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옹빌에서 맞이하는 일요일 아침.
오늘도 버거씨가 푸짐하게 차려주는 아침식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저 가운데에 있는 주황색 알들은... 실은ㅋ 어제 저녁에 만들고 실패한 (말하기도 부끄러운)'깨찰빵'이다.
며칠전 고구마랑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드는 깨찰빵 레시피를 알려줬더니 버거씨가 재료를 전부다 준비해 놓겠다며 주말에 같이 만들자고 한건데 문제는 타피오카 전분 대신에 타피오카 가루를 사다놓았다는게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고구마는 호박고구마랑 비슷한데 수분이 그것보다 훨씬 많고, 거기다 더해 검은깨 대신에 그냥 참깨를 넣어서 모양이 더 볼품없다. 아, 맛은... 빵이 아니라 떡이 되었음ㅋㅋ 쫄깃쫄깃... 저녁에 만들어서 둘이 그래도 맛있다고 몇 개 먹었고 남은걸 아침에 마저 먹었다. 많이 안해서 천만 다행... 뭐 이런 실패도 해 봐야지ㅋ
신선한 블루베리랑 라즈베리도 티옹빌에 오면 자주 먹게되네. 오늘은 망고도 손수 예쁘게 잘라주는 버거씨.
견과류도 챙겨먹고...
아 특별히 오늘은 아몬드 크루와상도 있다.
반을 잘라보면 속에 달콤한 아몬드소가 들어있다.
"이거 맛있다! 꼭 갈렛 데 호아 맛이야."
"아 정말 그러네! 이거 리들에서 산거야. 가격도 저렴한데 맛있네?"
버거씨는 빵은 Paul에서 사먹느니 차라리 리들에서 사먹는게 더 낫다고 말하곤 한다. Paul은 자기네가 직접 만드는것도 아니면서 비싸기만 하다면서 말이다. 가끔 여행중에 맛있는 블렁쥬리를 만나면 세상 행복해 하는 버거씨.
"어릴적 우리 할아버지는 지역에서 꽤 이름난 블렁제셨어. 삼촌이 옆에서 배우면서 일을 거들다가 결국 그 가업을 물려받으셨거든? 근데 확장해서 더 큰 돈을 벌고 싶은 욕심에 타 지역으로 이전을 했다가 실패하셨지. 몇 년후에 고향에 다시 돌아오셨는데 그때 지역 신문에 XXX블렁제리가 다시 돌아왔다고 기사가 날 정도였어. 그 정도로 할아버지의 명성은 건재하셨던거야. 그때 삼촌은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셔서 신문기자를 원망하셨지."
할아버지께서 생각보다 유명하셨구나. 버거씨의 빵맛에 대한 섬세함이 이해가는 대목이었다.
"16살 방학때 삼촌집에서 머물때였는데 그때도 나는 빵을 굉장히 좋아했거든. 삼촌이 빵 만드시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사촌한테 같이 가자고 졸랐는데 자느라 안일어나는거야. 그때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새벽 5시였는데 방에 있던 시계를 한시간 뒤로 조작해서 사촌더러 6시라고 거짓말을 했어. 애써 깨워서 둘이 자전거를 타고 삼촌의 블렁쥬리로 갔지. 그때 나는 엄청 들떠있었는데 삼촌은 바쁜데 왜 왔냐고 화를 내시더라. 사촌은 내가 시계를 돌린걸 깨닫고 난리를 쳤고 ㅋㅋㅋ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삼촌이랑 숙모가 빵 만드시는 모습을 구경했어."
참 귀엽고 열정적인 소년 버거씨.
"하지만 나는 그날 삼촌한테 너무나 크게 실망을 하고야 말았어. 어릴적 내가 본 할아버지같은 장인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삼촌은 다양한 시판가루를 쓰시더라. 크렘파티시에도 직접 만들지 않고 시판을 사용하셨고 크루와상도 직접 만드시는게 아니었어."
나는 깜짝 놀랐다.
"프랑스 빵집에서는 그런거 다 만드는거 아니었어? 프랑스인들은 시판 사다 쓰는거 질색하잖아."
"안타깝게도 많은 빵집에서 시판이나 생지를 사다가 굽는데 소비자들은 그 차이를 잘 못느끼지. 그러니까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쪽으로 점점 흘러가는거야. 나는 어릴적부터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직접 만든 빵의 차이를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않아."
"크루와상을 생지로 굽는다고?"
"직접 만드는 곳보다 냉동을 사용하는 집이 더 흔할 걸?"
나에게도 이건 충격적이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내가 아는 어느 빵가게 사장님은 크루와상 뿐만 아니라 모든빵을 직접 다 만들었어.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홍보를 좀더 적극적으로 해야 했는데 결국 그 빵집은 오래 안가서 문을 닫았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안타까운 집이었지."
아 삼촌네 가게는 그 이후로 장사가 꽤 되긴 했다고 한다. 다만 그 이유는 빵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예쁘고 친절한 숙모의 덕이 컸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또한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빵집이 다같이 문을 닫으면 안된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에게 빵은 주식이기때문에 휴가철에 다같이 문을 닫으면 안되니까 꼭 몇미터 마다 한 집은 운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빵집들이 문을 닫는 일요일에도 근처 어딘가는 꼭 운영중인 빵집이 있었던 것이었다.
프랑스인들에게 빵이 그렇게나 중요한데 냉동을 사다 굽는 빵집이 많다는 사실은 또 처음 알았네. 뭐 사실 나한테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냥 저렴한 빵집이 좋은 빵집이지 뭐. 그런 점에서 리들 크루와상 사랑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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