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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시장 아니고 시댁에서 장보고 왔다.

by 낭시댁 2020. 11. 18.

봉쇄령이 내려진 후 시어머니께서 유난히 더 적적해 하신것 같다. 1차 봉쇄때는 한집에서 지내느라 서로 지루한 겨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비록 바로 옆에 살고는 있지만 같이 사는것과는 다르니까...

오늘도 오전에 시어머니께서 메세지를 보내오셨다. 

"미셸이 방금 아주 신선한 바게트를 사왔는데 혹시 가지러 올래?" 

시아버지께서 사오시는 바게트는 유난히 맛있다. 단골로 항상 가시는 그 가게의 바게트가 정말 최고다. 나보다는 자서방을 위해서 지금 바로 가지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자서방은 나더러 올때 시댁 수비드 기계좀 빌려올 수 있냐고 물었다. 오늘 저녁에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는데 갑자기 수비드 기계가 작동이 안된다는 것이다. 음... 나도 뭔가 빌려 올게 있었는데... 

 

 

외출증을 작성해서 곧바로 집을 나섰다. 길가에 나무들이 점점 앙상해 진다. 바닥에는 잎이 점점더 수북이 쌓이고... 이러다 겨울이 오겠지... 봉쇄로 가을도 제대로 못 느낀채... ㅠ.ㅠ

시댁에 갔더니 시어머니께서 예쁜 토끼털 스웨터를 입고서 웃으며 맞아 주셨다. 항상 흥이 넘치시는 우리 시어머니시다. 

 

 

이스탄불을 어디갔는지 안보이고 날씨가 쌀쌀해져서 더 게을러진 모웬은 항상 똑같은 자리에서 오늘도 졸고 있었다. 

 

 

부지런한 시아버지께서는 정원에서 나무들의 가지를 치고 계셨다. 그래야 내년에도 미라벨과 레몬들이 더 잘 자랄 수가있다고 하셨다. 

수비드 기계랑 바게트를 챙겼고 저녁에 스테이크와 함께 먹으라며 방금 요리하셨다는 야채 오븐 구이도 한통 담아 주셨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라비아따 소스도 한통 또 주셨다. 아무래도 이건 눈에 띌때마다 내 생각을 하고 하나씩 꼭 사시는것 같다. 

그리고 나서도 뭔가 잊어버린게 없는지 "또 줄게 뭐가 있지..."를 되뇌고 계셨다. 

"과일은 있니? 배좀 더 줄까?" 

"아니요, 배는 다 먹었지만 오렌지는 아직 많이 남았어요."

시어머니께서는 지하실로 내려가시더니 버섯과 고기빠떼 한통씩을 건네 주셨다. 

 

 

우리 자서방이 굉장히 좋아하는 시어머니표 빠떼(?)- 

돼지고기로 만들었는데 조금씩 나이프로 떠서 바게트에 얹어 먹는다. 내가 이걸 맨 처음 먹었을때 느낌은 스팸같다는... 그 소리 했다가 시어머니께서 눈이 휘번쩍하셨다. 스팸같은데다 내 음식 갖다대지 말라면서 말이다ㅎㅎ

 

 

두껑에는 보통 만든 년도수를 쓰시는데 이 100이란 숫자의 의미는 ㅋㅋㅋ 요리책 100쪽에있는 레시피를 보고 하셨다는 뜻이라고 ㅎㅎㅎ 처음들었을때 엄청 웃었는데 오늘은 보자마자 내가 먼저 말했다. 

"100쪽에 있는 레시피군요."

"그렇지. 너도 100쪽 보면 이거 만들수 있어! 호호호"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다ㅎㅎㅎ

시어머니께서는 한국인이 프랑스어로 쓴 한국음식 요리책을 발견했다며 인터넷으로 사진을 보여주셨다. 곧 그 책을 주문하실거라면서 말이다. 한국 당면도 두봉이나 사다가 요리했다며 냉장고에서 야채와 볶은 요리를 보여주셨다. 그걸 보고 나는 곧 잡채를 만들어서 갖다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시댁을 나서는데 시어머니께서 택배 박스를 툭툭 치시며 말씀하셨다. 

"사료를 이번에는 많이 주문했단다."

"고양이들꺼요?"

"우리 미셸은 이거 안먹어..."

"혹시 어머니께서 드시나 싶어서요 ㅋㅋㅋ"

아 ㅋㅋㅋㅋ 당연히 고양이 사룐데 내가 괜한 소릴 했다가 실없이 농담으로 마무리했다. 우리는 대문에서 깔깔 웃었다. 

장가방을 가득 채워서 집으로 돌아왔더니 자서방이 말했다. 

"일부러 장가방도 들고 갔던거야? 히야 진짜 우리 부모님댁에서 장봐오는구나."

"응 장가방은 큰걸로 챙겨가길 잘했어."

사진에 있는거말고도 사과쥬스 한병이랑 케잌틀도 주셨고 나는 호두를 까는 기구도 빌려왔다. 

시댁이 바로 옆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불편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 너무 좋은데요!"

오히려 시어머니께서 우리가 귀찮으시려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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