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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살이

이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by 낭시댁 2020. 7. 14.

이미 하루전에 열쇠를 받고 시어머니와 얼마간의 짐을 날라놓긴 했지만 진정 이사의 첫날은 이날이었다.

침대를 비롯한 큰 가구들이 배달 오기로 한 날이고 자서방도 이틀간 휴가를 냈다.  

아침 일찍부터 자서방과 부지런히 짐을 날랐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었을때 자서방은 말했다. 

"너 혼자 엄마네 가서 점심 먹고 오는게 어때? 난 배가 안고프네. 앉을곳도 없고 그냥 나 혼자 와이파이 연결하면서 가구 배달 기다리고 있을게. 넌 점심먹고 충분히 쉬고 있다가 배달 도착하면 전화줄테니 그때 오면 돼." 

몇번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올때 내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오기로 하고 혼자 시댁으로 갔다.

 

시댁에서 식사를 하기도 전에 자서방이 배달 트럭들이 도착했다며 메세지를 보내왔다.

오잉.. 알았어. 후딱 먹고 갈게. 

식사를 서둘러 마친 후 돌아오려는데 외출에서 막 돌아오신 시아버지께서 자서방 먹을 샌드위치를 사오셨고 와인도 한병 내 주셨다. 시어머니께서는 혹시 까다로운 입맛의 자서방이 샌드위치를 싫어할 경우를 대비해서 바게트 하나, 마요네즈 그리고 수비드로 익힌 닭가슴살도 두팩 챙겨주셨다.  

우왕... 


집에 돌아와보니 침대와 조립되지 않은 상태의 가구들이 어마어마하게 거실에 쌓여있었고 자서방은 그새 칙칙해진...얼굴로 짐더미사이에서 소파를 조립 하고 앉아 있었다. 아.. 이케아는 다 조립해야 하는거였지 참...ㅠ.ㅠ 물론 더 싸게 하려고 우리가 조립하는걸로 택한것도 있지만...

이 침대로 말할 것 같으면... 자서방은 이케아에서 주문하려고 했는데 시어머니께서 침대는 그렇게 사면 안된다고 세일중인 질좋은 브랜드의 매장이 있으니 가보라고 며칠동안 잔소리를 하셔서 결국 예민하던 자서방도 언성이 높아지고...ㅎㅎ 그러다 우리둘이 장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그 침대매장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들어가서 자서방이 이것저것 다 누워보더니 이 침대와 사랑에 빠짐- 세일해도 꽤 비쌌지만 자서방은 바로 구매... 시어머니도 놀라도 나도 놀라고 결국 해피앤딩- 

 

의자를 6개나 주문했다. 손님 접대용까지.. 서랍, 책상, 소파, 크고작은 테이블 3개 등등...


"샌드위치 가져왔어. 우선 이거 먹고하자."

자서방은 아직 생각이 없다고 했고 나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말없이 조립을 시작했다. 

곧 시어머니께서 오셨다. 궁금해서 보러 오셨다며 시원한 병맥주 5병도 가져오셨다. 

시어머니께서도 금새 가구조립에 합류 하셨다. 

한참을 말없이 셋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주저 앉아서 가구를 조립하다보니 문득 웃음이 났다. 

“여기 무슨 중국 공장 같아요ㅋㅋㅋ 밥도 안주고 일시키는 곳이요ㅋㅋ”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맥주를 꺼내서 따왔다. 와인오프너를 시어머니께서 분명 주셨는데 안보여서 숟가락으로 낑낑거리며 따왔다. 오프너는 꼭 찾을게요... 일하다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헤븐이었다.

 

총 감독인 자서방이 한동안 이리저리 뒤지더니 하는말이 소파의 양 팔걸이 부분이 누락되었고, 티비아래 놓는 가구와 큰 옷장이 누락... ㅠ.ㅠ 

자서방은 서랍 조립하다가 한군데 망가뜨리고...

둘다 진심 기운이 완전히 소진되었다. 아침부터 짐나르고 가구 조립하고...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우리는 팔걸이가 없는 소파에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나머지 조립은 내일 하자. 기운이 다 빠졌어... 오늘 다시 엄마네로 돌아가야겠다. 오늘까지는 거기서 자야할 것 같아."

"나도 여긴 온기가 없어서 아직은 저쪽에서 하루라도 더 자는게 좋아."

내일은 자서방의 친구들이 와서 시댁에 있는 티비와 세탁기를 옮기기로 했다. 아직 갈길이 멀고도 멀구나..

 

시어머니께 메세지를 보냈다.

'저희 밥먹으러 가도돼요? 오늘밤 잠도 거기서 자고요.'

'당연하지. 아무때나 먹으러나 자러 와도 된단다. 물어볼 필요 없어.'  

돌아가면 시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저녁을 먹고 편안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게 참 좋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내일도 시댁에서 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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