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나는 요즘 퇴근길에 리들에 들르는 습관이 생겼다. 새로 이사한 집에 리들이 가까워서 얼마나 좋은지.
딱히 살 것도 없는데 리들만 들어가면 기분이가 좋아진다 말이지...
세일하는게 있는지 둘러보고 과일이나 야채 그리고 고기등을 건져(?)온다.
오늘도 나는 주말에 낭시로 오는 버거씨를 위해 뭐 좀 사다놓을까 싶어서 들렀다.
견과류랑 다크초콜렛을 둘러보며 가격을 비교하고 있던 그 순간 누군가가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요용! 요용! 너 맞지 요용? 아 맞네! 맞다니까~ 내가 제대로 본게 맞았어!!"
내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
나를 엄청 반가워하는데 누구더라...
낯이 엄청 익긴한데 누군지 바로 떠오르지 않아서 3초간 멍하게 서 있다가 그제서야 떠올렸다.
"마리!"
파리에 사는 전남편의 사촌 누나였다.
내가 이름을 부르자 더 반가워하며 내 양볼에다 비쥬를 하며 쉴새없이 안부를 물어오는 그녀.
"잘 지내고 있는거야? 일 하고 있다며? 일은 힘들지 않고?"
전남편과 남남이 된 사실을 분명 알텐데도 아무일 없었던 것 처럼 나를 대하는 그녀. 살짝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곧 생각을 고쳐먹고 반갑게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다고 생각하니 또 반갑네.
"잘 지내요. 근데 낭시에 방문중인거예요?"
"나야 삼촌이랑 숙모를 보러 왔지!"
그녀의 고개짓을따라 저절로 내 시선이 돌아갔는데 그제서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어정쩡한 거리에서 시어머니가 어쩔줄 모르는 얼굴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빚쟁이를 마주친 표정같달까.
죄책감인가.
이제와서... 이런다고?
일년넘도록 내 앞에서 그렇게 당당했으면서?
"아, 거기 계셨네요. 잘 지내시죠?"
내가 아무렇지않은듯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더니 시어머니 세상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렇게나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시어머니가 주신 고양이그림 장바구니를 메고 있었다. 시어머니 물건 중 유일하게 남은건 이제 이거뿐인것 같네.
시어머니는 조카인 마리에게 어서 이만 가자고 재촉했지만 마리는 그럴 생각이 없는지 한참동안이나 내 안부를 더 묻고 아쉬워하다가 떠났다.
부부가 헤어지면 멀쩡하게 잘 지내던 나머지 가족들과의 관계도 이렇게 어색해지는거구나. 슬픈일이다. 일전에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올 때 나에게 인사를 하러 시장에 찾아왔던 시동생도 떠오른다.
그나저나 시어머니는 왜 이제와서 내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는걸까.
버거씨는 이렇게 해석했다.
한겨울 갑자기 세상 외톨이가 된 외국인 며느리가 집을 구하는데 보증도 안서준거. 본인과 아들의 돈을 지키는게 급선무여서 먼 타국에서 홀홀단신이 된 가엾은 며느리의 근황조차 물어본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조카앞에서 이야기 하다보니 부끄러워진게 아닐까.
프랑스어도 잘 못하고 물정을 잘 모르던 며느리가 당시에는 만만하게 보였을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는 지금 낭시에 너무나 잘 정착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애석하지만 낭시는 너무 좁은 사회다. 그들의 치부를 알고 있는 내가 불편하기도 하겠다. 생각해보니 시어머니는 나때문에 그 좋아하는 시장 발길도 끊으셨네.
내 안부를 묻는 마리에게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내 눈을 피하는 시어머니께도 나는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여쭈었다. 우물쭈물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녀에게 나는 여유있게 웃어주며 그럼 다행이라고 대답했다.
잘 처신한것 같은데도 왜 마음 한 켠이 씁쓸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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