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때문이겠지.
자정이 훌쩍 넘었는데 잠이 안온다.
오래된 내 방이 낯설게 느껴질 줄이야.
낭시에 있는 작은 내 아파트 침대가 더 익숙해졌나보다.
엄마는 내 방을 옷방으로 사용중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내 방은 옷방 보다는 창고에 더 가까웠다.
창문에 커텐은 사라져서 빛 차단은 안되고 책상위에는 낡은 선풍기가 두 대 올라와 있다. 책장 앞에는 식탁의자 두 개랑 박스들이 쌓여있어서 책을 꺼내기도 어렵다. 불평은 아니고 그냥 낯설다는 말이다.
버거씨는 뭘 하고 있으려나.
프랑스 현지 시각을 확인해 보니 저녁 6시 반이었다. 헤헤 전화해 봐야지. 시차가 이럴땐 편리하구나.
신호가 단 두 번 울렸을때 버거씨가 반갑게 응답했다.
"어?! 아직도 안자고 있었어? 잠이 안와?"
"응..."
버거씨 목소릴 들으니 참 좋다.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있지만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 저런... 나는 오늘 낮에 첫째랑 헬스장에 다녀왔고 조깅도 10km나 뛰었어."
"와, 안피곤해?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야?"
"안피곤해. 너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중이야. 세상 최고의 여자와 함께 하려면 이 정도 수고는 해야지."
하하하 잠이 확 달아났다. 역시 스윗한 우리 버거씨.
그때 멀리서 아빠를 부르는 둘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둘째랑 탁구 시합을 하던 중이었거든. 잠 안오면 내가 자장가 불러줄까?"
"아, 아니야. 돌아가서 탁구 마저해. 나는 다시 잠을 청해봐야겠어."
"아 그래?"
"응 그래. 탁구 이기지 말고 져 줘."
버거씨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을것처럼 하더니 갑자기 난데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프랑스어 자장가다.
근데 자장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꽤 다급해서 어찌나 웃긴지. 급하게 부르는 자장가라니…ㅋㅋㅋ
자장가 한 곡을 후다닥 불러준 버거씨는 세상 스윗하게 끝인사를 전해왔다.
"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그 사실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지금은 너로 인해 한국이 밝아졌어."
아... 한국이 너무 밝아져서 내가 잠을 설치고 있나보다.
안대가 어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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