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씨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고 티옹빌로 향하던 중이었다.
최근 한동안 기차표 검사를 잘 안했었는데 오늘은 역무원이 다니면서 표를 검사하고 있었다.
"봉쥬 마담~ 표 좀 보여주시겠어요?"
친절한 여성 역무원에게 나도 웃으며 인사를 건넨 후 기차 앱에 있는 내 기차표와 함께 Fluo 할인권을 함께 보여주었다. (Fluo 덕분에 기차표를 50%나 할인 받고 있다! 이거 아니었으면 편도에 20유로나 냈을텐데 에리카가 알려전 덕분에 얼마를 아끼는거야~!! 1년 회원권으로 20유로를 냈는데 북프랑스와 파리까지 일반기차는 다 혜택받을 수 있다. 버거씨한테 알려줬더니 바로 따라서 구매했다.)
그녀는 내 표를 확인 한 후 바로 뒤에 있는 젊은 남자에게로 가서 똑같이 친절한 말투로 표를 요구했다.
"봉쥬 무슈~ 표 좀 보여주시겠어요?"
뒤에 앉아있던 젊은 아프리카 청년은 내내 시끄럽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어서 꽤 거슬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역무원을 향한 그의 대답을 들은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표 없어요."
헐...
"전화기도 없고 돈도 없어요."
저렇게 당당할 수가! 전혀 긴장했다거나 미안한 기색이 일도 안느껴졌다. 대답도 무성의했고 예의가 없었다. 한두번 겪어본 상황이 아니라는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성역무원 역시 처음 겪는 상황이 아닌듯 변함없는 말투로 대응했는데 이 또한 나는 놀라웠다. 어쩌면 저렇게 감정 변화없이 이런 싸갈탱이를 대할 수 있는걸까!!
나는 귀를 쫑끗세워서 진행상황에 집중했다. 싸갈탱이는 여성 역무원을 우습게 여기는 듯 했고 역무원은 직접 응대하는 대신 무전기로 동료들을 호출했다. 그런 후 그녀는 아무 코멘트 없이 그자리에 가만히 서있었고 싸갈탱이도 태연했다. 바로 옆에서 구경하는 나만 또 숨막히지ㅋㅋ
잠시 후 그녀의 동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 중 건장한 남자 역무원들이 싸갈탱이한테 정중하게 물었다.
"무슈,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무슈, 어디서 오셨어요?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싸갈탱이는 그제서야 살짝 긴장했는지 착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아비뇽에서 왔고 지금은 티옹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냥 돈도없고 표도 없고 전화기도 없단다.
직원들은 더이상의 에너지 낭비를 하는 대신에 다음 정차역에 그를 데리고 다같이 우르르 내렸다.
이긍 딱 한 정거장만 더 하면 티옹빌인데 싸갈탱이 속으로 엄청 아깝다고 했겠네.
지금까지 공짜로 기차를 얼마나 타고 다녔을라나. 트램은 무임승차하면 벌금이 50유로라고 하던데 기차는 어떨지 모르겠다. 다음 전개상황이 넘 궁금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티옹빌에 마중나온 버거씨에게 들려줬더니 버거씨가 한숨을 푹 내 쉬었다. 아마도 이민자일거라고 한다. 생각보다 흔하게 있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집으로 가는 내내 버거씨는 자신이 목격했던 일이나 주변에서 겪은 일들을 들려주었다. 인종차별한다는 소릴 들을까봐 쉽사리 입밖으로는 꺼내지는 못하는 말들이라고 한다. 뭐 나도 프랑스어 수업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많이 목격했으니까 이해한다.
프랑스도 세금이 줄줄 세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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