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새 아파트에서 첫 날 아침을 맞았다.
짐 정리가 안돼서 난장판이었지만 그래도 더이상 손과 코가 시리지 않은 집에서 아침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했다. 춥고 비싸고 불친절한 집주인이 있는 그 집은 이제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리는 아침 계획과 동선을 짰다. 역시 J커플ㅋ
버거씨가 가져온 테이블은 결국 조립에 실패했는데 (부품이 하나 부족 ㅡㅡ;) 다행히 SK가 가게에 하나 안쓰는 테이블이 있다며 이사 선물로 갖다 쓰라고 했다. 그럼 일단 마트에 들러서 과일, 버터, 쨈, 두유, 계란등을 사고, 빵집에 들러서 빵도 사고 커피도 산 후에 시장에 들러서 테이블을 들고 돌아와서 아침을 먹자!

시장 근처에 있는 이 빵집에는 처음 가 보았는데 (이전 집 주인이 운영하는 빵집에 주로 갔다길래 그 집은 더이상 가지 말라고 시킴) 버거씨는 이 집 빵에 완전 매료되었다.
"바게트 하나 주세요... 오! 혹시 저 빵은 혹시 밤가루로 만든건가요? 오 세상에! 무화과랑 헤즐넛도 들어가고요? 그거도 하나 주세요! 반 개 말고 큰 거 하나 다 주세요! 잘라 주실 수 있나요?"
완전 신이 나셨다.

드디어 테이블이 생겼다. 뚜둥-
우리 주변에는 짐이 마구 널부러져있지만 아무것도 안보이는 척 하고 먹는 중이다.
한 바퀴 시내를 돌고와서 먹으니 더 꿀맛이다.

이때 친정언니한테서 이사 잘했냐는 카톡이 와서 아침 상 사진을 찍어보냈다. 어제 버거씨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알려주고 말이다. 그랬더니 언니왈;
"아이고 고생했는데 아침상이 부실하네. 버거씨 계란 한 개 더 구워줘라-"
버거씨한테 말했더니 웃겨죽는다.

저 버터 엄청 맛있다!! 버거씨는 처음 먹어본단다. 나도 M이 알려준거지만- 그 후로 푹 빠졌다. 버터랑 생크림이 섞인건데 정말 환상적인 맛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가구점 몇군데 들러서 침대랑 가구를 둘러보았다. 결국 침대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로 하고 대신에 저렴한 옷장을 하나 사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버거씨에게 말했다.
"피곤할텐데 이만 집에가서 쉬어.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금요일부터 너무 고생했어."
"아니야 괜찮아. 옷장 산거 조립까지 해 주고 갈게."
"조립은 내가 해도 돼. 대신 떠나기 전에 나를 위해 해 줄 마지막 미션이 하나 있어."
"마지막 미션? 그게 뭐야?"
"밥 사줄테니 그거 같이 먹고 바로 돌아가서 쉬어."
버거씨는 밥값도 자기가 낼거고 옷장 조립도 다 해주고 갈거란다. 에너자이저 버거씨도 슬슬 얼굴에 다크서클이 내려앉는 중이었는데.

태국식당에서 우리는 한참 늦은 점심을 먹었다.
버거씨는 우동볶음, 나는 소고기 덮밥을 먹었다. 둘 다 맛있었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 밥을 먹고나니 기운이 다시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이 허접해 보이는 옷장도 조립하는데 어찌나 오래 걸리던지!
그래도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퀄리티다.
결국 버거씨는 저녁 늦게서야 돌아갔다.
다시 들고 갈 짐도 한가득이었다. 남은 페인트, 드릴, 망치, 사다리 등등...
차까지 배웅해 주는데 피곤하면서도 안 피곤한척 애쓰는 표정을 보니 뭉클하고 미안하고 따뜻하고 또다시 만감이 교차하네.
혼자가 아니라서 어찌나 다행인지.
오늘도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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