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가는 날이 찾아왔다.
여름에 예약했는데... 이 날이 오긴 오는구나.
혼자 치과가는게 무섭다고 했더니 버거씨가 자기네 동네에 있는 치과로 예약을 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머나먼 티옹빌까지 원정을 가게 되었네...

사진은 내가 찍은건 아니고 구글에서 캡쳐했다.

치과가 깔끔하고 접수할때 직원들도 친절해서 일단 안심했다.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같이 들어갈까?"
걱정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버거씨에게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응 그럼 나야 좋지."

치과의사샘은 바로 이 분이셨다. 마스크 너머로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다.
"낭시에 사신다고요? 그럼 낭시로 가셔야지요. 이 지역은 치과가 별로 없어서 지역 주민들이 4-5개월씩 기다리거든요. 낭시에는 치과가 얼마나 많다고요. 얼마전에는 메츠에서 예약한 환자를 거절하기도 했어요. 오늘 급한거는 제가 해드리겠지만 후속치료가 필요하면 낭시에 있는 치과로 가 주세요."
버거씨 괜히 따라 들어왔다가 혼부터 났다.ㅋ
의사샘은 성격이 좀 급해보였다. 말투도 급하고 뭔가 쫒기듯 빨리빨리 서두르는 인상이 환자 입장에서는 살짝 불편했다. 말이 느린 버거씨의 변명따윈 들어줄 시간이 없다는 듯 대답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위에 사랑니를 지난주에 뽑았는데 아래쪽 사랑니도 뽑고 싶어요..."
내 말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음.. 근데 아래쪽은 윗니보다 발치가 더 복잡하거든요. 제가 오늘 직접 하진 않을거고 스페셜리스트한테 가셔야해요.
뚜둥...
나 오늘 왜 온거니...
"일단 오늘 위쪽 사랑니 옆에 있었던 치아 옆쪽 충치를 치료할게요. 숨어있던 충치라 발견되기 어려웠는데 사랑니를 뽑고나서 드러났네요."
버거씨는 위쪽 사랑니를 뽑은게 차라리 다행인거냐 물었고 샘은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엑스레이를 두 번 찍었다. 윗쪽이랑 아랫쪽-
내 예상과 다르게 아래쪽 사랑니에는 충치가 없단다. 대신 위쪽 충치가 급해보인다고 했다.
마취주사를 맞고 잠시 기다렸다.
그 사이 나는 엑스레이가 궁금해서 고개를 살짝 세웠다. 그랬더니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던 버거씨가 자기를 쳐다보는 줄 알고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네.
“셰리 나 아직 여기에 있어. 다른데 안 가고 있을거니까 걱정마.”
거기 있는거 당연히 알지. 계속 떠들고 있는데 내가 그걸 모르겠냐.
근데 여의사가 버거씨말을 듣더니 빵터져서 웃었다.
“지금 그녀가 당신이 딴데 안가고 남아있는지 체크한거예요? 하하 두분 참 귀엽네요.“
버거씨가 세상 흐뭇하게 웃으며 끄덕했다. 마취땜에 입 열기도 성가시고... 그냥 나는 변명하지않고 입다물고 있었다.
위잉~~~~ 드륵 드륵... 마취주사를 맞았는데도 나는 긴장이 돼서 몸이 경직됐다.
으... 무셔... 제발 빨리 끝나라...
근데 그 긴장되는 순간에도 우리 버거씨가 자꾸만 의사샘한테 말을건다. 으구 내가 괜히 들어오라고 했나...
"지난주에 응급으로 낭시 대학병원에서 윗니를 뽑은거거든요. 분명 치통은 아랫니라고 했는데..."
"그곳에서 옳바른 판단을 한 걸로 보여요. 보통 그곳은 치프 덴티스트가 결정하는데..."
"어린 덴티스트 두 명이서 다 결정하고 발치까지 했다는군요?"
"아, 그렇군요. 아마 통증도 윗니에서 시작된게 맞을거예요. 일전에도 그런 환자가 있었거든요. 아래턱까지 통증이 전해져서 아랫니라고 착각하게 된 경우지요."
버거씨랑 대화를 하면서 의사샘은 이따금씩 고개를 들고 버거씨를 돌아보았다. 나는 이 선생님이 온전히 내 충치치료에만 전념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버거씨가 말을 할 때마다 손바닥을 세워보이며 버거씨한테 사인을 보냈다. 근데 눈치없이 계속 떠들고있네...
급기야 나는 손바닥을 들고 버거씨를 향해 살짝 흔들었다. 그 입 좀 다물라…!
그때 여의사가 드릴(?)을 멈추고 놀라 물었다.
"마담, 어디 불편하세요?"
나는 말을 못하고 살짝 고개 도리도리했다.
”아, 저더러 말 좀 그만하라네요. 하하 제가 말이 많아서...“
이제서야 알아들은 버거씨가 대신 대답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여의사가 또 크게 웃었다. 결국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같이 웃느라 진료가 살짝 지체됐다.
진료실에 델고 들어온 거 후회할 뻔했는데 이제라도 입을 다물어줘서 다행이다.
버거씨는 내 진료가 끝날때까지 합죽이가 되어주었다.
쉽지 않았을텐데.
"와, 그나저나 여기 위에 금으로 떼운거 정말 잘해놨네요."
역시! 10년도 전에 한국에서 떼운거라고 자랑하고싶은데 입이 봉쇄돼서 말을 못하네.
"일단 충치는 다 제거했고 임시로 뻥스멍을 채워놨어요. 최종적으로는 위에 금으로 떼운것도 제거하고 세라믹으로 다시 씌워야 해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낭시에 있는 치과에서 후속 치료를 이어가시는걸 추천합니다."
당일 치료비는 총 38유료를 결제했다. 버거씨말로는 의료보험으로 환급이 될거란다. 그리고나서 카운터 직원은 견적서를 줬다.
이 하나 씌우는데 600유로다. 우리돈 90만원...
거기서 의료보험에서 60유로가 환급돼서 540이 내 몫이란다. 그러니 견적서를 뮤튜엘(사보험)에 보내서 얼마나 커버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버거씨는 기왕이면 이 치과로 다시 오자고 했다. 의사샘은 좀 투박하긴 해도 거절하진 않을거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곳도 예약하면 다시 몇 달을 기다려야할거란다. 허허… 차라리 한국가서 치료하고말지.
그나저나 저녁때 버거씨는 내가 손바닥을 들었을때 눈치를 못채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보긴 봤는데 자기한테 하는 말인지 몰랐단다. 다음부터는 바로바로 알아듣겠다고 약속했다. 진료실에 데리고 들어온 걸 잠깐 후회했다고 했더니 버거씨는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웃었다.
뭐 이러면서 서로 적응해가는거지 뭐.
그래도 버거씨 덕분에 하나 하나씩 급한 불들을 끄고 있는 중이다.
고맙다고 수십번 수백번 말해도 모자란 사람.
하지만 다음번에는 내가 손바닥을 세우면 바로 알아들을거지?
약속...
'2024 새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뭘 먹든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먹는 프랑스인들 (9) | 2025.02.01 |
---|---|
괜찮다 괜찮다 (54) | 2025.01.31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4) | 2025.01.30 |
이웃들이 말타고 다니는 프랑스 시골 (5) | 2025.01.29 |
맛있었던 일요일 저녁 (13) | 2025.01.27 |
일요일 프랑스의 거리는 텅텅 빈다. (4) | 2025.01.26 |
...... (33) | 2025.01.25 |
사랑니처럼... 뽑아버릴 게 더 있다. (30) | 2025.01.24 |
요용 🌈님의
글이 좋았다면 응원을 보내주세요!
이 글이 도움이 됐다면, 응원 댓글을 써보세요. 블로거에게 지급되는 응원금은 새로운 창작의 큰 힘이 됩니다.
응원 댓글은 만 14세 이상 카카오계정 이용자라면 누구나 편하게 작성, 결제할 수 있습니다.
글 본문, 댓글 목록 등을 통해 응원한 팬과 응원 댓글, 응원금을 강조해 보여줍니다.
응원금은 앱에서는 인앱결제, 웹에서는 카카오페이 및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