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들어본 '칭챙총'을 나도 겪을줄이야.
버거씨랑 같이 낭시 역 앞을 지나고 있을때였다.
맞은편에서 한 무리의 10대 소년 소녀들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가로수 때문에 통로가 좁아서 그 중 키가 굉장히 큰 소년과 살짝 스치며 지나게 되었다. 그때 그 소년이 선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깐죽거렸다.
"칭 챙 총~"
야 이누마 내가 니 엄마 뻘이다!
그리고 이건 중국어가 아니라 영어거든? 이 무식한 노마.
니하오는 몇 번 들었지만 칭챙총은 또 처음 들어봤네. 니하오보다 훨씬 불쾌하다.
이런 일을 당하면 써먹어야지 했던 그 말을 오늘 드디어 입밖으로 시원하게 뱉어냈다.
"She발로ma"
대화가 안통하는 어린애들한테 따져봐야 소용없고 이렇게 내지르니 나도 조큼 후련. (요즘 한국콘텐츠가 인기라 한국어 욕을 알아듣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말을 들었음. 엘리야도 'she발'은 잘 알더라.)
*저 평소 상욕하는 사람 아닙니다. 오해하지마셔요.
간발의 차로 상황을 눈치챈 버거씨가 홱 뒤로 돌아서더니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무슨 학교 선생님같은 말투로.
"너네 할 말있어? 그럼 말을 제대로 하든가!!"
아이들이 쓰윽 뒤로 돌아봤는데 키 큰 그 녀석만은 그럴 배짱은 없는지 앞만 보고 계속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버거씨는 나에게 대신 사과했다.
"오 미안해... 저 정신나간 녀석은 단지 소녀들앞에서 센 척하고 싶어서 저러는거야.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쟤들은 너 뿐만 아니라 옆에 같이 있는 나도 함께 모욕한거나 마찬가지야."
"난 괜찮아. 그리고 쟤네들도 딱봐도 이민자들이잖아. 무리 전체가 아랍이거나 흑인 혼혈로 보이네. 어딜가나 멍청이들은 있어. 별로 의미두지 않아. 근데 자기 부모뻘인 사람들을 모욕하나? 참내..."
나도 저 나이때는 저렇게 멍청했었던가...
저 정도는 아니어도 무모하고 멍청한 생각을 하긴 했었던것같다. 좀 부끄러워지네.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다가 갑자기 내 머릿속을 번쩍하고 때리는 생각.
"가만! 일면식도 없는 지 부모뻘한테도 서슴없이 칭챙총하는데 학교 자기 또래 아시아 학생들한테는 훨씬 더하겠지?! 아이고 이를 어쩌나..."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기분.
버거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기네가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가 상대에게 어떤 비수가 돼서 꽂히는지 알아야 하는데.. 실상은 잔인하지. 아시아인 학생들만 표적이 아니야. 뚱뚱하거나 키가 작거나 흑인이거나 혹은 빨강머리 소년들도 놀림의 대상이야."
"빨강머리도 놀려?"
"응... 우리 첫째가 빨강머리잖아. 초등학교때부터 많이 놀림을 받았어. 언젠가 가족끼리 휴가를 갔을 때 옆에 부모가 있는데도 옆테이블 소년들이 서슴없이 웃으면서 놀리더라. 첫째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말 못했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화가 너무 나서 그 소년들한테 가서 말했지. 너희가 웃자고 한 말들에 내 아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사과해줬으면 좋겠다고 단호하게 말했어."
"그래서 사과했어?"
"응. 나랑 첫째랑 얼굴이 시뻘개져있는걸 보고 당황한 것 같더라. 아주 나쁜아이들은 아니었던가봐. 정말 미안하다고 나한테도 사과하고 첫째한테도 사과했어. 그 소년들은 그날 교훈을 얻었을거라고 생각해. 무심코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비수로 꽂힌다는걸 말이야."

오늘 나는 크게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상대는 무모하고 철없는 소년이었으니까.
버거씨는 앞으로 또한번 누군가가 나를 모욕하면 불러다가 단호하게 말하고 사과를 요구할거라고 했다. 상대가 아무리 철없는 소년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She발로ma! 라고 내질러 주고 잊어버릴거다. 그런 싹수노란 녀석의 교육은 내 담당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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