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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필터링 없는 우리 할머니 화법

by 요용 🌈 2025.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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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랑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우리는 도장 깨기를 하듯 그동안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오늘은 짜장면 먹자~ 
 
울언니 말이 짜장면은 우리 집앞에 젤 맛있단다. 
 
그래서 중국집에 가는 길에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같이 먹자고 말씀드렸다. 할머니께서는 한걸음에 달려나오셨다. 
 
93세 우리 할머니는 여전히 허리가 꼿꼿하고 정정하시다. 
하시면 연세가 드실수록 점점 더 마음의 소리를 여과없이 그냥 뱉으시네... 
 
"이 집 짜장면 맛없는데." 
 
사장님이 저쪽에 계신데 큰소리로 말씀하셔서 언니랑 나랑 어찌나 당황했던지. (이른 시각이었던지 이때 홀에 손님이 딱 우리뿐이었다.) 
 
"여기 나는 맛있는데?" 
 
사장님 상처 받으실까봐 언니가 목소리 높여 애썼지만 할머니는 단호박. 
 
"아니여, 얼마전에 노인정에서 단체로 여기서 시켜 먹었그등? 짜! 너무 짜서 아이고 다들 짜다고.. 짜장 짬뽕 다 짜." 
 
결국 언니가 할머니 입을 손으로 막았다ㅋㅋ 
 

우리는 짜장2개 짬뽕1 그리고 탕수육을 시켰다. 
 
"맛있다!" 
 
"안짠데? 맛만 좋구만"
 
우리 자매가 한마디씩 했더니 할머니께서 마지못해 대답하셨다. 
 
"... 오늘은 안짜네." 
 
"맛있지?"
 
"응 맛있네. 오늘은 맛있어." 
 
ㅋㅋㅋㅋ 사장님 맛있습니다.  

 
아 진짜 짜장면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맛있다. 영화에서 보던것처럼 맘껏 면치기하면서 흡입했다. 
 
 
그날 저녁 나는 산책 겸 동네 마트에 나가보았다. 
과일 가격이 엄청 비싸네...ㄷㄷㄷ
어떤 과일이건 기본 만원이군. 이럴땐 프랑스가 참 부럽다. 
 
그때 때마침 슈퍼로 들어오시던 우리 할머니께서 마트가 떠나가라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달려오셨다.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봤는데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안기시며 주변 사람들이 다 듣도록 "우리 손녀예요!" "우리 손녀." "외국 사는데 잠깐 다니러 왔어요." 라고 소리치셨다. 
할머니 아무도 안물어봤자나...
나도 언니처럼 할머니 입을 막을까 잠시 고민...
 
할머니는 우유랑 콩나물을 사러 오셨다면서 내가 먹고 싶은게 뭔지 고르면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골랐다 ㅡㅡ; 그냥 구경나온거라고... 
 
횡단보도까지 바래다드렸는데 할머니는 지금 노인정 끝나고 나오시는 길이라며 노인정에서 본인이 힘이 젤 세다고 자랑하셨다. 
 
"진짜?" 
 
"응 진짜로! 내가 나이는 젤 많은데 할매들이 그걸 몰라. 헤헤 내가 제일 힘이 세. 그래서 설거지도 내가 하고 문도 맨날 내가 닫지. 젊은 사람이 그런거 하는거라고 나한테 시키면 그냥 해. 젊다고 해주니까 기분 좋잖아." 
 
아 힘센 울 할머니 아이처럼 소리내 웃으셨다. 
 
증조할머니처럼 100세까지 아니 그보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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