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기동안 함께 프랑스어를 배운 후 일본으로 돌아갔던 가나코가 낭시에서 한 달간 인턴쉽을 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같은반에 있다가 런던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홍콩소녀 클로에는 그 반가운 소식을 듣자마자 낭시로 며칠간 휴가를 왔고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다같이 만날 수가 있었다.
주말에는 내가 장거리 연애를 하러가는 바람에 만나지를 못했고 결국 평일날 퇴근 후에 공원에서 저녁 피크닉을 하기로 했다. 저녁 8시에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다니... 프랑스에서는 해가 길어서 이게 가능하구나.
약속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언제나 처럼 나랑 엘라였다. 최근 핀란드집에 다녀온 엘라는 학창시절 친구 한명을 데려왔는데 금발머리의 이 친구 이름은 에쎄라고 했다.
내가 가져온 큼직한 돗자리를 펼치고 그 위에다 가져온 먹거리들을 펼쳐놓았다. 퇴근하고 급하게 오느라 특별히 음식을 준비할 여유는 없었고 대신 멜론을 손질했고 감자칩 한봉지랑 초콜렛이 코팅된 마들렌 한봉지랑 구운캐슈넛 한봉지 그리고 생수 한병을 싸왔다. 엘라는 내가 가져온 과자들의 성분을 꼼꼼히 확인했다. 에쎄가 계란 알러지가 있어서 본인이 다 미리 확인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에쎄가 낭시에 머무는 동안 보호자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구나.
"에쎄, 넌 프랑스에 언제까지 있을거야?"
"난 내일 떠나. 벨기에로 갈거야. 학교 다닐때 벨기에에서 온 교환학생이 있어서 친해졌는데 이번에 그 친구집에 며칠 머물기로 했어. 완전 신나."
음 이번에는 그 벨기에 친구가 널 위해 성분 표시를 꼼꼼히 확인을 해 주겠구나. 계란이 안들어간 음식을 찾는게 더 어렵다며 엘라가 슬쩍 푸념을 했다.
곧 나머지 친구들이 다 도착했고 특히 오랜만에 만난 가나코와 클로에와는 더 격렬하게 상봉했다.
에쎄는 프랑스어를 전혀 못해서 영어로 대화를 해야 했는데 하필 영어를 잘 못하는 가나코가 바로 옆에 앉게 되었다. 친절한 가나코는 대화를 시도하다말고 우리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나 쳐다보지마. 나 영어할거니까 다들 다른곳을 봐 줘."
그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대화들이 일제히 끊어지고 다들 그녀를 집중했다. 그는 결국 웃느라 말을 잇지못했다.
가나코는 여전히 귀엽고 헤맑고 친절하구나.
어느순간 나는 가나코의 휴대폰케이스에 남자사진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나코! 이거 누구야?"
"아 이거..."
그녀는 대답에 앞서 베시시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의외의 대답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일본에는 '호스트클럽'이라는데가 있어."
음? 머시라?
내가 잘못 들었나.
"호스트클럽….?"
"응! 한국에도 있구나! 너도 가봤어?"
아니…
가나코는 헤맑은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일본에서는 돈을 주면 호스트바 남자랑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어. 대화를 하는거지. 근데 좀 비싸."
"그래서.. 이 남자랑…?"
"응!" (매우 기쁘고 자랑스러운 표정)
"얼마냈어?"
"한시간에 20유로 정도."
"대화만 해?"
"응 대화만 하는데 사실 스킨십도 그 남자가 먼저했어. 그래서 나도 같이 했어."
우리는 웃느라 다 뒤집어졌다.
"많이는 말고!"
아이고 배야ㅋㅋㅋ
그녀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이 사진도 공짜로 줬어!"
그래 좋겠다...
클로에가 나중에 돗자리에 프로세코를 쏟았는데 그 남자의 사진에도 살짝 튀어버렸다. 가나코가 사진을 소중하게 집어들며 격하게 우는 소리를 냈다.
“이건 안돼 잉…”
또한번 다들 쓰러졌는데 가나코는 사진을 소중하게 닦은 후 휴대폰 케이스로 집어넣었다.
"돗자리에는 쏟아도 되는데 사진은 안돼."
"야, 이거 내 돗자리거든!"
"응. 그러니까 쏟아도 돼."
정말 엉뚱한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 우리 가게 단골 프랑스인 남자가 일본에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어떤 바에서 근육질 여자들한테 돈을 내고 따귀맞는 서비스를 받고왔대. 동영상을 나한테 보여줬는데 진짜 전력을 다해서 7명 여자들한테 한대씩 맞더라. 이런걸 대체 왜 돈주고 하냐고 원하면 내가 공짜로 당장 때려줄수 있다고 놀렸지."
내 말을 듣고 다들 깜짝 놀랬는데 가나코는 생글생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일본에는 이상한게 아주 많아."
"그 근육질 여자들한테 차례로 (돈을 내고) 따귀를 얻어맞는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그 남자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대. 너 나한테 이런꼴 보여주려고 일본까지 데려온거냐..."
친구들이랑 공원이 떠나가라 웃었다.
엘라와 에쎄 그리고 나는 10시가 될 무렵 일찍 떠나게 되었고 남은 친구들은 여전히 공원에 남아 수다를 이어갔다. 곧 이어질 스타니슬라스 광장 레이져쇼를 보러간다고 했다.
나는 내일 출근이라... 내 돗자리는 잊지말고 갖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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