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마을 주변으로 짧은 산책을 나갔다.
며칠동안 온 세상이 꽁꽁 얼어있더니 또 주말이 되니 봄날씨처럼 따뜻해졌다. 이런 날씨는 나가서 즐겨줘야지.
말들아 안뇽~
참 평화롭다.
잠깐 앉아서 쉬다가 맞은편 집에 말들이 보였다.
어머, 저 뒤에 벽에 그려진 거 너네 초상화니?
내가 다가가기전까지 흰말 검은말 한 쌍은 저 그림처럼 나란히 서 있었드랬다. 주인이 얼마나 예뻐했으면 그림까지 다 그려줬을까.
흰말이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다가왔다.
난 아무것도 줄 게 없는디...
그렇게 반가워하면 빈손이 미안해지잖아.
들판에 알록달록 예쁘게 쌓여있는 이것들은 바로 지푸라기다. 예쁘게도 포장해 놨다 정말.
이동네 시골길을 걷다보면 이렇게 십자가가 붙여진 작은 시설물(?)이 종종 눈에 띈다. 아마도 오래전 교회가 멀어서 가기 힘들거나 혹은 들에서 일하는 중간에도 기도를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것 같다- 는 버거씨 설명이다.
온화한 공기를 만끽하며 둘이 손잡고 걷고 있는데 차 한대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버거씨와 엄청 반갑게 인사하던 이 젊은 운전자는 알고보니 이웃 주민이라고 한다. 꽤 오래 수다를 떨고 나랑도 인사를 나눈 이 남자는 조만간 집으로 우리 커플을 초대하겠다고 약속하며 헤어짐이 아쉬운듯 떠났다.
"어떻게 만난 사이야?"
내 질문에 버거씨는 먼저 한 번 웃고나서 대답했다.
"출근 버스에서 만났어. 저 남자도 룩셈부르크에서 일하거든."
"음... 보통 버스에서 만난다고 다 친구가 되지는 않잖아...?"
"하하 그렇지. 아침마다 버스에서 마주치긴 해도 딱히 인사를 나누진 않았지. 그러다가 어느날 사무실 근처 케밥집에 갔는데 익숙한 얼굴이 앞에 줄 서 있더라고. 그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지. 아침마다 버스에서 만났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저 남자도 웃으면서 나를 알아보더라? 그때부터 친구가 되었어. 벌써 서로 집에 왕래를 하고 식사를 여러번 했지. 와이프도 그렇고 굉장히 좋은 사람들이야. 조만간 우리집에도 식사 초대하자, 괜찮지?"
역시 버거씨ㅋ 세계 최강 친화력이다.
하긴 우리 친정엄마도 옛날에 이사한지 얼마 안 됐을때 나이차이 꽤 나는 친한 동생이 생겼길래 어디서 만났냐 물어보니 동네 목욕탕에서 친해졌다고 하셨지.
좀 더 걷다보니 길가에 소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서 있는게 보였다.
이번에는 버거씨가 다가갔더니 소들이 갑자기 버거씨앞으로 몰려들었다ㅋㅋㅋ 버거씨 스타야?ㅋㅋㅋ
"이길로는 워낙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심심했나봐."
심심했니 얘들아?
바로 헤어지기 미안해서 우리는 잠시 동안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인제 간다~ 안뇽~
우리는 숲길과 들판을 건너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분명 짧은 산책을 나가자고 했는데 또 한 시간이나 걸었다.
집 근처 다 왔을때 나는 하도 지쳐서 벤치를 발견하자마자 널부러져버렸다. 버거씨는 신음하는 내 표정을 보고 웃겨 죽는단다. 미안하면 집까지 업고 가라고 했더니 머뭇거리던 버거씨. 그래도 마지막 500미터를 업어주심. 오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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