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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이혼... 어떻게들...

by 요용 🌈 202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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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너 뮤튜엘 새로 받은거 있어?] 
 
뮤튜엘은 사보험을 가리킨다. 보통 병원비나 약값의 70%는 건강보험에서 처리되고 나머지 금액의 일정액은 바로 이 뮤튜엘에서 커버된다. 뮤튜엘 가입할 때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보험료 및 커버되는 범위가 다르다. 나는 그동안 전남편의 뮤튜엘을 같이 사용해 오다가 헤어지면서는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가장 기본금액으로 새로 가입을 한 상태이다. 
 
나는 ‘그렇다’고 짧게 답장을 보냈는데 바로 문자가 또 왔다.
 
[원래 쓰던 뮤튜엘보다 보장이 잘 되는거야? 그렇지 않으면 전에 쓰던걸로 계속 사용해. 혹시 네가 아프다면… 네 보험료를 내가 더 내는게 차라리 마음 편해.]
 
내가 답장을 안했더니 전남편은 메세지를 또 보내왔다. 대화가 하고 싶었나보다. 
 
[별일없지? 얼마전에 네 턱 엑스레이 사진을 받았어. 무슨일 있는거야?]
 
공식적으로는 아직 혼인상태라 내 건강문제에 대한 모든 자료가 전남편 계정으로 공유가 되고 있었다. 두달전 내가 코로나에 확진된 당일날 그가 새로 갱신된 뮤튜엘 카드를 pdf로 보내줬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구나.
 
[사랑니 뽑고 어금니 치료를 받고 있어.]
 
[전에 우리가 같이 갔던 그 치과가 낭시에서는 제일 좋은데 거기로 가지 그랬어. 필요하다면 내가 태워다줄게.]
 
[아니야 괜찮아. 이미 집 근처로 다니고 있는 중이야.]
 
[뮤튜엘에 치료비 견적 보낼일이 있으면 알려줘. 네 직장 뮤튜엘이랑 내 뮤튜엘이랑 비교해 보고 더 저렴한 걸로 선택하면 되니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몰랐다. 
 
 
몇 시간 후 나도 전남편에게 용기내서 안부를 물었다. 지난 한해동안 그렇게나 궁금했던...
 
[별일없어? 무스카델도 잘 지내?]
 
[나랑 무스카델 둘 다 몇달 전에 큰 수술을 받았어.]
 
!!
이래서 내가 몇달전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던가. 꿈에 무스카델이랑 전남편이 자꾸 나타나서 밤잠을 자주 설쳤는데... 
 
[무슨 수술?]
 
[무스카델이 몇 달째 밥을 못먹고 살이 계속 빠졌어. 송곳니를 뽑아야했고 뱃속에 헤어볼이 있어서 수술을 했는데 여전히 잘 먹지를 않아...]
 
아... 지금 당장 무스카델을 내가 데려온다고 말해야 하나.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간신히 참았다.
빗질을 맨날 해줬어야지...
 
[당신은 무슨 수술이었는데?]
 
[나는 급성담낭염이었어. 나도 10킬로나 빠졌어. 수술중에 염증이 터져서 꽤 복잡해졌었지. 나보다는 무스카델이 자꾸만 살이 빠져서 걱정이야...]
 
대답을 못하고 있었더니 전남편이 사진을 두 장 보내왔다. 무스카델 사진들이었는데 침실과 거실에서 본인의 무릎위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데 가슴이 어찌나 미어지는지... 한때 내 집이고 내 가족들이었는데... 사진속엔 나만 없고 모든게 그대로였다.
(사진속 집은 또 왜이리 칙칙해보이는지.. 생기가 하나도 없어보인다.)
 
사진은 괜히 보내와서 사람을 울리나싶어 짜증이 나려던 차에 [송곳니 하나 빠진게 보이지?]라는 메세지가 왔다. 
하아... 
그래도 무스카델 사진은 반칙이지... 
 
 
전남편에게 남편으로서의 미련이 남은건 아니다. 
그가 나를 버린 덕분에 나는 버거씨를 만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 어느때보다 활력이 넘치고 마음이 평화롭다. 누구보다 다정하고 밝고 순수한 버거씨를 만난건 그만큼 큰 행운이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걸까. 
 
정이겠지. 

10년을 서로 보살피고 의지하며 살았는데 한순간에 남이 되는게 쉽지 않다. 그가 나에게 무슨짓을 저질렀건간에 말이다. 
부모나 형제가 아무리 잘못을 한다해도 법적으로 남이 될 수 있는건 아니잖는가. 한때 부모형제보다 더 가까웠던, 내 살붙이 같던 남편이었는데... 부부사이가 하루아침에 생판 남이 된다는게 이렇게나 가슴 아픈일이었단 말인가. 자식이 없어도 이혼은 이렇게나 힘든거구나.
긴 세월 같이 살다가 이혼하는 부부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어떻게들 하신건가요. 이 힘든것을요... 
 
나는 간신히 기분을 추스린 후 마지막으로 짧게 답장을 보냈다. 
 
[둘 다 잘 먹어야겠다...]
 
이젠 내가 조언을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니... 이것밖에는 해 줄 말이 없다.
그 다음부터는 아무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저녁에 버거씨랑 전화통화를 하면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버거씨는 따뜻하게 나를 위로했고 자기와 공유해주어서 고맙다고도 말했다.
 
버거씨말대로 비자문제만 확실해지면 이혼을 서둘러야겠다. 모두를 위해 이게 좋겠다. 
 
버거씨는 내가 이혼을 빨리 마무리하는대로 함께 살 집을 낭시에서 알아보자고 말했다. 진짜 부엌이 있고 한국의 가족들을 초대할 수 있는 집, 내가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집 말이다.
 
응. 그럼 정말 좋겠다.
 
나를 저버린 전남편에게 최소 죄책감이 들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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