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프랑스 시월드

시아버지와 케잌

by 낭시댁 2022. 1. 16.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친척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후 우리집과 시댁은 각자 고요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날에는 아침부터 비가 엄청 쏟아졌다. 스산한 울음소리의 돌풍까지 동반한 우울한 겨울비였다.

느긋하게 티비를 보고 있던 자서방이 전화 한통을 받고는 벌떡 일어나서 외투를 급하게 챙겨입는 것을 보았다. 지금 바로 가겠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는걸 보자 불안감이 몰려왔다.

"어머님이셔?"

"응. 아빠가 계단에서 넘어지셨대. 지금 머리에 피가 나는데 내가 응급실에 모셔다 드리려고. 많이 다치신건 아니라고 하시니 걱정마."

정작 본인 얼굴은 매우 걱정하는 표정이다. 속사포같이 말을 뱉으며 자서방은 달려나갔다.

시댁에는 시동생도 있었고 또 많이 다치신건 아니라고 하시지만 시어머니께서는 큰 아들이 더 의지가 되셨던가보다. 겉으론 항상 의연한 척 하시지만 어머님도 속으로는 많이 놀래셨을 것이다.

아버님께서 넘어지셔서 응급실을 찾게 되신것이 작년에 이어 두번째시다. 지난번에 응급실에서 보았던 아버님의 황망해 하시는 표정이 떠올라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걱정이 되었다. 이번에도 부디 훌훌 털어내셨으면... 나는 속으로 기도를 했다.

자서방은 코로나때문에 응급실에 함께 머물지 못했고 아버님께서 밤늦게 돌아오실때에는 시동생이 모셔왔다. 그리고 아버님께서는 집에 돌아오시자마자 자서방이 걱정할까봐 전화를 주셨다. 별거 아니라고, 이마에 몇바늘 꿰멘게 전부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는데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밝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코끝이 찡했다.


그 이틀 후에 우리 부부는 시댁에서 점심식사를 하게되었다.
우리 부부가 바늘로 꿰멘 이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아버님께서는 한손을 휘저으시며 웃으셨다.

"괜찮아 괜찮아."

식사가 모두 끝난 후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을때, 시아버지께서 봉지에 뭔가를 담아서 나에게 건네 주셨다.

오잉! 쇼콜라 갸또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거!!! 남편아 이리와서 이거봐!!! 아버님이 주셨어!!!

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것도 깜빡한 채 자서방이랑 둘이서 좋다고 방방 뛰었다.ㅋㅋ (시어머니께서 직접 구우신 배 타르트를 싸주신다는건 거절한 직후였으면서 말이다ㅋ)

아버님께서 기분좋게 부엌을 나가신 후 어머님께서 한숨처럼 말씀하셨다.

"넘어지고 나서 부터는 거의 매일 나가서 갸또를 자꾸 사오더라고... 자기 위안인가봐..."

어머님께서는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는데 우리 부부는 아직 함께 진지해 질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갸또앞에서 무너졌음.

"빵집 아줌마 보러 가시는거라면서요?"

헤맑게 내뱉은 내 말에 시어머니께서는 "아참, 그렇지." 하고 웃으셨고 자서방은 아무말도 귀에 안들어오는지 또 이렇게 말했다.

"그럴줄 알았으면 나 매일 갸또먹으러 왔지..."

사실 아버님을 걱정하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지만 이렇게 별일이 아닌척 웃고 떠드는편이 아버님을 위해서도 더 나은 것 같았다.

어머님께서는 아끼는 집이지만 계단이 너무 많아서 아버님을 위해 아파트로 들어가야 하나 몇번이나 말씀하셨다. 하지만 두분 다 정원과 지하실등에 애착이 크셔서 집을 포기하긴 어려우실 것 같다.

또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베트남에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고 노래처럼 말씀하시는데 아버님의 건강과 코로나 사이에서 어머님의 애간장만 타는것 같다.

아... 야속한 세월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