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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여보, 친구들이랑 저녁먹게 십만원만 부쳐줘 봐"

by 요용 🌈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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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가서 옛 추억을 소환하다
 
 
우리는 영주 시장에 들러서 이모댁에 가져갈 딸기를 샀다. 
시장근처 한 가게에서 울언니 옛 남친을 마주쳤음ㅋㅋ 
하마터면 저 분이 우리 형부가 될 수도 있었겠구나. 근데 왜 저사람은 우리 언니를 보고 아는척을 하지 않는걸까. 옆에 와이프가 있어서 그런...거겠지..? 아니면 우리 언니 혼자만 기억하는 걸 지도ㅋㅋㅋ 아무튼 우리는 온갖 농담을 하며 웃었다. 

이모집에 잠시 들러서 이모랑 인사도 하고 사촌들도 합류해서 다 같이 우리 자매가 어린시절 자랐던 동네에 가 보기도 했다. 

바로 이 집에서 내가 태어났다. 
어릴적엔 그렇게나 커 보였는데 마당도 창고도 이제는 아담하기만 하다.
저 사랑방 창문을 열고 우리 할머니께서 나를 부를것만 같다. 우리 삼남매를 키워주시고 내가 중1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봄만 되면 우리 자매는 텃밭에다 옥수수를 심었고 그 외에도 텃밭에는 배추, 당근, 깻잎, 상추등이 풍성하게 자랐다. 학교에 다녀오면 나는 어린 당근을 간식삼아 뽑아먹었다ㅋㅋ 베란다에는 아빠가 심으신 장미 넝쿨이 옥상까지 풍성하게 자랐었는데... 이제는 옥상도 사라지고 지붕으로 다 덮여버렸네. 
 
지금은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옛 집앞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더니 사촌 오빠가 나더러 '고향이 많이 그리웠나보구나' 라고 말했다. 그러엄 그리웠지...
 
조금 더 고향마을을 올라가서 할머니 산소에도 들렀다.
 
마지막으로 들렀을때가 7년쯤 전이었나. 그때 할머니께 나 결혼했고 행복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번에는 자세한 소식을 못 들려드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산소에 올때마다 엉엉 울었었는데 이제 눈물은 안나네. 
할머니 항상 우리 지켜보고 있지? 
 
 
사촌들과 헤어진 후 우리는 호텔로 왔다. 

체크인을 한 후 근처 삼겹살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박씨언니가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끊을 무렵 언니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친구들이랑 저녁먹게 십만원만 부쳐줘봐." 
 
무뚝뚝하게 들리지만 나름 경상도 특유의 애교 말투였다. 다들 숨죽이고 대답을 기대했는데 - 
 
"회비에서 쓰라ㅋ" 
 
언니들 곗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장난스러운 말투에 우리는 까르르 웃었고 박씨언니는 실망했다. 
 
그때 우리 언니가 형부에게 바로 전화를 했고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우리 형부는 바로 10만원을 부쳐줬다! 와 우리 형부 다시 봤네! 
 
경이언니가 질 수 없다며 전화를 걸어서 남편에게 똑같이 말했을때 경이 언니네 형부는 20만원을 부쳐줬다. 
 
박씨 언니는 결국 다시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고 박씨 언니네 형부는 30만원을 부쳐줬다. 
 
"형부들 전부다 공동 1등이다! 와 언니들 시집 잘 갔네!" 
 
진심이었다. 어찌나들 자상하신지! 
 

이렇게 언니들이랑 재회해서 고향 삼겹살 집에서 한국맥주로 짠을 외치는 날이 오다니. 
나 너무 행복하다 진짜... 


나 돼지껍데기도 처음 먹어봤는데 왤케 맛있음?? ㅇ,.0 

 
언니들이 찍어준 내 사진들을 몇 장 버거씨에게 보냈다. 버거씨는 의외로 크게 감동(?)했다. 
 
"오... 네가 이만큼이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나는 정말로 행복해. 언니들한테 너를 이렇게 즐겁게 만들어줘서 내가 너무 고맙다고 꼭 꼭 전해줘. 너는 모든것을 누릴 자격이 있어. 한국에 있는 동안 계속 저 얼굴로 즐겼으면 좋겠어." 
 
감수성이 풍부한 버거씨라 참 좋다. 
 

언니들은 올리브영이 보일때마다 들어가서 나한테 선물을 잔뜩 사줬다.

"이거 진짜 유명한거야, 한 번 써봐." 
 
"다른거 더 필요한 거 없어? 언니들 돈 많으니까 다 사줄게." 
 
두 손 가득 선물을 받았다.  
한국 오자마자 이렇게나 사랑을 듬뿍 받다니.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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