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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스트라스부르의 낭만적인 여름 저녁

by 요용 🌈 2024. 8. 13.

6월 말의 어느 토요일. 
 
나는 퇴근을 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버거씨가 아들 둘과 함께 기차역에 마중나와 있었고 나는 정신으로 그 소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둘다 매우 예의발랐고 쑥쓰러워하는 느낌도 들었다. 아닌게 아니라 차안에서도 그 둘은 대화를 나눌때 큰소리를 내는법이 없었고 우리 대화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서로 속삭이며 대화를 했다. 버거씨가 가정교육을 정말 잘 시켰구나.
 
나 배고파!
 
스트라스부르로 출발하기에 앞서 나는 가게에 들러 샌드위치를 포장하자고 했다. 시간을 아껴서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는게 나으니까 저녁식사는 차안에서 해결하고자-  크게 한턱내는 표정으로 내가 마음껏 고르라고 했다. 버거씨가 숙소며 놀이동산 입장권이며 돈을 많이 썼을테니까 이 정도는 내가 사야지. 버거씨 당신도 골라!
소년들은 원하는 샌드위치를 고른 뒤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괜히 쑥쓰럽고 뿌듯하다. 
  
두 시간 정도를 달려서 스트라스부르 숙소에 도착했다. 

버거씨가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투배드룸 아파트는 시원한 정원을 가지고 있었고 주인 아주머니께서 굉장히 친절하셨다. 
 
"커피머신, 우유, 빵, 브리오슈, 과일 그리고 제가 직접 구운 쿠키도 준비되어 있답니다." 
 
조식이 포함이라고 해서 의아했는데 정말 많은 것들을 준비해 두셨다. 

 
큰 방에다 짐을 풀고 있는데 버거씨가 나더러 시내에 나가보자며 속삭였다. 그리고는 아들들에게 목에 힘을준 채 '아빠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끼리 시내에 잠깐 나갔다와도 될까? 너희들은 집에 있을래?" 
 
이미 소년들은 방에 나란히 앉아서 핸드폰 게임에 빠져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빨리 나가란 소리같다. 
 
 
숙소 근처에 전기차 급속충전소가 있어서 그곳에 차를 충전시킨 채 트램을 타고 시내에 나갔다. 
 

 
와... 
 
스트라스부르에 두 번 와 봤는데 두 번 다 겨울에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러왔던거였다. 여름의, 그것도 낮이 아닌 저녁의 스트라스부르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뿜고 있었다. 낭만 그 자체... 
 
버거씨랑 강변을 걷는 내내 나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했다. 
여름 저녁, 강바람, 테라스, 행복한 사람들 그리고 우리. 

그런데 버거씨는 나보다 더 좋아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버거씨는 그 이후 거의 와본적이 없었다며 나보다 더 '와우'를 연발하고 있었다. 
 
"저긴 그때 그대로네! 세상에... 친구들이랑 자주 가던 바야."
 
"저건 없던건데 새로 생겼나봐. 그 전에 저 자리에는 뭐가 있었냐면..." 
 
"아 미안해. 내가 또 말이 많아졌지." 
 
"전혀! 당신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두배로 기뻐." 
 

 

 

강변을 걷다보니 낯익은 성당이 나왔다. 버거씨는 대학시절 바로 이 옆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 건물이 그대로 있는걸 본 버거씨는 감회가 새로운지 한동안 그 앞에 서서 본인이 살던 아파트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그곳에서 살았을 키다리 마른 남학생을 상상했다.
 

예쁜 테라스가 나왔을때 우리도 앉아서 목을 축였다. 
알자스에 왔으니 알자스산 화이트와인으로 골랐고 버거씨는 다른걸로 골랐다. 둘 다 맛을 봤는데 나는 알자스산 취향이었다. 


우리는 그 후로도 한참을 더 걸어다녔다. 스트라스부르가 아름답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날 저녁은 뭔가 달랐다. 신비로움이 한스푼 추가된 느낌이랄까. 버거씨는 그동안 왜 이곳을 다시 찾아올 생각을 안했는지 후회가 되면서도 나와 함께 이 거리를 다시 걷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흥분되고 행복하다며 그 시절의 꿈많은 남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복잡하고 낭만적인 기분이 한꺼번에 물밀듯 몰려와서 오히려 말수가 줄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서 오히려 더 특별했던 저녁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버거씨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며 나중에 꼭 다시 오자고 했다. 
 
그래 뭐든지 다 해 봅시다. 
 
일단 내일 유로파파크 먼저 즐기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