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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새출발

나를 가장 높게 평가해 주는 사람

by 요용 🌈 2025.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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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에 버거씨는 내 서류를 함께 준비하자고 했다. 

 

이혼은 시간이 걸리니까 일단 그 전에 별거를 공식화 해야한다던 변호사의 조언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경시청에다 보내는 편지도 써주었고 (AI를 능숙하게 사용해서 편지까지 작성하는 버거씨를 보고 꽤 감탄했다. 또한편으로는 요즘세상에도 이렇게 우편으로 편지나 서류를 전달해야 하는 프랑스 상황이... 하아... ) 관련 신고서 양식을 찾아서 빈칸을 채우고 프린트를 했다. 필요한 서류들도 바로바로 인쇄를 했더니 경시청에다 보내야 하는 서류가 총 10장이나 되네.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길게 걸렸다. 

전남편 서명없이 일단 내 서명으로만 진행해 보고 한번 추이를 보기로 했다. 

 

저녁 기차를 타고 낭시로 돌아가야 하는데 남은 시간이 별로 없네. 따뜻하던 해가 서쪽 하늘로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아쉬우니까 우리 잠깐이라도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좀 쐬자. 

그래도 눈에 띄게 낮이 길어지고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는 여러모로 겨울을 싫어하는구나. 봄이 오니까 정말 되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쉴새없이 고백하는 버거씨는 이번에도 어김이 없었다. 석양을 보니 뭔가 스윗한 말을 해야겠다 싶었나보다.

 

"나는... 너를 만나고나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어. 너는 나의 스승이고 롤모델이야." 

 

"응? 내가 뭘 가르쳐줬지?" 

 

쑥스러운듯 쭈삣거리면서도 뭔가를 길게 말했는데 내가 기억하는건 대충 이랬다.  

 

"나에게 너는 일종의 부다라고나 할까... 나는 너를 존경하고 많이 배우고 있어.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 회의 중 언쟁에서 이제는 내 말이 맞다는걸 증명하려고 기운을 빼지 않아.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보내는 짧은 시간들이 더 소중해졌어. 네 덕분에 나는 마음의 평화를 찾은것 같아."

 

그 어떤 말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나는 우뚝 멈춰서서는 까치발을 들고 버거씨의 목을 끌어안았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구나..." 

 

"며칠전 회사에서 보스랑 일대일 면담이 있었어. 지난해 내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날이었거든. 내 성과에 대해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어. 무엇보다 내가 팀원들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팀원들에게 충분히 들었다고 하더라. 승진이 마땅한데 지금 회사 재정상 난관이 좀 있을수는 있대. 하지만 본인이 최선을 다해서 인사과에 말해보겠다고 하더라. 내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내가 직접 말할 필요가 없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다면서 말이야. 정말로 기분이 좋았어.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재대로된 마음의 평화를 얻었어. 주변 사람들도 그게 느껴지나봐." 

 

눈물 날 뻔 했다. 이리도 나를 높게 평가해 주다니...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칭찬이었고 감동이었다. 

 

버거씨는 평소에도 회사 업무에 대해서 나에게 시시콜콜 이야기 해 준다. 동료와 크고 작은 갈등이 있거나 혹은 상사의 결정에 이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을때 나에게 적극적으로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나는 최대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하지만 할 말은 다 할 수 있게, 그러니까 유도리있게(?), 때론 웃으며 직구로, 이런식으로 해봐라 라고 (내 기준으로) 대답을 해준다. 어디나 다국적 회사 분위기는 비슷하니까... 버거씨는 내 조언을 고마워하고 때론 무릎을 치며 감탄하기도 한다.

 

"아, 얼굴 붉힐 필요가 없었구나! 다음번에 또 그러면 네가 말해준대로 해야겠다!"

 

이러니 내가 조언해 줄 맛이 안나겠냐고...

본인의 회사일에 내가 함께 고민하게 해 줘서 나야말로 더 고맙다. 

 

동네로 다시 돌아왔더니 석양을 배경으로 공을 차는 동네 꼬맹이들이 골목에 나와 있었다. 이 풍경 또한 정겹구나. 

 

기차 타기전에 버거씨가 간단하게 저녁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풉... 비비고 만두라니ㅋ 

이집에 한국 제품이 점점 늘고 있구나. 

 

버거씨는 내 덕분에 다음 한주를 시작할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했다고 말했다. 

나야말로! 

 

우리는 환상의 팀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