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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DéFLE-Lorraine 다국적 친구들

프랑스 장관을 만났다

by 요용 🌈 2022. 11. 30.

그날이 왔다. 프랑스 장관을 만나는 날.

수업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미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후 문앞에 앉아서 수업을 받다가 중간에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 알마를 만나서 함께 회의실이 있는 건물을 찾아갔다.

안그래도 추운데 비까지 와서 더 추운날이었다.

이메일에서 미리 안내받은대로 친절한 중년여성 한분이 우리를 맞아주시며 회의실까지 데려다 주셨다.

회의실앞에는 인상좋은 청년이 우리보다 미리 와 있었다. 우리와 함께 회의에 참석하는 학생중 한명인가보다. 알마와 나 이외에도 남학생 두명이 더 있다고 미리 전달을 받았었다.

이 청년은 콜롬비아인인데 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로렌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고 한다. 박사까지 한거같기도 하고... 현재는 학교 연관기관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고 내년에는 칠레로 근무지를 옮길것같다고 말했다.

잠시후 우리를 안내해 주셨던 중년여성이 또다른 청년과 함께 다시 나타나셨다. 그 청년은 방글라데시에서 왔는데 프랑스어는 못한다며 내내 영어로만 얘기했다. 석사인지 박사과정인지 로렌대학교에서 영어과정으로만 수업을 해서 프랑스어가 필요없었고, 현재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직장도 영어로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년여성께서는 우리에게 선물상자를 하나씩 나눠주셨다. 선물이다!!! 😍😍 안에 무엇이 들었건간에 이 선물 상자하나로 나는 오늘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환영상자! 그 속에는 유용한 아이템들이 들어있었다. 텀블러, 컵, 우산, ubs 그리고 천가방.

그 중년여성은 나와 알마에게 본인도 로렌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했었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에서 프랑스로 들어온게 86년도였어요. 그때 나도 여러분처럼 여기서 프랑스어를 배웠지요. 그때 만났던 반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낸답니다!"

와... 그 세월동안 우정을 이어온것도 대단하고, 그 세월동안 프랑스에 완벽하게 적응하신 모습도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잠시 후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생각보다 회의실분위기가 너무나 무거워서 나는 긴장되기 시작했다.

Ministère de l'Enseignement Supérieur라고 소개받으신 분은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중년남성이셨다. 프랑스에 유학오는 외국인 학생들 관련 업무도 담당하시는 모양이다.

잘생긴 장관님 옆에는 인턴이라고 소개받은 청년이 회의내내 컴퓨터에 회의내용을 받아적고 있었고, 로렌대학교 외국인 학생들을 담당하는 듯한 여성 두분이 와계셨다.

우리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각자 자기 소개를 했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다들 얼굴은 웃고있는데 분위기는 왜이리 무거운지 ㅡㅡ;

근데 그 분위기속에서 방글라데시 청년은 "죄송한데요? 제가 못알아들으니 영어로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라고 당당하게 발언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대다나다...

그 청년은 초반부터 (아직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외국인 학생들이 초반에 겪는 어려움들을 줄줄 읊었다.

"처음 휴대폰 심카드를 구매하는것도 은행계좌를 오픈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예요. 전화번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말이예요!"

"하지만 학교측에서 할 수 있는일은 없잖아요. 특정 은행을 지정해 주는것도 안될 일이고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준비해 온 유학생들의 어려움들은 오늘 모두 전달하기는 힘들겠다는 사실을...

그래도 여러학생들이 꼭 말해달라는 외국학생 학비 얘기는 전달했다. (현지인들은 거의 공짜로 다니지만 외국인학생들의 학비는 너무 비싸다.) 하지만 그녀는 "프랑스 다른 대학교들에 비하면 저렴하답니다." 라고 답변을 일축했다.

방글라데시 청년은 여전히 유학생들의 초기 어려움을 설명했다.

"저는 다행히 프랑스인 남자친구가 있어서 그가 모두 도와주었어요.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저처럼 현지인의 밀착된 도움을 받질 못하지요. 제 파트너를 공유할 수도 없잖아요."

"어우 당신의 남자친구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큰일나지요!"

이부분에서 심하게 빵터지는 바람에 모든 긴장이 풀렸다ㅎㅎㅎ

내 친구는 나중에, 이 방글라데시인이 본인의 동성애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이런 회의에서 발언하는걸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학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만 장관에게 보여주겠다는 학교측의 강한 의지가 틈틈히 느껴졌다. 그러한 의지로 그들은 철저히 학교편인(?) 콜롬비아 청년을 미리 섭외했던 모양이다.

"너 장관님께 그때 그거 말씀드려." 라고 부추기며 콜롬비아 청년 혼자서 한시간 내내 떠들게 만들었고, 그 청년이 말하는 동안 청년을 향한 두 여인의 눈에서는 하트가 뿅뿅

"재작년에 큰 교통사고를 겪었거든요. 그때 마침 코로나 봉쇄기간이었고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많았어요. 학교측에서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치료도 받고 콜롬비아에 계신 부모님도 프랑스에 오실수 있으셨어요. 정말 로렌대학교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답니다."


콜롬비아 청년은 처음 프랑스에 왔을때 학생들이 하루 8시간씩 가만히 앉아서 주입식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살짝 내 집중이 흐트러지고 있을때였는데, 장관께서 나를 보시면서 갑자기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라고 돌발질문을 하셔서 정신이 번쩍들었다.

"한국도 그런데요... 더한것같기도 하고요..."

"한국은 더하다고요?"

"제가 고등학생일때는 밤 10시까지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해야했어요. 요즘은 바꼈지만요."

내 말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입이 떡!

내가 괜한 소릴했나...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말해야 하는데.


회의가 모두 끝난 후 우리는 (자서방이 미리 예언한대로) 단체사진을 찍었고 장관님은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며 급하게 떠나셨다.


회의 자체도 흥미로운 경험이었고 손에 묵직한 선물상자때문에 기분이 더 좋았다.

우산, 텀블러, 컵은 나에게 때마침 필요한 물건들이었는데! 😍😍


프랑스에 오니 재미있는 일이 참 많은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