 귤을 까먹으면서 주차장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왔을때 버거씨가 아침에 사온 블루베리를 꺼내 씻었다. 그리고는 블루베리 스무디를 만들어 주는 버거씨.

블루베리, 바나나, 아이스크림(!), 우유 그리고 다크초콜렛(!)이 들어갔다.
정말 맛있게 원샷했다.
근육통은 좀 남겠지만 이번 주말에도 사랑받는 기분 만땅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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