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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감자합니다

by 요용 🌈 2025. 3. 29.

토요일 버거씨는 티옹빌 기차역에서 나를 픽업한 후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을 차례로 한 차에 픽업했다. 

 

"지난 며칠동안 혼자 지냈는데 오늘은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였구나. 정말 기분좋다!" 

 

운전하는 버거씨의 표정에서 기분좋은 에너지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오늘 내가 모두를 위해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는데 맞춰볼 사람?" 

 

버거씨의 질문에 내가 먼저 대답했다. 

 

"그거 먹는거면 좋겠다. 나 배고파." 

 

내 말에 버거씨는 큰 소리로 껄껄 웃더니 "먹는게 맞을지도 모르지." 라고 말했다. 

 

"아하! 아빠 우리 레스토랑 가나요?" 

 

작은 아들이 대답했고 버거씨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디 저녁식사 예약을 해 놨나보다. 

 

서프라이즈기때문에 더이상은 안알랴준단다. 

 

버거씨의 차는 곧장 룩셈부르크로 달렸다.

집에서 20분정도만 달리면 바로 룩셈부르크가 나온다니 정말 가깝군. 

예쁜 교회랑 시청 건물이 보였는데 낮이었음 잠깐 내려서 구경하자고 했을텐데 좀 아쉽다. 

 

버거씨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아닌 한식당이었다. 

 

레스토랑 이름이 감자다ㅋ 귀여운 이름. 

 

신나서 방방뛰는 나와는 다르게 두 아들들의 표정이 좀 떨떠름해보였다. 그들에게는 한국식당이 너무 낯설었던것이다.

부디 이곳 음식이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켜주었으면 좋겠는데...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와 버거씨는 "안녕하세요!"를 큰소리로 외쳤건만... 그들은 중국인인듯 했다. 살짝 실망...  

 

"감자가 무슨뜻인줄 알아?" 

 

내가 버거씨에게 감자의 뜻을 알려주었더니 버거씨는 그때부터 "감자합니다..."하고 연거푸 중얼거렸다. 그 후 내가 뭐라도 해 주면 "감자합니다"라고 공손하게 대답했고 그럴때마다 나는 깔깔 웃었다.  

 

"다같이 모이는 이번 주말에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었어. 한식당을 검색해 보다가 이곳을 발견했지. 리뷰도 좋길래 예약한건데 진짜 한국인이 아니라니 좀 아쉽긴하다." 

 

 

아들들은 둘다 음료수 '갈아만든 배'를 주문했는데 다행히 둘 다 너무 맛있다고 좋아했다. 

 

주말저녁이라 그런지 서빙이 굉장히 느렸다. 그래도 우리는 수다를 떨면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우리가 주문한 닭강정(18.80유로: 약 30,000원)이 먼저 나왔다. 음 내가 만든것보다 더 달았지만 적당히 바삭하고 매콤하고 맛있었다. 다들 좋아했다. 

두번째 주문한건 동남아식(?) 소고기 볶음면 (17.20유로: 약 27,000원). 역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은 아니구나. 나는 그냥 그랬는데 버거씨랑 아들들은 좋아했다. 닭강정이랑 이 면요리에는 밑반찬 조금(김치, 오이무침, 감자조림, 무채)이랑 밥 한공기가 같이 나왔다. 

 

잠시후 우리가 주문한 바베큐한 상이 나왔다. 

2인용 코리안 바베큐 세트: 62유로 (약 98,000원). 

화려한 계단식 나무 접시에 나왔는데 다들 우와~ 하고 감탄했다. 

 

뜨거운 숯불이 등장했을때는 탄성소리가 더 커졌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불은 너무 거셌고 우리 모두의 얼굴을 활활 태울듯이 타올랐다. 이집에서 바베큐는 겨울에만 먹어야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양상추 반통만 덜렁 쌈채소로 나와서 살짝 실망... 

쌈장대신 밍밍하고 걸쭉한 된장이 나와서 또 한번 실망...

 

그리고 집게나 가위 혹은 최소 젓가락도 없길래 남자 직원한테 조심스레 물어봤는데 그는 내 질문이 이해가 안간다는 듯,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냥 가 버렸다. 프랑스어로 묻다가 영어로도 물었는데... 무시 당해버림;  

 

그러다 한국어를 하시는 여직원을 마주쳤는데 세상 친절하신 그 분 덕분에 기분이 다 풀렸다. 부엌에서 집게 두 개, 가위 한 개, 젓가락 한 쌍을 찾아다 주시며 "죄송한데 이걸로 괜찮을까요? 여기 사람들은 포크랑 나이프로 드시더라구요." 하며 어색하게 웃으셨다. 

 

"와 저 분 정말 친절하시다!" 

 

버거씨도 나랑 똑같은 생각이구나. 

 

아무튼 드디어 장비를 장착했으니 내가 폼나게 구워볼게. 

소고기 삼겹살 닭고기 새우 관자 오징어 등등 골고루 맛볼 수 있다며 다들 좋아했다. 속으로 나는 '이건 코리안 바베큐가 아니야...'라고 외쳤지만 절대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냥 정말 맛있다고 맞장구 쳤음. (물론 맛있긴 했다. 진짜 한식당만큼은 아니었단 소리지... 쌈장만 제대로였어도...) 

먼저 손을 씻고와서 양상추를 하나 손에 쥐고 쌈싸먹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걸 본 버거씨와 아들들은 나처럼 손을 씻고와서 따라 쌈을 싸먹었다. 아들들은 쌈장대신에 스윗 칠리소스를 넣어서 살짝 내 속이 상했지만(?) 그래도 모두들 대만족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바베큐에 왜 스윗 칠리소스를 주는건가요... 쌈장만 제대로 있었어도 칠리소스는 거들떠보지 않았을텐데...또르르...)

버거씨는 중간에 본인이 굽겠다고 나섰지만 내가 만류했다. 당신은 나처럼 가위질 못할거야... 라는 내 말에 버거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한국에서는 집안에서 이런식으로 바베큐를 해 먹어. 물론 숯을 사용하진 않고 전기팬이나 작은 버너를 사용하지. 우리집에선 거의 내가 고기를 굽곤해. 내가 좋아하니까." 

 

룩셈부르크 물가치고 저렴한 편이라며 버거씨는 대만족을 했다. 

 

나는 잘 먹었다고 버거씨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감자합니다." 

 

버거씨가 큰소리로 웃으며 따라말했다.

 

"감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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