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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프랑스 시어머니께 배운 훈제 돼지 오븐 찜

by 낭시댁 2020. 11. 14.

어제 저녁에 시어머니께서 메세지를 보내오셨다.

"너희 돼지 훈제 등심(l’échine fumée de porc) 먹을래? 질좋은걸 사다놨거든."

봉쇄기간이라 살짝 망설였지만 솔직히 너무 먹고싶어서 대답했다.

"네! 내일 오후에 제가 가지러 갈게요."

"그래라. 오면 어떻게 요리하는지도 잠깐 보여주마."

하지만 오늘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가는 대신에 본인이 오시겠다고 하셨다. 그게 더 간편할것 같다면서 말이다. 뭐가 더 간편한걸까...

오후에 찾아오신 시어머니께서는 고기 한덩이만 가져오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요리 재료와 기구들이 모두 어깨에 둘러매고 계신 모습이셨다.
우선 무거운 감자가 한팩, 베이컨, 양파, 대파, 그리고 채칼과 엄청나게 무거운 오븐용 무쇠냄비도 직접 메고 오셨다;;

"저희도 양파랑 감자 많은데 뭐하러 가져오셨어요. 그리고 냄비는 새거 똑같은거 하나 주셨잖아요. 감자는 이 많은걸 모두 사용하나요??"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별 말씀 없이 바로 요리에 돌입하셨다. ㅎㅎ
오늘은 요리 수업이 우리 집에서 열리는 구나-




우선 베이컨을 주물 냄배 바닥에 깔고 양파, 감자를 채칼로 슬라이스해서 깔기 시작하셨다.




엄청난 양의 감자가 들어갔다.



이곳에는 감자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데 나는 빨간색 감자를 주로 먹는다. 구워먹고 튀겨먹고 부쳐먹고 퓨레까지 모두 가능하다-



훈제 고기덩어리는 내가 옆에서 얇게 잘랐다. 그걸 층층히 쌓으셨다. 바닥에만 베이컨을 깔고 감자, 양파, 고기, 감자, 양파, 고기 이런 식으로 마치 라자냐 처럼-
그리고 간간히 대파도 잘라서 올리셨다.



맨 위에는 남은 감자를 모두 수북이 덮으셨다.



시어머니께서 엄청나게 무거운 무쇠냄비를 기합소리와 함께 번쩍 들어서 오븐으로 넣으셨다.

"자 170도로 두시간을 익혀야 한단다... 그리고 한시간이 경과되었을때는 냄비를 꺼내서 확인을 해야 해. 야채에서 나온 수분을 가운데로 좀 끼얹어주고 혹시 수분이 부족한 모습이면 물을 조금 부어주고..."


알자스식 요리라고 하셨는데 시댁에서 지낼때 종종 먹었던 기억이 있다.
시어머니와 잠시 앉아서 콜라를 마셨다.

"이제 이 요리 혼자서 할 수 있겠지? 이걸 우리 집에서 만들었다면 너는 저 무거운 무쇠냄비를 들고 돌아와야 했을거야. 그래서 내가 오는게 더 낫겠다고 판단한거란다. 내가 다음에 농장에 가면 훈제 돼지고기를 사다 줄테니 그때는 혼자서 직접 만들어 보렴."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무거운 걸 들고 돌아오는게 걱정돼서 차라리 본인께서 무거운걸 들고 찾아오시는걸 선택하신 거였다. ㅠ.ㅠ
무스카델과 좀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진 뒤(?) 돌아가신다며 금새 쿨하게 떠나셨다. 집에 있던 주물냄비를 사용하는 바람에 가지고 오신 주물냄비는 도로 매고 돌아가셨다. 하나도 안 무겁다며 웃어주셨다. (이 주물냄비들을 시어머니께서는 매우 아끼신다.)

잠시후 테이블 위에 보니 시어머니의 휴대폰이 놓여져 있었다. 이런... 잊어버리고 두고 가셨구나. 항상 내가 시댁에 갈때마다 "내 전화기 못봤니?" 라고 하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바로 들고 달려나갔다.
바로 옆에 사시는 시어머니께서는 집으로 가셨다가 이미 샐러드 한봉지를 들고 다시 돌아오고 계셨다.
내가 손을 흔들자 웃으시며 같이 손을 흔드셨다. ㅎㅎ

"내가 또 전화기를 놓고 왔지? 내가 정신이 이렇게 없단다. 자! 이건 마쉬 샐러드란다. 이미 내가 세척까지 했으니까 저녁에 바로 먹으렴-"


시어머니 덕에 우리의 저녁상은 아주 푸짐했다.
감자가 더 부드러워지도록 오븐에서 총 3시간 가까이 익히게 되었는데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자서방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1편을 틀어주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랑 맛있는 요리를 하느라 오늘 수고 했으니까, 영화 보고 있으면 내가 차려 올게."

올~ 왠일로 오늘 무지하게 젠틀한 자서방-
집에 맛있는것들이 넘쳐나서 기분이 좋은가 보다 ㅎㅎㅎ
솔직히 주물냄비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오븐에서 꺼낼 엄두도 안났다;;




양이 너무 많아서 자서방이 두 접시나 먹었는데도 3/1밖에 못먹었다.

시부모님도 불러서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ㅠ.ㅠ




부드럽게 익은 감자와 고기- 나이프가 필요 없고 포크로도 고기가 쉽게 잘라졌다. 고기에 머스타드를 찍어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그리고 물론 머그컵에 마시는 와인도 크게 한몫했다.

사진을 찍어서 시어머니께도 보내드리고 감사를 드렸다.
내가 할 줄 아는 프랑스 요리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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