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은 다른 그룹들과는 다르게, "대학교 입학" 에 촛점이 맞춰진 반이었다. (대학교나 대학원 입학을 앞둔 친구들이 많기는 하다.)
"이번 학기는 여러분들이 대학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미리 훈련하는 과정이 될거예요. 즉, 엄격해 질 시간이라는 거지요. 독해나 작문을 할때도 시간을 재면서 할거예요. 여러분들은 고급레벨이기때문에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음... 여기 오래전에 졸업한 사람들도 있는데요... 😐😐
"특히 대학교에서는 강의를 들으면서 빠른 시간에 체계적으로 필기를 잘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이제 일주일에 최소 하루는 그것만 할거예요."
아... 정말 수업이 점점 빡세지는구나... 나는 토론이나 인터뷰 방송을 그냥 듣고 이해하기에도 아직 벅찬데 그걸 들으면서 중요한 내용만 체계적으로 필기까지 하는건 또 다른 문제다. 차라리 받아쓰기면 모를까...
20분짜리 오디오를 들으면서 필기를 한 후 두명씩 짝지어서 필기한 걸 서로 비교하며 놓친 부분들을 채워넣으라고 하셨는데, 나는 세네갈 남학생에게 따로 설명을 듣고 열심히 다시 받아적었다.ㅋ
그 사이 선생님께 지명당한 학생 두명은 앞으로 나와서 칠판에다 본인들이 필기한 내용을 옮겨 적었다. (칸이 부족해서 둘다 다 적지를 못했다.)
와... 완벽하게 다 이해해가면서 저렇게까지 상세하게 필기하다니... 나랑은 정말 다른 레벨이구나...
왼쪽은 인도네시아 소녀가 적은건데 그녀는 이미 달프 C1 소지자인데다 파리에서 대학교도 졸업을 했다. 그저 비자때문에 온거라고 한다.
오른쪽은 또다른 세네갈 청년인데 역시 나는 글씨를 잘 못알아보겠다 😐😐
내 옆에 있던 세네갈 친구에게 "너한테는 이거 쉽지?" 라고 물으니 당연한걸 묻냐는 식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참 좋겠다...
그래도 문법시간에는 제법 재미있었다. 의외로 이 친구들이 문법에는 약하더라는...
복합관계대명사 문제들을 푸는데, 나랑 시리아 친구 두사람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거의 모든 질문에 제일 먼저 대답하고 있었다.
duquel, auquel... à laquelle...
독해 시간에는 어느 대학원생의 논문을 읽었다. 그동안 독해는 길어도 두페이지를 잘 넘기지 않았는데 이거는 17 페이지... 긴 논문들을 빠른시간에 이해하는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흠... 나 정말로 반을 옮겨야겠다.
일주일 동안 고심해온 끝에 여러가지 이유로 한단계 아래반으로 내려가기로 최종 결심을 하게 되었다.
대학수업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도 나에게는 맞지 않았고, 한단계 낮은 레벨에서 청취와 독해실력을 좀 더 다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반을 옮기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우리반의 수업 분위기였다.
프랑스어를 더이상 향상시킬 필요가 없는 수준의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수업분위기가 너무나 어수선한것이다.
마치 수능시험을 끝낸 고3 교실 같은 분위기랄까-
멕시코와 콜롬비아에서 온 3인방은 수업시간 내내 자기네끼리 수다를 떨고 있어서 나는 항상 그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는다.
특히 나는 어제 멕시코 소녀가 수업중에 토마토 파스타를 책상에 올려놓고 먹는걸 보고 상당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20분간의 쉬는시간이 끝난 직후였다! 쉬는시간에는 뭘하고...
선생님께도 그건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나보다.
"......본 아페티?" (황당하신 선생님의 반어법이었다.)
"감사합니다." (알아들었면서...)
"수업 끝날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나요?"
"배고파서 안돼요."
선생님도 더이상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 선생님 심정 이해갑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쪽 학생들 일부는 수업시간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교실을 편하게 들락거린다. 과자봉지 소리를 내며 태연하게 과자를 먹는 풍경도 내눈에는 신기했다. 나도 하나 주든가-
아무튼 결국 나는 오늘 선생님께 반을 옮기고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내 수준이 이 반 레벨이 맞다고 강조하시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 말씀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배워야 할것들을 건너뛰고 올라온 기분이라고, 나는 좀 느려서 C1까지 좀더 천천히 올라올 필요가 있다고 진지하게 말씀드렸다.
결국 선생님께서는 디렉터와 상의해 보고 며칠후에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다행히 자서방도 내 결정에 지지를 해 주었다. 반분위기도 중요한데다 수업이 어려우면 오히려 배우는것이 적을수도 있다고 하며-
"근데 나는 정말 대학시절에 외국인들과 수업받을때도 수업중에 파스타를 먹는 친구는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어! 프랑스에서는 납득되는 행동이 아니야. 정말 나도 문화충격이네!"
흠... 멕시코에서는 납득되는 행동이려나...
아무튼 나는 다시 새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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