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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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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 2025. 1. 25.


남편과 시부모님의 요구로 2023년에 내가 서명했던 Separation de bien 서류를 버거씨에게 보여주었다. 
변호사를 만나기전에 한 번 봐도 되겠느냐며 버거씨가 물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서류를 읽는 버거씨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인터넷으로 뭔가를 검색을 해 보더니 한 숨을 길게 내쉬는 버거씨. 한참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 전남편은 이게 결혼 계약서가 아니라고 했다고? ... 충격적이게도 결혼 계약서가 맞아. 나는 네가 2023년에 서명했다길래 그 이전까지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네가 재산 분할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 서류는 네가 결혼한 2016년부터 적용이 되도록 치밀하게 작성 되어있어... 정말 네 넘편도 너희 시어머니도 무서운 사람들이다. 나쁜 사람들이야..." 
 
"... 프랑스에서는 다 이렇게 한다던데?"
 
"아니 그렇지 않아... 하아....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런 나쁜 가족들로부터 탈출한거니까 그나마 행운이었던거라고.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사악할 수가 있지... 외국인 부인, 외국인 며느리가 남편 한 사람만 보고 먼 나라까지 왔는데... 참... 아파트 보증 안해준 것도 놀랐지만 이건 정말..." 
 
이 말을 들으니 마음 깊숙히 뭍어두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럴려고 그때 그랬구나... 
 
 
 
전남편과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던 재작년 여름 우리는 정말로 행복했다.
아파트 가격이 결코 싼 편이 아니었지만 그는 나에게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했다. 본인이 다 알아서 하겠다고 말이다. 
 
어느날 아침 시어머니께서 연락도 없이 우리집에 들이닥치셨다. 표현 그대로 마치 강풍을 몰고오듯 무서운 기세로 들어오셨다. 아버님은 뒤늦게 조용히 따라 들어오셨다. 아침에 유독 더 심해진다는 우울증으로인해 전남편은 늦잠을 자다가 까치머리를 하고 부랴부랴 거실로 나왔다. 
 
시어머니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커피 드릴까요?" 
 
"아니다. 여기 와서 일단 앉아라. 너희 둘 다." 
 
시어머니는 서론도 없이 바로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씀하셨다. 
 
"너, 아파트 사는데 얼마 낼거냐?"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그 기세에 놀라고 당황한 나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우물쭈물 생각해 낸 내 대답은 이러했다. 
 
"많이는 못내고요... 낼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보탤거예요..." 
 
시어머니는 물러서지 않으셨다.
 
"그래서 얼마?"
 
"한국 계좌에.. 많지는 않아요..." 
 
어머님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지 테이블을 두드리며 다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숫! 자! 를 말해다오." 
 
어머님의 차가운 표정을 마주한 후 내 심장도 차가워졌다. 치욕감에 올라오는 눈물을 꾹꾹 눌러참았다. 똑같은 대답을 이번에는 단호한 목소리로 반복했다. 어머님께 내가 이 답변을 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전남편도 어머님께 화를 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지금 뭐하시는거냐... 지금 우리 아파트를 사는거지 엄마 아파트가 아니다. 신경끄시라...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꼭 미리 연락을 달라고 오시라고 언성 높여 말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여전히 당당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네 아파트 사는거 우리가 도와주마. 유산을 미리 주거나 빌려주거나. 그걸 결정하기위해 나는 요용이 얼마를 낼 수 있는지 알아야 했어." 
 
밤새 그 생각만 하다 한숨도 못자고 아침이 되자마자 달려오셨나보다. 아침이 되자마자 요용한테 얼마 낼 건지 물어봐야지 하고 말이다. 
 
우리 부모님은 오빠네가 아파트를 산다고 했을때 새언니가 얼마를 내는지 궁금하셨을까. 이 모습을 우리 부모님이 보셨으면 무슨 생각이 드셨을까.
 
시부모님이 떠난 후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전남편은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가 돈갖고 우리일에 더 간섭할 것 같으니 차라리 은행에서 빌리는게 나을지 모르겠다고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파트 가격 중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금액을 시부모님으로부터 도움받았다. 나머지 금액은 본인이 가진 현금으로, 은행 대출 없이 치뤘다.
 
얼마 후 공증사무소에서 아파트 계약을 하면서 그 가족은 나에게도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Separation de bien. 서명하란다.  
내가 한 푼도 안냈으니까 이 아파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말라는 거구나. 치사하지만 일전에 시어머니께 받은 그 치욕이 떠올라 그냥 두번 생각하지 않고 서명해 줬다. 
공증인은 나에게 몇번이나 강조했다. 이혼을 하게 되면 결혼전에 내 소유였던 재산만 갖고 떠나는거라고.
프랑스로 올 때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라는거구나.
 
그때부터였다. 서서히 내 마음에 이 가족에 대한 의혹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 
당시 한창 임신에 집착하면서 인공수정에 매달릴때였는데 이 사람들은 돈 앞에서 나를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돈 앞에서 너는 우리 가족이 아니야. 이 선 밖으로 꺼져줄래...  
 
새 아파트에 놀러오실때마다 시어머니는 목에 힘주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네 새 아파트 너무 좋다. 너도 너네 아파트 너무 좋지?" 
 
매번 못들은척 했지만 내 대답을 강요하실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거 제꺼 아닌데요?" 
 
"네 남편이 죽으면 네꺼지." 
 
하... 
나는 아무 대꾸없이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러면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드시려나.
 
 
 
우리가 이혼하기로 했다고 시댁에서 울면서 말씀드렸을때 어머님은 나더러 본인의 친구가 빈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으니 그 집에서 잠시 지낼수 있도록 연락을 해 보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서두르셨다. 어차피 달리 갈 데가 없으니 그냥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어머님은 대학생들이 머무는 아파트호텔 목록을 계속해서 나에게 보내셨다. 
 
"내 친구네 집에서 네가 영원히 지낼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어서 빨리 다른 집을 알아봐야하지 않겠니? 이 집 괜찮은것 같은데 어떠냐?" 
 
아직 그녀의 친구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쫒아내시는거였다. 하나같이 보증인이 필요없는 비싼 아파트들... 역시 전남편처럼 시부모님도 내 보증인이 되어줄 생각은 없으셨던가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또 한가지 중요한게 있다. 네가 네 의지대로 집을 나간다는 내용을 적어서 서명해다오." 
 
이때부터 독하게 마음을 먹게되었다.
이제 정말로 시어머니를 믿으면 안되겠구나. 내 힘으로 살아남아야한다. 
 
당시 에리카의 조언으로 퇴직한 변호사가 무료로 상담을 해 주는 기관을 찾아갔다. 거기서 말하길, 시어머니가 요구하는 그 서류는, 마음만 먹으면 그쪽에서 나를 프랑스에서 추방시킬 수 있는 효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시어머니가 요구하는 그 어떤 서류에도 앞으로는 사인하지 말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그만큼 치밀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나는 마음속에 뭍어둔 이야기들을 버거씨에게 다 쏟아냈다. (지금 블로그에도 그 일부를 쏟아내고 있지만...) 
버거씨는 혀를 찼고 나보다 더 흥분해서 들어주었다.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묵혀둔 이야기를 눈물로 한바탕 쏟아낼 수가 있었다. 
 
버거씨는 진심으로 나를 위로했다. 
 
앞으로는 세상 그 누구도 나를 마음대로 이용하게 내버려두지 않을거라고 말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거면 되었다. 
 
사람과 돈. 그 중 내 선택은 언제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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