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또다시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위치도 너무 좋고 방문 앞 테라스도 좋고 다 좋은데 큰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너무 춥다는 점이었다.
지난 2월 급하게 이사를 나와야 했던 그 당시에는 그렇게나 만족스럽고 뿌듯했던 내 첫 보금자리였는데 여름이 오기전까지는 추워도 정말 너무 추웠다. 더운 여름날에도 우리집만은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 마냥 시원했고 저녁에는 심지어 추워서 전기매트를 치울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원래 실내가 추운게 당연하다고들 하지만 우리집에 방문하는 내 친구들도 하나같이 이 집은 너무 심하게 춥다고 말했다. 아무튼 다시 온도가 떨어지는 이 시점에 나는 새로운, 더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기로 다짐했다.
몇 군데 집을 보러 다녔는데 너무 비싸거나, 혹은 너무 멀거나... 마음에 꼭 드는 곳을 발견하지를 못했다.
그러던 중 나는 토요일날 오후에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한 아파트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버거씨랑 SK 두 사람 다 나와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 집을 둘러보는 동안 버거씨랑 SK는 계속해서 의견 충돌을 보였다. 버거씨는 이 집이 너무 오래돼서 처음부터 마음에 안들었던 반면 파리에서 오래 거주한 경험이 있는 SK는 고풍스러운 이 집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버거씨는 삐그덕거리는 욕실문, 망가지기 일보 직전인 옷장문, 지저분한 창문등을 지적하며 주인 할머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SK는 주인 할머니의 비위를 맞추며 중요한건 실제 이 집에 살게 될 사람의 의견이라며 내가 이 집을 마음에 들어한다고 방긋방긋 열심히 웃어주고 있었다. ('너네 오빠 그만 좀 하라 그래'라고 속삭이기도 했음 ㅋㅋ)
두 사람은 서로 어떤 마음일지 몰라도 나는 기분이 꽤 든든했다 ㅋㅋㅋ
마치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는 기분이랄까? 나는 이 상황을 꽤 즐겼다. 아 이 든든함이라니! 나는 정말 행운아구나! 이들이야 말로 내가 혼자가 된 순간부터 나를 가장 많이 챙겨주고 돌봐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그 낡은 집은 결국 안가기로 했다.
다른건 몰라도 화장실 문이 안 닫겨서 ㅋㅋㅋ 아무리 위치가 좋고 가격이 저렴하고 따뜻하다지만 프라이버시는 있어야 하니까.
버거씨는 이 집 상태를 보고 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런 집에 내가 살면 너무 속상할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 적어도 제대로 된 화장실 문은 있어야지;;)
더 추워지기 전에 집을 못구하면 어쩌나 싶어 불안함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요즘 새학기도 시작되었고 매물도 눈에 띄게 줄었다. 부동산에서는 연락도 잘 안준다;
버거씨는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최고의 보증인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내가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내가 보증을 서는 한 너를 거절하는 집주인은 없을거야."
예전의 나라면 잘난척 하는 남자는 딱 질색이었건만 이 남자는 왜이리 섹시해보이는거지? 오 저 자신감은 분명 근거가 있는 모양이다. (프랑스에서는 월세를 구할 때 보증인이 필요하다. 일전에 나는 보증인이 없어서 꽤 고생을 했다.)
내가 배시시 웃는 이유도 모르면서 버거씨는 자꾸만 자기 자랑을 했다. 안심해도 된다면서. 버거씨가 안심하라고 하니 안심이 된다.
"우리는 한 팀이야. 너랑 내가 한 팀인데 우리가 같이 못 할게 뭐 있겠어? 안 그래? 나는 우리 두 사람을 믿어."
그래 나도 믿어.
과일을 사러 나갔던 버거씨가 한참이 지나서야 무언가를 들고 돌아왔다.
"원래는 꽃을 사오려고 했는데 꽃 보다 더 오래가는 이 식물이 좋겠더라고. 여기 스티커 내가 직접 붙인거니까 꼭 읽어봐."
"이걸 볼 때마다 네가 내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 우리집에 있는거랑 똑같은거잖아. 키우기도 쉬워."
아...
이런 작은 서프라이즈에 나는 정말 크게 감동한다고...
우중충하던 나의 작은 아파트에 초록의 생기가 생겼다.
추운 내 공간에 버거씨가 온기를 남겼다.
주말이 지나도 버거씨가 남기고 간 이 초록의 온기는 나를 따뜻하게 지켜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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