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귀가할때 잔뜩 장을 봐 온 덕분에 우리는 숙소에서 든든하고 푸짐한 아침 식사를 차려낼 수가 있었다.
카페인에 취약한 내가 차이라떼를 자주 마시는 걸 눈여겨 본 버거씨는 차이티를 사다가 두유로 직접 차이라떼를 만들어주었다. 매일 아침마다 말이다. 그리고 옆에 붉은색 음료는 건강에 좋다는 콤부차다. 내 주변에서는 나만큼 건강을 잘 챙기는 사람이 없었는데 버거씨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견과류에 과일(감), 두유요거트까지 뭐하나 아쉬운게 없는 건강한 아침 식사.
살구잼과 버터를 시리얼 바게트에 듬뿍발라 먹었다. 수년째 간헐적 단식을 해 오고 있기는 하지만 버거씨랑 함께 할 땐 아침을 거를수가 없다. 이 행복을 포기할 수야 없지.
건강한 아침 식사로도 부족했던지 버거씨는 영양제도 매일 하나씩 챙겨주었다. (홍보 아님ㅋ)
홍삼& 로얄젤리라는데 내가 맛있다고 했더니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 상자를 선물로 줬다. 본인은 새로 사면 된다면서 말이다. 항상 누군가를 보살피는 역할에 더 익숙해 온 나인데 이런 따땃한 보살핌을 받으니 어찌나 가슴이 몽글몽글한지. 감사합니다 버거씨. 나한테도 이제는 그대가 넘버원.
오늘의 목적지는 생폴 드 방스(St Paul de Vence)라는 곳이었다. 역시 버거씨는 계획이 다 있구나. 개인적으로 본인이 다녀본 곳 중에 가장 좋았던 곳들을 추려서 나에게 소개할 거란다.
기차를 타야 된다고 해서 기차역을 먼저 찾아갔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도 안걸리는 거리였다.
기차역앞에는 심각한 표정의 강아지 토토가 가방을 내려놓고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토토야 출장가기 시러? 동료가 늦나? 내가 토토한테 말을 걸었더니 버거씨가 껄껄 웃었다.
기차로 16분정도 간 후 하차한 곳은 Cagnes-sur-mer라는 곳이었는데 이곳에서 버스를 한 번 더 타야된다고 한다.
"몇 번 버스야?"
기차역앞에서 길을 잃은 듯 두리번거리고 있던 버거씨에게 물었더니 655번 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마침 앞에 딱 와있네!"
"진짜로??"
정말 이번 여행에서는 우리가 타야되는 버스가 눈앞에 딱딱 나타나는 우연이 여러번이나 반복이 되어서 어찌나 신기하던지! 스트레스없이 마음을 비우고 여행을 하는 덕분에 이런 작은 행운들이 따라주는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낯선 도시에서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고~ 신난다!
버스기사님이 중년여성이었는데 깐깐하게 생긴 한 외국인 할머니가 기사님께 "봉쥬 무슈~" 라고 인사해서 나랑 버거씨가 동시에 눈을 마주치고 킥킥 웃었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나이 40대와 50대가 아니던가. 내맘대로 막 지어냄
아름다운 한적한 프랑스 시골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지나 싶더니 저 멀리 언덕 꼭대기에 동화같은 마을이 짠하고 나타났다!!
"저기 좀 봐! 아, 우리 저기에 가는거야??"
목적지에 대한 설명을 일체 안해주고 있던 버거씨는 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마도?"
오예 신난다~!!!
언뜻 몽생미셸이랑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내가 모르는 이런 아름다운 곳이 프랑스에는 얼마나 더 많은걸까. 버거씨 나 다~ 가보고싶어!!
구불구불 언덕길을 오르는 버스에 앉아 창밖 풍경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나는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멀리서 봤을땐 마치 성같은 느낌이었지만 막상 가 보니 이곳은 마을이 밀집되어 형성된 곳이었다. 멀리서 이 마을을 바라보는 풍경도 멋졌지만 이 마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더 멋졌다.
버거씨는 따뜻한 여름에 오면 훨씬 더 멋지다고,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관광객이 없고 조용해서 나는 좋았다. 화창한 날씨는 화창한대로 예쁘겠지만 흐린날은 흐린대로 또 멋지기만 하네.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시원하게 펼쳐진 산아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 멋진 풍경을 혼자서 보고 있는게 아니라서 열 배로 더 좋았다.
이때 귤나무(만다린)가 담벼락위에서 보였다. 오와...
우리는 둘 다 고개를 쳐들고 귤나무를 잠시 바라보았다. 맛있겠지...?
다시 손을 맞잡고 앞을 향해 걸어가려는데 갑자기 '툭'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버거씨는 까르르 웃으며 소리가 난 곳으로 호다닥 달려갔고 나는 영문을 몰라 버거씨가 왜저러나 싶어 멀뚱거리고 바라보았다.
귤나무가 우리에게 잘익은 귤을 하나를 던져준 것이었다 ㅋㅋㅋ 먹고싶냐? 옛다! 이런 느낌으로.
버거씨가 까서 입에 넣어준 귤은 엄청 달고 시원했다. 소중하게 오물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는 또 한 번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이게 뭔일이냐며 ㅋㅋㅋ
작은 행운은 이렇듯 여행 내내 이어졌다.
우리의 여행을 이 세상이 흐뭇하게 지켜보며 살짝씩만 티안나게(?) 툭툭 돕고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나는 감사한다. 버거씨 말고 이 세상에게. 그리고 내 삶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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