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씨가 낭시에 오는 주말이면 우리는 아침 식사를 밖에서 사먹는 경우가 많다.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몇 번 차려준 적이 있는데 우리집 부엌이 좁아서 너무 고생스러워 보였던가보다. 그 후로부터는 그냥 나가서 먹자고 말하는 버거씨. 보통 스타니슬라스 광장 테라스에서 먹곤 하는데 이번에는 버거씨가 전날부터 엑셀시어(Excelsior)에 가서 아침을 먹자고 말했다. 지난번 저녁식사가 마음에 들었던가보다. 엑셀시어의 팬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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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운영하는 시간이 정해져있기때문에 우리는 아침 일찍 엑셀시어로 갔다.
아침에도 샤랄라한 엑셀시어의 화려한 내부.
뭔가 아침부터 좋은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든다.
웨이터가 가게 한가운데 테이블로 안내를 하기에 내가 창가석으로 가면 안되겠냐고 요청해서 자리를 바꿀수가 있었다. 엑셀시어 앞을 지날때마다 창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멋져보였거든요...
행인들이여 오늘은 나의 멋진 모습을 보세요ㅋ
아침 식사 메뉴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그 중에서 가장 간단하게 커피, 빵, 잼, 버터 구성을 각각 주문했다.
내가 주문하는 커피는 언제나 디카올레- 디카페인 라떼다.
버거씨는 버터를 얇게 펴발라 먹는걸 좋아하지만 나는 이렇게 조각이 씹히는게 좋다. 그래서 차가운 버터가 좋음.
내가 두툼한 버터조각을 얹는걸 보고 버거씨가 웃었다. 내가 버터를 좋아하긴 하지만 맨날 먹는거는 아니니까 뭐.
우리는 이것 외에도 아보카도 토스트를 시켜서 나눠먹기로 했다.
잠시 후 나온 아보카도 샌드위치. 수란이랑 샐러드가 함께 나온다.
가격대비 완벽한 구성이다!
버거씨는 특히 아보카도 샌드위치에 굉장히 흡족해 했다.
"나 행복해."
이렇게 말하면서 배시시 웃었더니 버거씨 얼굴이 활짝 펴졌다.
"맛있어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도 있고... 그냥 아침부터 다 완벽한 느낌."
나를 따라 행복한 표정을 짓던 버거씨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진지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2년만 있으면 둘째가 성인이 돼. 그때가 되면 우리가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을 낭시에 장만할게. 회사에서도 집 이외의 장소에서 재택 근무하는 것을 허용하는 규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거든. 월요일마다 낭시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만 있게 되어도 우리는 일주일에 사흘을 함께 지낼 수 있는거잖아. 나도 낭시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
프로포즈나 마찬가지인 말들을 버거씨는 진지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내 손을 꼬옥 잡고서.
"우리 아빠는 매년 겨울만 되면 새엄마랑 모리셔스에서 몇 달씩 지내셔. 너처럼 추운 겨울이 싫어서 따뜻한 곳으로 가시는 거지. 나도 은퇴 후에는 너랑 그렇게 사는게 꿈이야. 친구들도 자주 초대하고 살사도 같이 배우고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말이야. 네가 꿈꿔오던 단순한 그런 삶은 내가 원하는거랑 똑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지난 겨울 나혼자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 들었을 때 짠하고 내 앞에 나타나준 고마운 사람. 나를 웃게 하는게 가장 우선순위라고 말해오던 이 남자는 지금 내 눈물을 보더니 본인이 더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 이런... 내가 안아줄게."
버거씨는 황급히 내옆으로 와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내가 꿈꿔오고 계획해 왔던 그 모든것들이 무너진 이후, 나는 노후에 대한 생각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벌써부터 나를 한가운데에 세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낭시외의 다른 도시에서 사는건 생각해 본적도 없다고 몇 번 말했더니 버거씨는 그럼 본인이 낭시에 오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단다.
고마웠다.
그리고 따뜻했다.
다시 한번 이 세상은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내가 겪은 시련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버거씨는 내 대답을 제촉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 눈물로도 충분한 대답을 들은 듯 한 표정이었다.
올 겨울은 왠지 다를 것 같다.
버거씨가 약속한 대로 덜 추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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