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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한여름 주말 저녁의 낭만

by 요용 🌈 2024. 9. 5.

어느 토요일, 퇴근 후 기차를 타고 버거씨를 만나러 갔다.

 

한시간여를 달린 후 티옹빌 역에 도착했을때 여느때처럼 버거씨는 기차 플랫폼에 서서 두팔을 활짝 펼쳐 나를 맞이해 주었다. 바쁘게 보낸 평일에 대한 나의 보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버거씨는 차 트렁크에 내 짐을 싣고나서 근처 강변으로 차를 몰았다. 

 

"요즘 강변에 저녁 풍경이 좋아. 네가 오면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

 

티옹빌 강변에는 여름이 되면 이렇게 노천 펍이 줄지어 생긴다고 한다. 

 

시끌벅쩍한 여름 저녁의 들뜨는 분위기 너무 좋다!  

컨트리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환호할수록 댄서들은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더 신나게 율동을 했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큰 응원과 환호를 하도록 만들었다. 

 

컨트리 음악이 더이상 들리지 않는 곳까지 더 걸어갔더니 이번에는 라이브 여가수가 멋드러지게 팝송을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운좋게 빈 테이블을 찾아 앉을 수가 있었고 버거씨는 곧 바에 가서 맥주를 두 잔 사왔다. 줄이 꽤 길어서 시간이 걸렸지만 그동안 나는 기분좋은 강바람을 맞으며 백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인사를 했더니 먹을걸 주는 줄 알고 백조가 빠르게 물위를 미끄러지며 다가왔다.

미안하다 넌 맥주 못마시자나... 뭐? 마실 수 있다고? 그래도 안돼 이거는... 내꺼야.

맥주를 마시다가 출출해서 그 옆에서 파는 핫도그를 먹자고 했더니 버거씨가 더 맛있는걸 먹어야 된다고 해서 우리는 이탈리안 음식을 파는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매콤한 아라비아따 파스타랑, 큼직한 모짜렐라가 얹어진 훈제 연어를 빵과 함께 먹었다. 강변에서 먹으니 더 맛있구나! 

 

"사람들 표정 정말 하나같이 너무 행복해보이지않아?" 

 

문득 돌아보았더니 혼자 실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던 버거씨가 대답했다. 

 

"맞아. 근데 여기서 내가 제일 행복할 걸?" 

 

 

조금전까지만 해도 나는 더운 시장 음식점에서 정신없이 손님을 받고 있었는데 불과 몇시간후인 지금 나는 이렇게 다정한 남자친구와 강바람을 맞으며 평화로운 여름저녁을 만끽하고 있구나.

나와함께 저녁의 낭만을 만끽하던 버거씨가 전화 한 통을 받고 나서야 아들을 데리러가는 것을 깜빡했다며 서두르기시작했다. 

요즘 큰아들이 대형마트 드라이브 쓰루에서 한 달간 알바를 하고 있는데 주말이라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기로 했던것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어쩜 그런걸 다 잊냐... 

 

나라면 화가 날법도 한데 무던한 이 집 아들은 늦게 나타난 아빠에게 짜증한번 내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냐는 말에 그저 "배가 고파서 감자칩을 하나 먹었어요." 라고 웃으며 대답했을 뿐이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우리만 맛있는걸 먹었네...;;

 

 

버거씨네 집에 도착했을 때, 앞집에 수많은 차가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나보다. 뭔가 축하할 집안 경사가 있는듯 했다. 

 

손님 맞을 방이 모자랐는지 캠핑카까지 동원된 모습이었다. 반대편 정원에서 한창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던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저녁에 꽤 시끄럽겠는데..."

 

나는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고, 버거씨는 집 주인에게 할 말이 있다며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가 앞 집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꽤 긴장한 표정으로 나타난 집주인에게 버거씨는 이렇게 말했다. 

 

"봉쥬! 손님이 많이 오셨나봐요. 주차할 공간이 부족해 보이네요. 저희 앞마당에 자리가 많으니 편하게 이용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역시 친절한 우리 버거씨. 앞집 아저씨도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대가족이 보여 시끌벅적한 것을 보니 참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초대해주지..." 

 

내 농담에 버거씨가 웃으며 우리도 조만간 홈파티를 하자고 말했다. 

 

버거씨네 집이 이제는 편해졌다.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아늑한 온기가 참 좋다. 

 

버거씨는 배고픈 아들을 위해 부랴부랴 저녁을 준비했는데 보는 내가 좀 답답해서 후다닥 도와주었다. 닭고기와 야채를 넣은 볶음면이었는데 마침 버거씨가 한국 갈비 소스를 사놨길래 그걸 넣고 빠르게 완성할 수가 있었다. 이건 맛을 안봐도 무조건 맛있지!

 

고맙다며 맛있게 먹는 이 집 큰 아들의 모습을 확인 한 후 나는 뿌듯함을 느끼며 테라스로 나와 저녁 노을을 구경했다.

 

참 한치앞도 모르는게 인생이라더니 실감나는 말이다. 이것저것 지금의 상황을 작년과 비교해 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려던 참이었다.

 

"우리 산책갈까?"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있는 버거씨를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이스크림 있어?"

 

"오!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사진속에서는 평화롭기만 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집집마다 테라스에서 바베큐파티가 펼쳐지고 있었다. 가족들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여름 주말의 저녁을 즐기는 소리가 동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버거씨는 동네 이곳 저곳을 소개해주었다. 저 두 집은 부모집이랑 아들&며느리 집이 붙어있고... 또 저 집은 정원관리를 정말 잘 하고... 저 작은 건물은 사실 시청이고...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오렌지 색으로 커다랗게 떠오르는 보름달을 발견했다.

사진에는 잘 안담기네... 실제로는 더 크고 예뻤는데...  

 

우리는 잠시 서서 동네위로 떠오르는 커다란 달을 구경했다. 

 

"오래오래 여름이 안갔으면 좋겠다. 여름의 이런 활기가 나는 정말 좋아. 대신 가을은 싫어. 왠지 가을이 되면 우울해져." 

 

"올 가을은 다를거야. 내가 약속하지." 

 

참 다정하고 든든하다.

 

그래도 가을은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