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4일 토요일-
학점은행제로 듣는 한국어 교원 2급 과정의 실시간 화상 세미나에 참여하느라 새벽 2시반부터 아침 6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만 했던 날이다. 잠도 거의 못자고 오전에 출근을 했는데 이 날 또 가게에서는 역대로 바빠버리네...;;
우리 사장님 SK는 아주버님의 결혼식이 있어서 일찍 가야만 했고 나와 동생M 단 둘이서 우리 가게 역대 매출을 올려버렸다. M은 먼저 퇴근했고 나는 가게 청소까지 끝낸 후에 시장을 나서며 버거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버거씨가 뒤를 돌아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서점 앞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팔을 크게 흔들고 있는 훤칠한 버거씨를 발견했다. 내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고 하던 이 남자는 오늘따라 옷도 너무 멋지게 차려입고 있었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서 나를 세게 안아주었다.
"아니, 오늘 잠도 못자고 엄청 힘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방금 출근한 것 처럼 완벽한 모습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버거씨의 너스레였다. 사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이날 아드레날린이 제대로 폭발했었다. 밤에 잠을 거의 못잤음에도 일하는 동안 너무 바빠서 피곤한지도 몰랐고 배도 안고팠다. 준비한 음식이 떨어질때마다 나는 손님을 돌려 보내는 대신에 에너자이저처럼 밥을 또하고 또하고 야채를 새로 볶으며 손님들을 거의 놓치지 않고 다 받아냈다. 그런데 버거씨를 보니 뒤늦게 긴장이 확 녹아내리네. 길기도 한 양팔에 꽤 오래 파뭍혀서 숨을 돌리며 충전을 받았다. 허그 참 좋다...
잠시 후 예쁜옷으로 차려입고서 버거씨 손을 잡고 그가 예약했다는 낯선 레스토랑을 향해 걸어갔다. SK가 준 검정 드레스를 입고 굽이 높은 앵글부츠를 신었는데 스스로가 꽤 예쁘게 느껴졌다. 자꾸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흘끔흘끔 보게 되었다. 이런 자신감 얼마만이던가.
길가에 늘어선 테라스에는 주말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게 붐비고 있었다. 한동안 나와는 상관없는 풍경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지금 그 풍경 한복판에서 멋진 중년남자의 손을 잡고 폼나게 걸어가고 있었다. 정말 한치앞도 모를 인생이구나.
우리가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내가 이렇게 농담을 했다.
"어머! 레스토랑을 통채로 예약할 필요는 없었는데..."
내 말에 버거씨는 어버버하며 대답할 말을 찾질 못했고 여직원이 그 모습을 보며 나와 함께 웃었다.
하지만 곧 손님들이 들이닥치더니 순식간에 레스토랑이 꽉 찼다. 맛집인가보다. 기대가 커지는 걸... (알고보니 이집에 2018년 미슐랭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버거씨도 여기가 미슐랭인줄은 몰랐단다ㅋ)
샴페인을 마시다말고 버거씨가 생일선물을 내밀었다. 목걸이었다.
생일케이크랑 생일노래만 불러주면 된다고 했건만 고급레스토랑에 선물까지 준비를 하다니...
내가 너무 심하게 감동받은 표정을 했더니 버거씨가 오히려 몸둘바를 몰라했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생일 아침에 눈을 떴을때 버거씨가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보내준 걸 열어보고는 펑펑 울어버렸다. 누운채로 울면서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른다.
"이런일로 이렇게까지 크게 감동하니 내가 더 당황스럽네..."
그러는 사이 전채요리가 나왔다.
맨 앞에꺼는 뭔가 어묵같은 느낌이었다(맛있다는 뜻). 두번째는 연어가 들어있었고 세번째는 피스타치오랑 머시기 머시기... 설명해줬는데 잘 기억이 안난다.
맛있지만 양이 적어서 내심 아껴먹고 있을때 두번째 전채요리가 등장했다.
옴마야... 이걸 어떻게 먹어...
보기만 좋은게 아니라 맛도 엄청 좋았다!! 그다지 분자요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건 맛도 모양도 만점.
잠시 후 메인 요리가 나왔다. 말이 빨라서 전부는 못들었지만 그 중에 '김치'라는 말은 정확하게 캐치했다.
김치가 어디있나 하고 뒤적여봤더니 진짜 있네!? 맛이 제대로 든 김치를 안맵게 씻어서 낸 모양새였다. 스테이크의 느끼함을 개운하게 잡아주었다.
김치가 들어갔다고 뿌듯하게 말했더니 버거씨는 이미 한번에 흡입해 버려서 김치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대답했다.
식사가 끝난 후 후식이 나왔다.
미리 직원에게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감동이긴 한데...
숫자는 꼭 저렇게 크게 써야만 했나요...
생일노래를 또 불러줄 기세여서 내가 말렸다. 여긴 그런 분위기 아닌것 같아. 동영상으로 수십번 불러줬자나. 아 한번 불렀겠지만 난 그걸 수십번 돌려 봤거든...
버거씨는 스스로를 로멘티스트라고 말한다. 작은것에도 크게 감동하는 나에게 앞으로 보여줄 것이 너무 많고 데려가고 싶은 곳, 함께 공유하고 싶은것들이 너무 너무 많다고 몇번이나 말했다.
나는 그저 고맙다는 말을 하고 또 했다.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손을 내밀어줘서 고맙고 설레임을 느끼게 해 주어서 고맙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것처럼 대해줘서 고맙다고.
버거씨 역시 자신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앞에 선물처럼 나타나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여러모로 뭉클했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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