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전 버거씨는 서울에 있는 은행 몇군데에서 한국인 방문객들이 오기로 되어 있는데 본인이 그들의 환영을 도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말인데... 너한테 부탁할 것이 있어."
"아, 간단하게 한국어로 인사하는걸 알려달라는거지?"
맞단다. 그 어느때보다 의욕을 불태우며 이틀간 한국어 인삿말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고작 네문장이었지만 할 줄아는 한국어라고는 반말 몇마디뿐인 버거씨에게는 세상 어렵고 복잡한 문장이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XXX 버거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내 목소리로 녹음해서 보내주었고 통화할 때마다 버거씨의 발음 검사를 했다.
오늘 아침 회의를 앞둔 버거씨는 떨린다며 음성 메세지를 보내왔다. 마지막으로 한국어 발음을 검사해 주었다.
"안녕하 쎄오. 저 눈 XXX 버거 입 미다. 방 갑 쑵미다."
아 귀여워죽겠다. 근데 왜 한국어를 할 때만 목소리가 이렇게 하이톤이 되는거지ㅋㅋㅋ
뭔가 또박또박 말하는게 어린이 같기도 하고 아침부터 계속 웃음이 났다.
회의는 시작했으려나. 연습한대로 인삿말을 제대로 했으려나. 궁금하던차에 회의가 끝나자마자 버거씨가 꽤 들뜬 목소리로 음성메세지를 보내왔다. 연습한대로 아주 성공적으로 잘 말했고 총 네명이었던 그 한국인 손님들이 매우 즐거워했다며 좋아했다.
알았어. 이따 저녁때 다시한번 자세히 들려줘.
버거씨는 퇴근 후 영상통화로 오늘 회의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었다.
"내 한국어 인삿말이 꽤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아. 덕분에 회의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해졌어. 나는 세상 최고의 한국어 선생님이 있다고 말했지. 바로 내 여자친구라고 말이야."
별것도 아닌데 자꾸만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버거씨.
"나는 네가 너무 자랑스럽고 너와 내가 한 팀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
내가 웃었더니 표정을 진지하게 고쳐지으며 버거씨가 말했다.
"너와 나는 최고의 한 팀이야. 그 사실은 나를 충족시켜주지. 세상 최고의 파트너와 함께 한다는 사실은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지 더 강한 사람이 되게 하고 자신감 넘치게 해. 직장에서 일할때나 친구들을 만날때에도 똑같이 작용해. 내 주변에 기운이 넘쳐나는 느낌이야."
오늘 버거씨 기분 정말 최고인것 같다. 나는 말없이 버거씨가 하는 달콤한 말들을 끝까지 경청했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네가 채워주고 나는 너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지. 이보다 더 중요한건 내 인생에 없어. 앞으로 우리가 함께 성취할 수 있는 많은것들을 생각해봐. 정말 설레지않아?"
응... 끄덕끄덕
정말 고마워. 너역시 최고의 파트너야.
나의 가치를 이리도 높게 봐 주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오늘 피곤할텐데 일찍 쉬도록 해.
나는 마지막으로 (평소처럼) 한국어로 "잘자~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버거씨는 오늘 한국어로 좀 더 공손하게 말했다.
"안녕히 가 쎄오~"
아ㅋㅋㅋㅋㅋㅋ
오늘 한국인 손님들 떠날때도 허리 숙이는 대신에 저렇게 헤맑게 손을 흔들었겠구나.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50대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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