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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한국에 오니까... 나 좀 후즐근

by 요용 🌈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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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싫증나서 안입던 헌 옷을 몇 개 가져왔다. 
낡은옷들은 노숙자들에게 기부했고 엄마랑 언니한테 안어울릴 것 같은 옷들은 친구들에게 줬다. 나름 언니랑 엄마한테 어울릴 옷들만 엄선해서 지구 반대편까지 싸가지고 온 것들이었다. 

"좀 낡긴했지만 입어보면 예쁜것들이야. 한 번 입어봐."  
 
앞에다 펼쳐놨더니 그것들을 바라보는 엄마랑 언니의 표정이 별로다. 
언니가 한숨처럼 한마디를 뱉어냈다. 
 
"그건 그냥 버리는게..."  
 
"아 몰랑. 여기 둘테니까 한번씩 입어보기나 해. 맘에 안들면 버리든가. 아깝잖아."
 
여전히 옷들에 눈길도 안주시던 우리 엄마가 말씀하셨다. 
 
"우리 딸 진짜로 옷을 안사는구나. 지금 입고 있는 그 옷도 옛날에 본건데 아직도 입네." 
 
울언니는 자꾸만 "다 썩었겠다."라고 중얼거렸다ㅋㅋㅋㅋ 
 
나는 10년전이랑 몸무게 차이가 별로 없어서 여전히 옛날 옷들을 입을 수 있는거라고. 
내눈에는 아직도 멀쩡한 옷들인데 왜들 이러지. 
 


 
그런데 다음날 언니랑 외출을 했을때 엄마와 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우와... 다들 옷을 참 깔끔하게 입는다. 사람들 전부다 새옷을 입고 다니는거같애." 
 
내 말에 언니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했다. 
 
다들 유행에 따라 새옷처럼 깨끗하게 각잡힌 옷들을 입고 다니는 와중에 내가 10년전부터 즐겨입던 낡은 옷을 입고 나타났으니ㅋㅋ 챙피하려나? 엄마, 언니, 내가 챙피해? ㅠ.ㅠ
 
프랑스에서는 나름 깔끔하게 입고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오니 새삼 후줄근하게 느껴진다. 
 
친정집 옷장에 있던 오래된 내 옷들을 이 참에 정리했다. 
하나하나 내가 오래된 옷을 입어볼때마다 엄마는 "버려라" 라고 단호하게 피드백을 주셨다. 
아 눼... 

몸에 들어가기는 해도 낡아보이거나 혹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버려야 할 낡은 옷들이 3자루나 나왔다. (아빠가 어디에 갖다줘야 되는지 안다고 하셨다.)

 

현관에 자루들을 내놨더니 외할머니께서는 이 아까운걸 왜 다 버리냐며 혀를 차셨고 엄마가 "그럼 엄마 입든가!" 하시며 맨 위에 있던 짧은 치마를 꺼내서 할머니 몸에 갖다 대 보셨다. ㅋㅋ 할머니는 기겁하셨고 온 식구들이 웃었다. 

 
낡은 옷들을 정리하고 났더니 엄마는 장농에 공간이 생겼다고 후련해 하셨다.
나도 좀 후련하긴 해... 
아까워서 뭘 잘 못버리고 한 번 사면 오래오래 사용하는 사람인데 왠지 요즘은 오래된 것들을 처분할 때 좀 개운한 기분이 들곤 한다. 
 
"옷사게 돈 좀 줄까?" 
 
그 소리 왜 안나오나했지ㅋ 엄마는 내가 돈이 없어서 옷을 안사는건가 의구심이 드시는 것이다. 
나도 돈 있어. 안줘도 돼요. 
 
울언니랑 옷구경을 하러 나갔는데 싸고 질좋은 옷들이 많아서 눈이 돌아갔다. 자켓도 사고 바지도 사고 속옷도 샀다. 역시 한국이 최고구나!
 
그런데 한바퀴 돌고나서 드는 생각.
 
옷가게마다 옷들이 너무 비슷한 느낌이다. 길에서 사람들이 입고 있던 무채색 옷들을 떠올려보니 이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인가보다. 
프랑스에서는 낡은 옷을 입어도 누구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고 남의 시선을 별로 신경써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국에 온 김에 오랜만에 쇼핑을 해서 뿌듯하긴 하다. 
울 엄마랑 언니는 알 것이다. 새로산 이 옷들도 내가 앞으로 수년간 오래오래 입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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