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에리카가 우리 가게로 찾아왔다.
남쪽으로 2주간 휴가를 다녀온 후 처음보는 터라 두배로 반가웠다.
알마는 독일로, 엘라는 핀란드로 휴가를 간다며 두사람 모두 떠나기 전에 우리 가게에 들러서 내 얼굴을 보고 갔다고 에리카에게 전해 주었다.
"나 곧 퇴근이니까 여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줘. 우리 나가서 뭐라도 마시자."
우리 너그러운 사장님 SK는 오늘 수고가 많았다며 5분 일찍 퇴근을 시켜주었고(merci!) 우리는 밖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휴가 에피소드들을 들려주다말고 이렇게 말했다.
"아참 우리엄마 친구가 얼마전 프랑스 국적 취득 인터뷰에 다녀왔었거든? 거기서 뭘 시켰는 줄 알아? 프랑스 애국가를 부르라고 했대!!"
"진짜? 아 하긴 한국에서도 그거 시킨다고 들은것 같기도 해. 그분은 그래서 불렀대?"
"응 그래서 합격했대! 난 진짜 듣고 너무 황당하더라. 나는 프랑스 국가는 커녕 필리핀 국가도 기억이 잘 안나거든."
"엥? 그게 말이 되나? 애국가를 왜 몰라."
"당연한거 아니야? 학교 다닐때나 불렀지, 어른되고나서는 애국가를 들어본 적도 없는것 같은데."
"애국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난 자주 들었는데...."
어디서 들었더라...
곰곰히 곰곰히...
"아! 올림픽! 금매달 따면 듣잖아!"
아차... 필리핀...
아차싶은 순간 에리카의 웃음보가 먼저 터졌다.
"필리핀에서 금매달을 따야말이지 하하하하"
시원하게 셀프디스하는 에리카를 따라 나도 빵터졌다. 아 욱겨 ㅋㅋㅋ
"아, 나 한국선수가 사격 금매달 따는거 봤어! 진짜 매력있더라!"
또 칭찬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리고 나 탁구도 봤어. 북한선수들이 남한이랑 중국선수들이랑 셀피 찍는 걸 봤는데 좀 감동적이더라. 북한 선수들은 아무래도 좀 어색해 보이기는 해도 진짜 보기 좋았어. 이게 바로 올림픽 정신이지!"
아 그런일이 있었구나.
일전에 전남편이랑 동계올림픽 중계를 함께 보던 생각이 나네. 앗 센티멘탈해지기전에 잡생각 훠이훠이!
이제는 집에 티비도 없으니 뭐 올림픽도 딴나라 얘기같다.
저녁때 버거씨랑 화상통화를 할 때 버거씨가 말했다.
"우리 사무실 휴게실에 큰 티비가 설치됐어. 요즘 휴가철이라서 업무가 좀 한산할때가 있거든. 그럴때 올림픽 중계를 보라고 설치해 준거야."
"그래서 올림픽 중계 좀 봤어?"
"응! 며칠전에 펜싱 봤어!"
"오 한국에서 금매달 딴거 그거 본거야?"
버거씨는 마치 자랑스러운듯 씨익 웃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결승에서 한국이랑 프랑스가 붙었더라고? 동료들이랑 같이 보고 있었는데 내가 말했지, 나는 어느쪽이 이겨도 좋다고. 그랬더니 동료들이 어째서 그러냐 묻더라? 그래서 말했지. 내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고 말이야. (이때 버거씨는 또한번 씨익 웃었다.) 결국 한국이 이겼고 실망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만 좋아했어."
버거씨는 개막식때 남한이 북한으로 소개된 사실에 대해 이건 말도 안되는 멍청한 실수라며 나보다 더 흥분하기도 했었다.
며칠전 '내 친구' 16세 소년을 만났을때 그 소년도 올림픽에서 한국을 응원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이것 좀 봐, 한국이 매달 5위라고! 며칠전에는 심지어 1위였어!"
누가 보면 니가 한국인인줄 알겠다야ㅋ
올해는 내가 티비가 없는 관계로 응원에 힘을 보태지는 못하지만... 마음만 보태야지.
한국팀 참 자랑스럽습니다!! 화이팅.
'2024 새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트라스부르의 낭만적인 여름 저녁 (26) | 2024.08.13 |
---|---|
인생아 나를 어디로 데려갈거니 (53) | 2024.08.11 |
해외에서 길러먹는 깻잎의 맛과 재미 (21) | 2024.08.10 |
내가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 (15) | 2024.08.09 |
동전 바꾸러 오는 꽤 잘생긴 총각 (7) | 2024.08.07 |
저의 새 글들이 불편하신가요 (93) | 2024.07.30 |
자꾸만 찾아오는 새 이웃 (8) | 2024.07.24 |
옛 기억들 위로 새 추억들이 쌓여간다. (12) | 2024.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