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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우리 할머니의 그림(?) 자랑

by 요용 🌈 202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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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랑 저녁을 먹고 있는데 엄마에게 할머니로 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으신 엄마가 슬며시 웃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할머니 오신대. 그림 그린거 갖다주러." 
 
"그림? 할머니가 그림을 그려??" 
 
내 말에 엄마랑 아빠는 마주보며 피식 웃으셨다. 
 
"응. 온 식구들 한 권씩 다 줬어. 삼촌들도 언니도 나영이도 전부다 받았어. 내일 줘도 된다는데 지금 당장 니 줘야 된다고 오신단다. 에혀" 
 
할머니가 그림을?! 
그래, 인스타에서 보니 어떤 할머니는 80넘어서부터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라.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들이 참 예뻤는데 우리 할머니도?? 
 
내가 은근한 기대를 하고 있을때 엄마가 서랍 어딘가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오셨다. 
 
"자, 우리도 한 권 받았다. 할머니 그림 구경해봐라." 
 
앜ㅋㅋ 이건 그린게 아니고 색칠공부자나요ㅋㅋㅋ
 
 
곧 할머니께서 현관을 열고 씩씩하게 들어오셨다. 
 

 
"내가 그려놓은 그림이 참 많았는데 애들이 와서 다 갖고 갔나봐. 내가 그리기만 하면 끝나기가 무섭게 다 들고간다니까? 딱 한 권밖에 안남았네 글쎄." 

엄마가 꺼내놓으신 거랑 새로 들고 오신거랑 두 권을 나란히 놓고서 할머니는 꽤 자랑스러워하셨다. 
 
"다 봤나? 한 장 한 장?"
 
아, 나는 다시 주워들고 한 장 한 장 자세히 훑어보았다. 
 
"내가 그렸지만 참 잘한거 같애. 내가 봐도 정말 잘 그렸어." 
 
할머니는 정말로 이걸 그림이라고 표현하셨다. 
사회복지사가 다녀갈때마다 이걸 한권씩 갖다줘서 시작하신건데 너무 좋아하셔서 언니도 몇번 프린트를 해서 갖다드리고 색연필도 사다드렸다고 한다. 
 
"맞아, 진짜 잘했다. 너무 예쁘다." 
 
"응 나도 내가 이런거 잘 할 줄 몰랐그등? 복지사가 올 때마다 놀래잖아. 다른 노인들은 못그린대. 내만큼 그리는 이가 없다고 맨날 놀랜다?" 
 
음... 나이들면 색칠공부도 어려워지는건가.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께서 스스로 너무 뿌듯하게 말씀하셔서 열심히 칭찬을 해 드렸다. 
 
"할머니 여기 밑에다 사인도 해주세요." 

볼펜을 건네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신중하게 사인까지 해 주셨다. 

그 후로도 할머니의 그림 자랑은 계속되었다ㅋㅋㅋ 
 
내가 한 장 한 장 자세히 봤다고 말씀드렸지만 굳이 한장씩 넘기시면서 다시 보여주심. 
프랑스 갈때 들고 갈거냐고 물으시기에 그럴거라고 말씀드렸다. (막상 짐을 쌀 땐 기억도 안났음;; 쏘리 할머니) 

 
부모님이 다른 이야기 화제를 꺼내도 할머니는 오로지 본인의 '그림'들만 쳐다보셨다. 
 
"여기는 색깔이 좀 부족하네... 나 이거 다시 들고가서 그려와야겠다..." 

할머니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는 빵터졌고 엄마는 다시 안그려도 된다고 이미 완벽하다고 말리셨다. 
 
아 울 할머니ㅋㅋ 표정만은 베테랑 화백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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