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집 부엌 창문 셔터가 망가졌다.
평소처럼 수동으로 돌리면서 셔터를 닫았는데 갑자기 어딘가 걸린 듯 하더니 아래쪽으로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버거씨는 오래된 집이라 그럴 수 있다며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청해 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내가 잘못 작동해서 그런걸거라며 수리비를 내 주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버거씨도 쉽게 승낙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두 남자간에 (사실 이 두 남자 모두 대리인임) 짧은 언쟁이 있었고, 결국 집 주인은 수리하는 사람을 보낼테니 누구 과실인지를 판단하는 동시에 견적을 받아보자고 했단다.
그 수리하는 남자는 금요일 아침에만 시간이 된다고 했고 버거씨는 나를 위해 금요일날 우리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고마워라... ㅠ.ㅠ
룩셈부르크에서 퇴근을 하고 집에 들러서 짐을 챙겨서 오느라 버거씨는 우리집에 밤 9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혹시라도 배고플까봐 닭죽을 한 솥 끓여놨는데 다행히 버거씨가 맛있게 먹어주었다.
나도 버거씨도 아직 기력이 완전히 회복한 단계가 아니라서 체력을 좀 아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수리업자가 일정때문에 나한테 전화를 했거든. 근데 처음부터 뭐라는 줄 알아? 집주인이 말하길 마담이 셔터를 잘못 작동해서 고장난거라고 하던데요? 이러는거 있지. 그 말은 정말 나를 화나게 했어. 네 과실로 우겨서 수리비를 안내려고 꾀를 쓰는거지."
버거씨는 죽을 먹으면서 흥분해서 말했다. 나는 같이 맞장구를 치면서 황당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별로 걱정되지는 않았다. 버거씨가 나 대신 너무나 훌륭히 싸워줄 것을 아니까.
"그래서 내가 말했지. 무슈, 이 집이 얼마나 오래된 집인지는 와서 보시면 알거예요. 집주인말을 믿기전에 직접 두눈으로 보고 판단하시죠. 내 여자친구의 과실이라는 판단이 드는 경우에는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저를 먼저 설득하셔야 할 거예요- 라고."
역시 우리 버거씨는 말만 많은게 아니라 말을 잘하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이 더이상 너를 함부로 이용하는 꼴을 두고보지 않을거야. 넌 내가 지킬거야. 이 집주인뿐이 아니야. 이전 집주인도 그랬고 또 네 전남편이나 전시댁도 마찬가지야. 겉으로는 너한테 잘해주는 척하지만 정작 필요할 때 너의 권리는 무시해버리는 사람들. 앞으로는 그 누구도 널 이용하지 못해. 이젠 내가 있으니까."
아웅... 눙물나잖아...

다음날 오후 근무 중 버거씨는 일이 잘 해결이 되었다고 메세지를 보내주었다. 수리업자의 의견에 따라 집주인이 수리비를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수리업자는 필요한 물건들을 일단 주문을 하기로 했는데 수리하러 언제 다시 올 지는 미지수...
이곳은 프랑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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