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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룩셈부르크에서 등산을 다녀왔다.

by 요용 🌈 2024. 9. 4.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버거씨는 정원 한켠에서 자라고 있는 싱싱한 라즈베리와 꺄시스를 따와서는 선물이라며 내 코앞에 내밀었다. 

갓 따온 유기농 과일이라니. 촌에 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는 오래오래 아침 식사를 하면서 오늘은 무얼할지 생각했다. 

 

"오늘은 엄청 덥겠지...? 우리 시원한 숲에 가는건 어때?"

 

버거씨는 예쁜 숲을 알고 있다며 빙그레 웃었다. 

 

"룩셈부르크에 일명 작은 스위스라고 불리우는 예쁜 마을이 있어. 그곳 등산로가 아름답기로 꽤 유명해." 

 

 

30분정도 차를 달려서 도착한 마을. 

별명만큼 특별히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신 샤또는 아름다웠다. 

미니어처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엄청 크다. 

 

근데 점심시간이 다 됐는데 지금 등산을 하러 숲에 들어간다고? 

 

"우리 점심거리를 좀 사서 들어가야하지 않을까?" 

 

내 질문에 버거씨가 깜짝 놀랬다. 

 

"아침을 방금 먹고 나왔잖아? 그래서 나는 따로 뭔가를 먹을 생각을 못했네."

 

아침은 아침이고 점심은 점심이지.

 

결국 우리는 근처 마트를 먼저 찾았다. 집에서 가져온 물과 과일따위로는 점심이 되지 않는다고... 나를 아직도 잘 모르시네. 

이곳에서 나는 (직원용)화장실도 이용하고 반가운 야쿠르트도 8개나 사고 간식도 샀다. 뿌듯 든든!  

이 야쿠르트를 보는순간 어찌나 반갑던지. 

버거씨는 안먹는다고 하다가 내가 유치원때 간식으로 이걸 먹었다고 말해줬더니 하나 달라고 했다. 하나 주면 정 없으니까 두 개 줬음. 그리고 나머지 6개는 내가 다 마심. 

삶은 계란과 참치가 들어간 랩을 먹으면서 등산을 시작했다. 

아침 먹은게 벌써 소화됐냐며 놀라워하는 버거씨에게 말해줬다. 

등산하는 도중에 어차피 다 소화될건데 뭐. 

 

숲 입구에는 이렇게 여러갈레의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다. 우리는 어떤길을 선택한담? 

 

"가까운데로 가자. 5킬로 딱 좋다!" 

 

버거씨는 숲이라서 시원하고 걷기 좋다며 10킬로를 가자고 했다. 일전에 우리가 같이 걸었던 코스를 생각하면 보통 그 정도였다나. 그래 그럼 10킬로 해. 나는 생각이 단순하므로 바로 수긍했다. 

등산로 입구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에 빠져있었다. 

야 잼겠다. 나도 좀 껴주라.

날씨 좋은 주말이라 근처 캠핑장에도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다.  
그래 여름에는 숲이지. 

이곳 지형은 꽤 독특해 보였다. 바위마다 마치 현무암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있네.

기괴하게 생긴 바위들 사이로 부지런히 걸어나갔다. 

왼쪽은 낭떠러지인데 좀 아찔하긴 했지만 경치가 너무 좋았다. 

 

 

 

 

오잉 저건 영지버섯아닌가? 가까이서 보려고 다가갔더니 버거씨가 소리쳤다. 

 

"버섯 함부로 먹는거 아니야!" 

 

나 안먹는다고... ㅡㅡ; 

 

대신에 버거씨가 따다준 라즈베리 한 줌. 

우리 오빠 참 서윗하다. 

빌베리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한알 따다가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버거씨가 또 소리쳤다. 

 

"숲에서는 아무거나 먹으면 안된다고!!" 

 

이건 내가 확실히 아는거라서 입으로 열매를 쏙 집어넣었는데 버거씨가 얼어붙었다.  

 

"이거 야생블루베리야. 먹는거 확실해. 당신도 먹어봐." 

 

버거씨는 여전히 못믿는 표정으로 끝까지 먹지 않았다 ㅡㅡ; 

정상쯤에서 멋진 경치를 보며 과일을 꺼내먹고 나서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러다가 길을 잃었다. 한두번이 아니라 세번쯤 잃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버거씨는 물에 발도 빠졌다. 안따라갔길 다행이지ㅋㅋㅋ 내 예상대로 잘못된 길이었음. 

젖은 신발을 신고도 내 가방까지 메고 열심히 앞장서서 걷고있는 버거씨. 

길을 잃어서 10킬로 구간을 13킬로나 걸어가야만 했다. 

 

"아이고 죽겠다... 내가 5킬로만 걷자고 했잖아... 나는 그냥 날이 더우니까 시원한 숲에서 산책이나 하자고 한건데... 아이고야... " 

 

내 투정에 버거씨는 눈치를 보면서 나더러 자꾸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걷다말고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봤더니 사람 얼굴처럼 생긴 바위가...;;

진짜 깜짝놀랬다. 

다시봐도 사람 옆모습 같네... 기괴하다. 

그러고보니 모든 바위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까지 드네.

 

다행히 얼마 안가서 우리가 출발했던 샤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 강아지는 우리를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서 반겨주었다. 너 우리 아세요...? ㅋㅋ

 

지치는 법이 없는 버거씨는 녹초가 된 나더러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고, 본인 혼자 차를 주차한 곳까지 달려갔다. 

 

아이고야 죽겠다... 

 

그래도 숲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그동안 같이 등산할 사람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지치지않는 짝궁이 생겼다. 

오늘은 다만 마음이 준비가 안된 상태라서... 

 

아이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