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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한국

여전히 정정하신 우리 할머니

by 요용 🌈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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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끝낸 후 언니는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제 내가 몇 시에 도착하냐며 할머니께서 자꾸만 전화를 주시길래 언니가 오늘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귀국 후 나의 첫 점심은 할머니랑 언니가 자주가는 단골 순대국밥집으로 당첨되었다. 

 

할머니댁으로 모시러 갔더니 할머니께서 두 팔 벌려 달려오시며 내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할머니를 안아드렸는데 순간 내가 키가 컸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작아지신거겠지. 기운도 많이 빠지신듯 하고... 그래도 93세 연세에 이만큼 허리가 꼿꼿한 할머니도 드물듯 하다. 

 

"니가 가고나서 몇 달 동안 얼마나 울었다고 내가..."

 

"몇 달 지나고 나서는 나 싹 잊어버렸어?"  

 

"아니지!"

 

헤헤

발끈하시는 걸 보니 우리 할머니 여전히 정정하시다.  

 

"근데 니는 얼굴이 맨날 그 모양이네."  

 

그 말에 울언니랑 나는 빵터졌다ㅋㅋ 언뜻 들으면 나쁜말 같은데 사실 할머니의 의미는 아직도 내 외모가 고대로라는 의미셨을것이다. 

 

"응 내가 맨날 이 모양이네 생긴게 ㅋㅋ"  

 

"그래~! 늘 보던 고 모양 고대로야."  

 

역시 칭찬이었다. 

 

한참 내 얼굴을 뚫어져라 살펴보시던 할머니는 한마디 덧붙이셨다. 

 

"아 쪼매 축났다. 아주 쪼매큼만." 

 

"축났다고? 아 늙었지 뭐, 5년 만큼."

 

울언니가 옆에서 늙은게 아니라 말랐다는 뜻일거라고 통역(?)을 해 주었다. 

 

어제 우리 엄마도 그렇고, 왜 다들 말랐다고 그러는거지. 내 몸무게는 오히려 더 쪘는데 (큰 변화가 없기는 하다.)

 

보글보글 순대국! 

오랜만이다. 잘익은 깍두기랑 겉절이까지 다 맛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자꾸만 전남편과 시부모님의 안부를 물으셨다. 나는 다들 잘 지낸다고 말씀드렸다. 전남편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던 할머니께 나는 버거씨의 이름을 말씀드렸다. 

 

"그래! 맞다, 베니였지 참!"

 

나는 속으로 웃다가 내킨김에 버거씨랑 같이 여행다니면서 찍은 사진도 몇 장 보여드렸다. 

 

"얼굴이 좀 달라진것 같은데?" 

 

허걱. 다른 사람인 걸 알아보시네? 

 

하지만 나는 곧 할머니의 혼잣말에 안도했다. 

 

"인상이 참 좋아졌네. 마음이 이제는 편안해졌나보다. 인상이 너무너무 좋아졌어." 

 

그건 사실이지. 인상이 참 좋지... 

 

"고양이도 잘 있다고? 그래... 애기가 없으면 좀 어때. 둘이서 이렇게 재미나게 사는데. 그게 제일 중요한거야. 참 보기좋다." 

 

네 할머니. 애기 없어도 다정한 버거씨랑 행복해요. 

 

 

SK말이 맞았다.

한국 어르신들은 외국인들 똑같이 생긴줄 안다고. 남편이 바뀌어도 못알아볼거라고 했는디 니 말이 맞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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