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일하면서 더워서 그런지 좀 지치기도 하고 입맛이 없어서 점심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했다.
퇴근후에는 낭시로 와준 버거씨를 일주일 만에 만났다.
낮에 점심을 대충 먹었다고 했더니 버거씨가 차라리 잘되었다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제 동료 한 명이 낭시에 있는 맛있는 레스토랑을 추천해주더라고. 올드타운에 있는 게이트 기억나지? 그 바로 앞에 있는 곳인데 동료가 엄청 맛있게 먹었대. 오늘 거기로 널 데려갈까 생각하고 있었어."
맛집이라는 얘길 들으니 없었던 입맛이 확 돌아오네.
"평일내내 날씨가 화창하기만 하더니 꼭 주말만 되면 비가 오더라."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 비가 거세지기 시작했을때 우산을 꺼내 펼치면서 내가 불평했더니 버거씨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우산 필요없어. 내 옆에는 항상 썬샤인이 있으니까."
아닌게 아니라 우산 손잡이를 내밀었더니 자꾸 거부한다.
"우산 좀 들어 달라고."
내 말에 버거씨가 빵 터지면서 우산을 잽싸게 받아들었다.
당신의 썬샤인은 비맞는게 싫다고요…
저 게이트 앞에 레스토랑이 있었던가...?
아 있다. Brend' Oliv 라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결혼식 피로연 단체 손님들때문에 실내외가 꽉 찼다고 했다. (남은 테라스 빈자리는 모두 예약석)
"저쪽 길건너 테라스에 앉길 원하시면 그렇게 해 드릴 순 있는데요, 대신에 비가 더 많이 오는 경우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게 없어요."
"아... 친구 추천을 받고 멀리서 온건데 정말 난감하네요..."
버거씨의 말을 들은 사장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직원을 시켜서 입구 앞에 테이블을 하나 마련해 주셨다.
우리는 감사의 인사를 반복해서 드렸다.
버거씨는 메뉴를 주며 원하는 메뉴를 먼저 고르라고 했다.
흠... 좀 생소한 프랑스 음식들이 많아서 친근한 메뉴는 생선이랑 햄버거뿐이었다. 웨이터를 불러서 생선 메뉴에 대해 물어보니 몇가지 생선이 섞여서 나오는거라고 했고 나는 바로 그걸로 주문했다. 사이드로는 그라탕, 감자튀김 그리고 익힌야채중 두가지를 고르면 된다고 해서 감자그라탕과 야채를 골랐다. 버거씨는 자기가 햄버거를 시킬테니 나눠먹자고 했다. 골고루 맛볼 수 있으면 더 좋지!
식전빵으로 나온 이 토스트 정말 맛있었다. 갈릭빵속에 다진 올리브랑 치즈가 들어간 맛이었다. 한조각씩 먹으니 입맛이 확 돌았다.
그 다음으로 연어 아보카도 샐러드가 나왔다. 옆에 피로연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건데 서비스로 주신거라고 하셨다. 오 맛있어용!!
잠시 후 메인 메뉴가 나왔다. 햄버거속에는 치즈를 고를수가 있었는데 우리는 염소치즈를 선택했다. 내가 미리 요청한 대로 반쪽씩 잘려서 나온 덕분에 나눠먹기 편했다.
생선은 원래 두가지 생선이 나오는거였는데 재료가 소진되었다며 연어 스테이크로 대체되었다. 뭐 이것도 맛있지.
와인은 뭘로 마시고 싶냐는 버거씨의 질문에 나는 "화이트 와인! 알아서 골라줘." 라고 대답했고 버거씨는 부르고뉴로 골라주었다. 정말 맛있는 와인이었다!
반반씩 메뉴를 섞어보니 더 푸짐해보인다.
감자 그라탕을 먼저 한입 먹었는데 와 이 풍미..... 감자 그라탕에 바게트만 먹어도 진짜 게임 끝이었다.
바게트를 한쪽 뜯어먹었더니 버거씨가 지금 뭐하는거냐며 ㅋㅋㅋ
"빵을 왜 먹어... 지금 메인 요리도 다 먹을수 있을까 말깐데. 맛있는거 먼저 먹어. 바게트나 햄버거빵은 일단 밀어놔."
"아 당신 말이 맞네. 이거 먹다간 배불러서 메인도 다 못먹겠다."
바게트랑 햄버거 두껑은 처음부터 포기했다.
가지, 당근, 버섯을 짭짤하게 구워낸 야채들도 너무 맛있었다.
비내리는 야외 테라스에서 향긋한 와인과 맛난 음식 그리고 나를 향해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낮의 고단함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순간이다.
주말을 기다려온 보람이 있구나.
"동료가 여길 추천한 이유를 알겠네."
우리가 눈을 굴리면서 정신없이 음식맛을 음미하는 동안 벌써 네 팀이나 거절을 당하고 빗속으로 되돌아나갔다. 그 사람들은 어디든 좋으니 자리를 달라고 사정했지만 사장님은 미안하다며 다음부터는 예약을 미리 하시라고 앵무새같은 멘트를 반복했다. 역시 프랑스는, 우리가게에서도 느끼는 바이지만, 손님들이 '을'인것 같다. 아주 좋아요.
"우리 일찍 오길 진짜 잘했다."
내 말에 버거씨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조금만 더 늦었어도 우리도 저들처럼 빗속으로 돌아나가야 했을 것이다.
나는 결국 햄버거는 절반도 못먹고 버거씨 접시로 양보했다. 전채요리로 어느정도 배가 차있었는데 연어랑 야채, 그리고 감자그라탕때문에 배가 터질듯이 불러왔다. 버거는 버거씨가 머거...
우리 버거씨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나면 어떻게 맛있었는지 디테일하게 피드백을 준다. 투머치토커.
칭찬 충분히 한 것 같은데 그만 좀 가지...? 영화 시간 다 됐는데 ㅡㅡ;
낭시 맛집 이 곳 추천합니다! Brend'Oliv!
우리는 미리 예매한 영화시간에 늦지 않도록 뱃속에 버거가 요동치도록 달렸다.
오늘의 영화는 데드풀과 울버린-
난 그냥 별로였는데 버거씨는 최악중의 최악이라네. (참고로 버거씨도 이전 데드풀 시리즈는 전부다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고 한다)
다음날 평점이 생각보다 높은 걸 본 버거씨는 또 한 번 크게 실망을 했다.
"사람들의 취향이 이토록 저렴해지고 있다니..."
ㅋㅋㅋㅋ 왜 이리 심각하냐고요.
이번에도 즐거운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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