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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마음이 꼭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특별하다.

by 요용 🌈 2024. 11. 22.

니스 해변을 산책하다보니 호화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는 항구가 나타났다. 

기온은 고작 18도였지만 그늘없이 땡볕을 걸으며 느껴지는 체감 기온은 최소 25도였다. 물을 많이 마셔도 더위를 먹을 것만 같은 살벌한 태양이었는데 사람들은 평온한 표정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시멘트 바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샌드위치등을 먹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수 있는거지. 난 더워서 도저히 안되겠다. 어디 시원한데 들어가서 뭘 좀 마셔야겠어. 

그렇게 근처에 있는 바를 찾아 들어갔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11월에 에어컨을 찾을 줄이야) 시원한 그늘과 푹신한 야외 소파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저기 제일 폭신한 자리를 보자마자 내가 달려갔음ㅋ
말없이 따라 들어와서 옆자리에 푹 앉던 버거씨도 그 편안함에 두 눈을 꼬옥 감았다ㅋㅋㅋ 나 잘했찌~~  

오전에 먹은 무거운 브런치가 아직 채 소화가 덜 된 상태라 시원한 음료만 한잔씩 마셨다. 나는 레몬에이드, 버거씨는 토마토 쥬스. 
프랑스는 특이하게도 토마토 쥬스를 주문하면 타바스코 핫소스를 같이 준다. 옆 자리에 아저씨도 토마토 쥬스에 타바스코 핫소스를 뿌려마시고 있었는데 버거씨는 소스는 필요없다고 거절했다. 음료를 매운 맛으로 마시다니 희한하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면서 땀을 좀 식히며 정신을 차렸다. 의자가 너무 편안해서 우리 둘다 거의 낮잠을 잠깐 잔듯도 하다. 
떠나기 전에 화장실에 가려고 실내로 들어갔는데 내가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자 서글서글한 인상의 점원 아저씨가 지금 막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외국인 중년남자를 큰소리로 급하게 불러세웠다. 
 
"무슈! 독일에서 오셨지요? 여기 마담이 화장실을 먼저 사용하도록 양보하시는게 어떨까요?!"
 
아저씨 목소리가 너무 쩌렁쩌렁해서 깜짝놀랬다. 나는 어버버 하면서 괜찮다고 두 팔을 내저었지만 독일 관광객 중년남자는 "그럼요! 레이디 퍼스트지요!" 라며 과장되게 우아한 손동작으로 나에게 화장실을 양보 했다.ㅋㅋ 너무 살갑고 친절들하시다. (아, 프랑스에서는 대부분 화장실이 남녀공용이다.)
 

버거씨가 그 다음으로 나를 안내한 곳은 니스 올드타운이었다. 

구석구석 좁은 골목들이 여러갈래로 나 있었는데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았다.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광장들에는 시장이 열렸다. 사실 이 시장이 아니었다면 주변의 멋진 건물들이 훨씬 눈에 잘 들어왔을텐데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건물 양식이 내가 가본 다른 프랑스 도시들과 사뭇 달랐다.  

시장에는 많은 물건들이 있었지만 크게 우리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우리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가게는 니스 풍경화 가게였다. 

여러명의 화가들이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니스를 표현했는데 예쁜 그림들이 너무 많았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안샀다. 아직 내 집도 없는데 뭔가 실내 장식을 할 동기부여가 안되네... 
나중에 노년에 시간이 많이 남는다면 그때는 책도 쓰고 저런 그림도 그리고 싶다. 

올드타운에서 조금 걸었다고 그새 또 지쳤다. 벌써 늦은 오후인데 여전히 배는 안 고프고... 
아이스크림이 듬뿍 들어간 파르페가 먹고싶어서 디저트 가게로 들어갔는데 막상 앉으니 또 쌀쌀하게 느껴지네. 

차가운 파르페보다는 뜨겁고 달달한 음료가 땡겨서 차이티를 주문했다. 
버거씨는 호박라떼를 시켰다. 나도 먹고 싶었지만 커피가 들어가서 참았는데… 한숟가락 살짝 떠먹어보니 진짜 호박맛이네ㅋ

당근케잌도 주문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생크림이 같이 나왔다. 맛있쪙. 
이곳에 앉아서 우리는 또다시 수다가 폭발했다. 맨날 수다를 떠는데도 아직도 할 말이 이렇게 많다니.
이때 우리는 서로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12살때부터 언니랑 둘이 자취하면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그걸 말없이 다 듣고난 버거씨가 먹먹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 너 세게 한 번 안아줘도 돼? 정말 너무 대견하다. 넌 일찍 철이 들었구나. 그때부터 이미 독립적이었던거야. 많이 힘들었겠다..." 
 
나를 세게 안아준 버거씨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어. 너의 유년시절 혹은 너의 가족, 친척, 친구들 이야기 전부다. 웃길때도 있고 감동적일때도 있고. 그러니까 뭐든 좋으니까 나한테 다 들려줘. 다 듣고싶어." 
 
이런 사소한 말에서 나는 이 남자의 진심을 느끼고 감동한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것이 흥미롭고 다 알고 싶은게 인지상정이지.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이렇게 말하지는 않으니까.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충전이고 휴가이다. 

나는 행운아가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